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제사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4-15).
그러면 제사도 하나님 마음에 안 드시고 짐승을 드려서 하나님 앞에 바치는 그럼 헌신도 하나님이 안 받으신다면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방식의 예배를 원하실까하는.. 그래서 지금 14절과 15절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훨씬 내면화된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인간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른 것이 뭐냐 하면 우리는 우리 마음 안에 일어나는 것과 그 다음에 우리 마음 바깥에서 행동으로 일어나는 것들을 아주 쉽게 구분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 안에 있는 것이든 마음 밖에 있는 것이든지 하나님은 한 번에 보실 수 있는 분이거든요
그러니까 마음 안에 있는 것이든지 마음밖에 있는 것이든지 한 번에 보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나 경외가 없이 행동으로만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이런 제사는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위한 제사라고 생각을 안 하시는 거죠 누구를 위한 거겠어요 자기 자신을 위한 거죠
그래서 제가 지난주에도 말씀 드렸던게 그거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주일 날 교회 나와서 예배를 드리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게 아니라 목적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하나님께 자기 자신이 돌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이에요 어떤 자기에요 주일날 예배를 안 드리고 나면은 일주일 내내 뭔 일이 일어날 거 같은 찝찝함..뭔가 해야될 거를 안 했다고 생각하는데서 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용납하기 어려운 감정..그런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예배에 참석한 것만으로 다 받은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을 다 떨쳐버리고 일주일 동안 살 수 있으니까 다 받은 거죠 이런 식의 제사는 예배는 결국은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고 설령 제물을 잘 구별해서 좋은걸 드린다할지라도 그거는 결국은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지마는 제사를 통해서 마지막에 돌아서 자기 자신에게 유익을 끼치기 위한 거거든요 그것이 어제 말씀드린 뇌물개념의 예배에요 그리고 그게 사실 이 지구상에 있는 신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의 사고 속에 있었던 대부분의 사고 속에 있었던 그런 제사 의식이란 말이죠
(예화)그래서 어제 터줏대감에게 고사지내는 얘기도 드렸잖아요 그런 거죠 그럴 경우에는 그것이 더 크고 화려하고 그리고 더 많은 제물이 될 수록 입증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덕을 받기를 바라는 자기 자신의 행복 대한 추구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너무 불결하고 가증한 거죠 불결하고 가증한 거죠
(예화)저는 학교에 있을 때 한 9년 정도 대학에 있었는데 학교에 있을 때 아주 굉장히 엄격하게 학생들을 지도를 했어요 제가 목회하면서 제가 학교에 있을 때 별명이 검찰 총장이었어요 그래서 김남준 교수가 시험감독 들어가는 거에 따라서 장학금 수혜자가 달라진다고 했어요 전 못 봤거든요 그런 부정직을 ...근데 이제 목회를 해보니까 그렇게 하던 사람이 목회를 하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그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야 그렇게 하지만...그 부정직...시험시간에 보고 쓰고 레포트 베껴내고 그다음에 출석 부르고 도망가고 그런 것들 너무 너무 싫었어요 그랬더니 어떤 학생을 잡아서 졸업을 안 시키겠다고 했더니 3일 동안을 교수실에 와 가지고 매일 죽치면서 한 번만 봐달라고,,그래서 안 된다.. 마지막에 교수님은 학교 다니면서 그런적 없습니까.. 교수님은 의인입니까.. 대답을 안 했더니 교수님은 학교 다니면서 그런적 없습니까..그래서 난 의인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적 없다.. 없으십니까.. 맹세코 없다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 것들이..그랬는데 근데 그 학생들을 이렇게 보면은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가르침에 감사해서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고 목적을 갖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목적을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은 교수하고 잘 좀 친하게 지내서 점수도 잘 받고 그럴 려고 그런 거죠 그런 의도를 아는 그 순간 너무 불결해요 그거는 목회를 하고 나서도 마찬가지더라구요 심지어는 교역자들도 같이 대하면서 어떤 사람은 진심으로 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 신앙, 본보기 이런 것들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 그냥 가까이 해서 덕을 보겠다는 사람들도 있죠 내가 무슨 덕을 베풀겠어요..
