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시32:8-10).
6절까지 시인의 고백이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 하나님은 나의 은신처시라 그랬죠. 그랬더니 갑자기 그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직접 화법으로 나옵니다. ‘나는 너를 주목하고 훈계하리로다’ 이렇게 나오죠. 곧 이런 그 양식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은 저는 이러한 부분가운데 상당한 부분이 시인이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매달리는 가운데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음성,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응답을 가감 없이 직접 화법으로 옮겨놓은 경우가 대부분 일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고통가운데 매달릴 때에 주님께로부터 응답이 들렸던 것이죠. 그 응답이 머냐하면 ‘내가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이 지켜주시지 않는 사람이 없고 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바라보시지 않는 사람들이 없지만은 그렇게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켜 보시면서 그 한 사람 한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훈계하신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어떻게 보면 언제든지 그 사람들을 지켜보시고 돌보시지만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주님의 자비와 은혜에 호소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그를 주목하고 훈계하시는 것이 더 많이 느껴지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내 마음대로 살다가 이렇게 돌아오고 나면 그 하나님을 그리고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를 깊이 발견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나면 그 다음에 깨달아 지는 것이 뭐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참 사랑하시고 나에게 끊임없이 이런 길을 가라고 말씀하신 것이 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래전서부터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구나’ 라고 하는 것이 느껴지는 거죠. 이게 바로 신앙의 세계예요 그래서 오늘 시인이 하나님 앞에 그런 걸 경험한 거죠. 언제?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 앞에 매달리니까 하나님이 들어주신 거죠. 우리의 모든 신앙 생활은 무엇을 하든지 거기 우리의 마음이 실려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전심으로 마음을 실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그런 것 이어야 한다 하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마음을 다하여 매달리니까 막혔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리고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두 번째로 하나님이 보태시는 말씀이 너희들은 노새할찌니 그 노새, 그 노새는 강제로 때리고 매질을 하지 아니하면은 그 주인의 말을 잘 안 듣는다 그리고 주인 가까이에 오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완고한 노새할찌니 너희들은 그렇게 되지 말아라 하는 거죠 그죠? 그래서 이 교회가 사람이 모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완고함을 버려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너무 슬픈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교회에 오려서 사람들을 다루실 때에 무엇으로 다루시겠어여? 우리들이 모두 두 발을 땅에 딛고 이 세상을 살아가니까 어떤 사람이 성령 충만할 때가 있고 어떤 사람이 은혜에서 미끄러질때가 있죠. 머 좋은건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들이 아무리 그 열심히 목회를 하고 그래도 사람마다 미끄러질 때가 있죠. 그리고 또 그 미끄러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 살고 마음에 그 하나님을 향한 그 사랑이 식어지고 하는 때가 있죠. 그래도 그것은 잠시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다루어 져야줘.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서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 머예요?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구원에 이르는 지식이 있게 하고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때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거 이것이 잖아여? 그렇치 않습니까?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거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런 모든 사람들이 다루어져야 해요. 그래서 교훈을 하면은 그렇게 못살다가도 ‘아 그렇구나. 내가 참 잘못살았구나’ 따끔하게 책망을 하면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제가 참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바른 신앙의 길로 돌아와야 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다루어져야 되잖아요. 그것이 교회에요. 그렇게 함으로써 부족한 많은 사람들이 있는 이 교회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온전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함꼐하시는 공동체라고 하는 것을 그 교회를 통해서 그렇게 온전하게 보여주는 거예요. 그게 신앙 생활이예요. 그게 믿음 생활이예요. 그런데 무얼 외쳐도 다루어지지 않는거죠. 그건 오늘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바와 같이 노새와 같이 그 완고함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것은 그 하나님 앞에 정말 부끄러운 것이고 하나님을 완강하게 대적하는 것이죠. 교회 사람들이 많이 모여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예요. 그럴 경우에 그 교회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의해서 다루어지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셔요. 그래서 참회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아프시게 하는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예요 그런데도 그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다루어 질 때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통회하며 뉘우치는 사람 가까이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거예요. 그게 바로 신앙 이예요. 시인이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거죠. 그러니까 노새를 말씀하실 때 주님이 이 시인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시고 계시는 기대가 머겠어요? 하나님에 의해서 아주 쉽게 잘 마음이 녹는 사람, 하나님에 의해서 아주 잘 마음이 녹고 변화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이죠. 그렇게 안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두는 것이죠. 그걸 하나님께서 슬퍼하시는 거죠. 그래서 늘 이야지 하지만 신앙생활은 마음에 가득한 사랑으로 하는 거죠. 기도는 영혼이 사랑으로 가득차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거죠. 설교는 마음, 영혼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차서 그리움을 가지고 그 분의 음성을 듣는것,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 섬기는 봉사는 영혼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간직한 채 그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자 자기를 희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섬기는 것, 그래서 로마서 일장에서 사도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들에게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렇게 묘사했어요. 나의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그랬어요 나의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마음 중심 깊은 곳에서 충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죠. 그게 바로 신앙이고 또 신앙의 세계에요. 이게 믿음이고 믿음의 세계인 겁니다. 시인이 그것을 말하는 거죠. 이렇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되는데 사람들은 너무 복잡한 게 많아요. 그리고 마음이 슬픔에 차 있어여. 받은 상처도 많고 괴로움도 많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가 없고 마음을 기울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감화가 없고 섬겨도 그것이 나 자신의 심령을 새롭게 하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상처가 많고 고난과 괴로움이 많기 때문에 슬프다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모든 슬픔과 고통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가 보면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요.
