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복하는 자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시 32:3-5).
시인자신의 경험을 노래하고 있죠. 그 마음에 커다란 양심을 찌르는 죄가 있는데, 그 마음을 깊이 찌르는 그 큰 죄, 마음의 깊은 고통을 가져오는 그 죄를 고백을 하지 않고 가슴에 내버려 두니까 이것이 자기를 계속 찌르고 고통스럽게 해서 신음할 정도가 되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사람의 이 육체와 이 마음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죠. 왜냐하면 이 마음이 육신을 움직이기 때문이죠. 어떤 식으로든 이것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배를 갈라서 해부를 해봐도, 마음은 발견이 되지 않죠. 이 마음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이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어서 그래서 그것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죠. 그러니까 마음이 건강하다가도 몸이 매우 아프면 마음이 낙심이 되고 우울해 집니다. 또 그 마음에 쾌활하고 그리고 활기차면 기쁜 일이 생기면 육체도 함께 좋아지게 되죠. 지금 이 시인이 마음속에서 깊이 찌르는 그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견디기 힘든 고통과 괴로움을 가슴에 붙들고 있으니, 그 붙들고 있으니 당연히 그 육체에 그 징조가 나타나지 않겠어요? 그래서 육체의 그 괴로운 징조들이 나타나요. 그래서 깊이 고통을 받고 아파하고 있는 그런 상태를 여기서 보여주는 거죠. 그때에 자신의 그 마음의 상태를 < >여호와께서 나를 누르고 계셨나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그 깊은 고통속에서 그 마음에 이 감추고 있는 죄들을 눌러서 그래서 급기야 그것이 마음을 가득채우며 고통이 되게 만드셨다는 것이죠.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그 통회할 때가 되면은 마음이 하나로 모아집니다. 그리고 그 죄에 집중하게 되요. 근데 그 죄를 죄에 집중하게 되지만은 차이점이 머냐하면 죄에 집중해서 이 죄의식에 괴로워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죄에 대해 인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붙들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마음이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아주 간절하고 안타까운 그런 마음이 되는 것이 예요. 그래서 그런 깊은 고통의 마음. 자기를 찌르고 누르는 것 같은 그 깊은 괴로움과 아픈 그 마음이 속에서 생겨나는 거예요, 그걸 하나님이 누르는 것이 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 우리의 몸을 누르고 공격할 때에 우리보다 힘이 약하면은 뻘떡 일어나면서 그를 밀치고 벗어날 수 있죠. 우리보다 훨씬 힘이 강한사람이 우리를 누른다면은 우리는 꼼짝없이 그 눌림을 당하고 숨이 막히는 고통을 치러야 될거예요. 하나님이 누르시는데 누가 그것을 뿌리치고 물리칠 수가 있겠어요. 시인이 그런 경험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음의 죄를 지니고 주님을 등지고 거스르며 살아가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자유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 앞에 정말 자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하나님 앞에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러한 깊은 한계, 괴로움, 고통 이런 것들을 물리치면서 그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되겠는데, 너무너무 어려운 거죠. 그 길을 오늘 시인이 자기의 경험을 비춰서 말하는 거예요. 그게 머냐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의 죄를 자복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자복하였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아 진작 자복하지 그 머 그렇게 누름을 경험하고 그 고통속에서 그때까지도 그걸 자복을 안하나? 인간이란 그런 간단한 존재가 아니죠. 왜냐하면 이렇게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그 인정하고 자복하게 되는 그것은 이게 자기가 맘대로 그냥 해버리지 말아야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죠. 그리고 그렇게 그러니까 죄를 지을 때도 마음을 다 실어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를 자복할 때에도 마음을 다 실어서 자복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근데 그게 육신적인 인간들에게는 너무너무 고통스러운 일이고 부자연스러운 일이고 자기를 합리화하고 편하게 자기를 칭찬하고 자기 아첨에 빠져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게 말하자면 그렇게 살아가는 그것이 말하자면은 그 자연적인 인간에게 어울리는 건데 그거를 양심의 깊은 가책을 느끼고 그 가책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자기가 죄를 지었는데 신이 마치 남인 것처럼 미워하고 자기와 결별하고 너무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깊이 결단을 하고 마음으로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느낌을 갖게 되는 거거든요. 죄 자체가 하나님을 버리는 거기 때문에 죄를 짓고 나면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하게 되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그 고백을 하게 되는 거죠 이때 그러면서 이제 자신의 영혼을 건져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간절히 구하는 거예요. 그 은혜를 그 사랑을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고백을 하는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언제나 변함이 없는 신앙의 권리 예요. 아버지 앞에 간절히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뉘우치니까 하나님이 용서해 주세요.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그리고 새롭게 하나님이 힘을 주시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그 큰 자비예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여기에 말하자면 하나님의 자녀의 행복이 있는 거죠. 언제든지 자신의 죄를 주 앞에 진심으로 구하고 용서의 은혜를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이 그런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