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건지시는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 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시 5:3-5).
시인은 4절에서 마음에 벅 차는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라고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을 향한 특별한 마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처음부터 하나님과 마음으로 원수 맺은 상태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어느 대학실험실에서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고양이 새끼와 쥐새끼를 태어나자마자 한 유리관 속에서 자라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태어나자마자 고양이는 쥐를 쥐는 고양이를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어미로부터 어떠한 것도 보거나 배우지도 않은 상태에서 둘이 같이 자라게 된 것입니다. 결국 친구처럼 잘 자라가는 것 같았지만 고양이도 쥐도 점점 자라자 고양이가 쥐를 죽여 버렸던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바로 천적이라고 말합니다. 태어나자마자 경험에 의지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본성적으로 적대감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그래서 공격적이 되는 것,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천적이라고 부릅니다. 하늘이 맺어준 원수다 이런 뜻입니다. 본성적으로 그렇게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죄가 들어온 다음부터는 태어날 때 이미 그 마음속에 이런 천적의 상태에서 하나님을 향해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이 그 하나님을 찬송하고 높이며 또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라고 외칠 때에는 본성을 거스르는 그 무엇인가가 그에게 일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은혜가 주어졌을까요? 자기를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음부’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을 ‘스올’이라고 합니다. 이 스올이라는 단어인데 구약에서는 지옥에 대한 개념이 명백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라고 하는 것은 시간이 흘러가고 역사가 진전되면서 점점 더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들이 씨앗을 뿌려놓고 나무가 자라지만 아직 묘목이고 어릴 때에는 그 나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게 되듯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구약에서 스올이 그런 것입니다. 이 스올은 비유적으로 많이 씌였습니다. 그래서 원래 이 스올이라는 말은 ‘샤알’이라는 단어에서 온 것인데 ‘요구한다’는 뜻입니다. 뭔가 입을 쫙 벌리고 인간의 영혼이나 인간의 육체를 요구하는 그런 그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스올을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사람이 도달하게 되는 그 스올은 죽음의 기운이 가득하고, 생기가 없고, 영혼의 그 깊은 침체, 하나님으로 비취는 지붕의 빛, 이런 것들이 없는 아주 음산하고 아주 누추한 그런 상태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으면 ‘내가 스올에 내려가는 것 같나이다’라고 고백을 했고 요나 선지자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기도할 때 ‘내가 스올에서 죽게 기도하나이다’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결국은 영혼이 깊은 침체 속으로 들어가고 환경적으로도 어려움을 만나는 환경적 깊음과 영적인 깊음이 동반된 불행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시인을 건져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소생과 육적인 구원이 함께 어우러진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경험하면서 시인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원인이든지 간에 영혼의 깊은 침체에서 회복되고, 육적인 환경의 깊음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구출을 받았을 때에, 우리는 나를 하나님께서 특별히 생각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그 때에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시인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라고 외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통해서 시인이 발견한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여기에 보면 ‘노여움은 잠간이요 은총은 평생이로다’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래서 시인은 ‘노여움은 잠간이요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계속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깊은, 하나님이 건져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스올과 같은 상황에 들어가게 되는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노여움 때문에 이 시인이 영혼의 깊은 침체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큰 환란을 만나게 되고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우리의 영적인 상태도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려움을 육체적으로 만났기 때문에 영혼도 반드시 깊은 침체에 빠진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관 관계가 있지만 만약에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다면 그 큰 육신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영혼은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인은 영혼과 육체가 아울러 스올 가운데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시인이 ‘노여움은 잠간이요 은총은 평생이로다’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잘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노여움을 느끼게 되었고 그 하나님의 노여움은 이 시인을 스올에 들어가는 것 같은 깊은 침체의 상태로 데려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앞에 거스를 때 영혼의 이런 침체가 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수하신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사실은 하나님이 복수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그렇게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거스르게 될 때에 복수 한다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 없이 살아가는 영혼의 비참함, 그리고 삶의 곤궁함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곤고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 곤고함을 깊이 경험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이것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기쁨과 즐거움이 주는 것보다 훨씬 큰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런 일들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고보니까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주님을 거스려서 영혼의 어두운 상태가 오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향한 진노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기를 향해 침묵하시고 영혼의 침체를 허락하신 그 자체가 일평생동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잠간 있는 일이고, 결국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라고 하는 것을 발견하면서 하나님의 새로운 성품에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녁에는 울음이 계속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고 사는 모든 언약백성들에게 어머니같은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참인생의 행복은 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또 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행복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을 깨달으면서 인격적으로 그 분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참된 행복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의 번영과 가난함, 형통함과 막힘 이런 것에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이 언약의 관계는 우리들이 그 모든 것들을 초월해서 언제나 꼭 붙들고 지키면서 살아가야 할 영원한 가치가 있는 관계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깊이 의지하고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