(찬양)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불이 막 세게 타오를 때에는 물을 끼언지면 오히려 불이 더 치열하게 타올라요. 오히려 슬픔이 많고 고통이 많을 때 우리들이 아주 치밀하게 우리 의 마음을 쏟아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마음의 눈이 기울었는가?>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악인에게는 슬픔이 많으나 의인에계는 하나님의 자비가 두르리로다 악인에게는 슬픔이 많은 그러니까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기쁨도 있지만은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슬픔이 많은 가운데 < >혼자 던져진 것 같은 그 외로움, 그리고 그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온 것 같은 적막감, 그리고 두려움, 돌아갈수 없을 것이라는 낙심,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하나님께 대충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예요. 이런거죠. 이것이 신앙이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많은 날들을 이 세상속에서 살아가도, 그 많은 날들을 이 세상속에 살아가도 거기에서 깊은 고통과 괴로움 시련과 아픔 이런 것들을 늘 경험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요. 그러니까 그런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계속되고 그런 속에서 고통과 아픔을 느끼고 하면서 인생을 살아요. 그런데 그게 결국은 대부분이 우리가 불순종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느끼는 거죠. 태양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 항상 그림자가 드리워요. 아주 긴 그림자가 드리워요. 그걸 아무리 땅을 파며 지워 버릴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아요. 시인이 지금 하나님 앞에 그러한 사실들을 응답으로서 듣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매 순간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로 하나님께 돌아와서 믿음의 삶을 살기를 원하세요.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시는 이들을 해나가시는 거예요. 매순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 나가세요.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은 그 일들을 이루어 가시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이고 또 원하시는 일이예요. 그래서 항상 하나님은 우리에게 갈 길을 보여주시고 싶어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올바른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늘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의 뒤를 따라가는 거죠. 주님에 후려치고 거꾸러진 후에 얻어맞을 까봐 무서워서 벌벌 떨며 올바른 길을 걸어가는, 올바른 길을 걸어 갈수도 없거니와 그건 신앙 생활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들이 착한 신앙생활을 하는 때가 있었어요. 그때 머든 하나님의 마음이 궁금했어요. 하나님의 마음이 궁금했어요. 주님의 마음의 뒤를 따라 그래서 그 마음이 내 마음에 전해지는 거예요. 그걸 전해지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예요. 사랑은 공간과 상관없이 혹은 시간과 상관없이 그렇게 나의 마음속에 그 사람의 마음이 전해지게 만들어요. 심지어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부모님 10년 20년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한테 내가 그 부모님을 사랑하면 그 부모님의 마음이 그 시간을 초월해서 나에게 전해져요. 그게 사랑이예요.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살아계신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비와 은혜의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신데 그 마음이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거짓말이죠. 그러한 마음을 하나님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시죠. 우리가 신앙적으로 나태해지거나 말씀으로부터 은혜가 멀어지게 되면은, 그러면은 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하나님을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씀 갈피 갈피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않 전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기껏해야 ‘아 먼 얘긴지 알겠다’ 그렇치 않으면 그것도 못 알아 듣는거죠. ‘먼소리를 하는 건가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의 마음이 먼가’ 근데 결국은 하나님은 안타까이 부르셔도 자기는 그 하나님의 마음과는 상관이 없이 아주 그 외도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거죠. 그것이 바로 인생의 비참함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주님 앞에서 살아야 되요 이게 신앙생활이예요. 그래서 이 신앙생활은 끊임없이 진리이신 하나님을 찾아가고 찾아가는 그 속에서 또한 만나고 그 안에서 행복하고 그 안에서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그 사랑을 펼치는 것이예요. 그것이 신앙 생활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