열정과 기도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막 1:35-39).
본문은 예수님의 기도생활을 보여주는 한 구절입니다. 본문의 앞 구절에는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귀신 들린 자를 쫓아내시고,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시고, 돌아오는 길에는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사역이 깊은 밤이 되어서야 끝이 났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며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기도하시더니’ 우리와 똑같이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고단한 사역 후에도 불구하고 이튿날 새벽미명에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담임 목사님- 다른 동년배들보다 훨씬 더 좋은 건강을 주셔서 다른 이들보다 1.5배 정도 열심히 살았다고 여겨짐. 새벽기도 못나오는 사람들을 이해 못했으나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보니 이해할 수 있게 됨). 육체의 피곤을 극복하신 예수님을 볼 때에 우리는 머리가 숙여집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어느 부분은 예수님도 느끼셨던 육체의 연약함으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또 어느 부분은 단순한 육체의 연약함이 아니라 영혼의 싫증과 육체의 게으름이 본질적 문제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하나님을 위해 나의 육신을 아끼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게으름의 문제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한데, 정확한 가늠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영혼의 싫증은 육체로 하여금 쉬어야 한다는 유혹을 하고, 그로 인해 영혼의 싫증과 육체 게으름이 손을 잡게 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신속하게 미끄러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우리 육신을 복종시켜야 합니다.
첫째로, 그렇게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계실 때에 시몬을 비롯해 사람들이 그분을 찾아왔고,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은 다른 마을에도 전도하러 가자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결국 예수님의 영혼 구원의 열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정은 깊은 기도 속에서 나오는 것이고, 오랜 간구 끝에 유지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영혼, 우리 삶의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열정입니다. 욕망이 강하면 모든 한계들을 뛰어넘고 반드시 그 욕망을 성취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위해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에도 그것이 행사되지 못하게 하는 많은 저항 요인들이 내 안밖에 있다고 할지라도 열정적인 욕구가 있다면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은 배설하듯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저항 요인들이 안팎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영혼을 섬기기 위한 복음 전파의 일은 오죽하겠습니까? 우리가 항상 영혼이 불쌍해서 눈물을 흘립니까? 항상 영혼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 앞에 불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올곧고 철저한 기도생활 속에서 이는 지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는 간절한 기도 생활 속에서 이런 열정은 유지됩니다. 환경 때문이 아니라, 마음을 쏟는 기도와 하나님을 향한 사랑 가운데 열정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그런 뜨거운 열정을 상실한 죽은 자와 같은 사역자들,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고 심지어는 그 은혜 때문에 세워주신 자신의 자리를 쉽게 내팽겨 치는 모든 자들은 이런 열정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기도 생활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목적이 없는 삶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의미 없고 지루한 삶일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좋은 일을 성취하는 데는 항상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어려운 길을 걸어가려고 할 때에 고통이 따르는 일은 너무 분명합니다. 문제는 어려움과 난관들이 우리의 열정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 불에 기세가 워낙 강렬하게 타오르면 거기에다 물을 붓는다 할지라도 불길은 더 높게 치솟듯 - 마음을 쏟는 기도를 드릴 때에는 그 고난과 시련들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 앞에 우리 마음을 더 타오르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사명이 완수되어야겠다는 열정이 더 치열하고 간절하게 타오릅니다. 그러나 그 친밀한 기도가 사라지고 나면 열정도 함께 사라집니다. 이 열정을 유지하는 일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하나님을 섬기며 산다는 것에 있어서 부패한 육신, 죄로 가득한 이 세상, 자기만을 위하려는 이기적 마음, 이 모든 것이 그 일을 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나, 이런 것들을 이기며 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열정을 잃어버린 모든 사람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환경이나 나이나 어떤 고민거리와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부재 때문입니다.
둘째로, 능력을 행하시면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영력이 환경을 극복하는 기도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영혼의 능력은 영혼 자체가 순전하게 되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더러운 영혼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조잡한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 영혼의 순전함이 이 마음을 쏟는 기도를 통해서 촉진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의 능력은 그리 값진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한 사람을 일에 적합하도록 준비시키나, 은혜는 그 사람의 영혼을 정화하여 자신의 영혼의 고향인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어줍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이 영적인 능력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 영력이라는 것은 영혼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그것은 정화된 영혼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타락하실 수 없는 분이었으나, 연약한 육신을 쳐서 기도하시는 모습으로 이 영력을 유지하시는 것을 보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야 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고난이 오고 시련이 없는 사명자의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많은 고난과 시련 때문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붓지 않기에 열정도 영력도 유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날마다 매달리는 삶을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