인간이라도 그런 것들이 그렇게 싫은데.. 심지어 그런데도 인간에게는 사람들에게 심지어 아첨 받고 그런 거를 나빠하지 않는 습성이 남아 있잖아요 근데 하나님은 그런 거 일체 없으신 분이신거에요 그런 하나님이 그 속과 겉이 다른 행동으로 당신 앞에 당신을 이용해서 자신들이 복을 받고 양심의 가책들을 경감시키고 그렇게 하려고 할 때에 결국은 모든 아첨이라고 하는 거는 자기를 위한 거 아니에요..그 요즘은 그런 게 많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모르죠 모..목회를 하면서 그런 생활하고 거리가 멀어졌으니까.. 옛날에 이렇게 뇌물을 주려고 할 때 보면은 막 헌 돈 더러운 돈 아무 돈이나 구겨서 비닐봉지에 넣어서 주는 그런 뇌물 보셨습니까 그런 것의 기본은 남에게 그런 봉투를 넣을 때 기본은 항상 새 돈입니다. 깨끗하게 하얀 종이로 싸서 안 보이게 그 다음에 봉투에 넣어서 잘 붙여서..그래서 전해주잖아요 근데 목적이 뭐에요 봉투를 찔러주는 목적이 뭐에요 그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높이고 전혀 아니에요 가서 구십도로 허리를 숙이고 음식점에 가서 무릎을 꿇고 고기를 구워서 바쳐도 그 사람에 대한 존중심과 사랑 이런 건 추호도 없고 뭐 한자리 하든지 아니면 나쁜 짓하고 권력 있는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서 좀 책임을 면해보자 하는 거 아니에요 그 겉으로 볼 땐 얼마나 놀라운 공경의 행위에요 근데 사실은 자기 행복에 대해서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그 공경의 행위는 아주 정성스럽고 헌신된 행위가 되는 거에요 에이씨 내 인생 망가지면 망가지지고 아무렇게나 살지 내가 꼭 뭐 하나님게 도움을 받아야 돼? 이런 식으로 하면 그렇게 정성스러우질 수 없죠 그런 정신이 자기 사랑에 딱 꽂혀 있으면 그 다음에 나머지 모든 것들은 그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일으키는 그런 헌신된 태도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게 더 세련되고 더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주님이 보시기에는 너무 불결하고 더러운 거예요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나는 너희에게 제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애를 원하노라 나 여호와를 아는 것을 원하노라 내가 누구인지를 너희들이 안다면 그렇게 살 수 없을 것이다. 불결하고 흠이 많은 사람인데도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막 그 다른 사람들이 그런 태도를 하거나 나 자신이 그런 태도를 하는 것을 발견될 때에 역겹게 느껴지는 데 그 완전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당신에 대한 진정한 감사 없이 짐승을 끌고 와서 때려 죽여서 피를 흘리고 제사를 바치고 이러면서 결국은 하나님께 아첨해서 자기 자신의 행복을 도모하려고 하는 그런 그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역겹고 더럽겠어요 그렇지 않겟어요 얼마나 역겹고 더럽겠어요
(예화)처음 교수 생활할 땐데 교수도 아니에요 뭐 강사 생활 할 땐데..여름이었나겨울이었나 기억이 안 나는데 어느 학생 둘이 집을 지하실에 살 땐데 찾아왔어요 선물을 잔뜩 사서 자가용에다 사가지고 와서 선물을 켭켭이 쌓아놨어요 존경하고 강의도 잘 하시고.. 그때 뭐 전혀 경험이 없었으니까 아 그러냐고 고맙다고.. 마지막 결론이 뭐냐면은 낙제 안 하게 점수를 좀 올려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날 저녁에 고아원 갖다 줬어요 그리고 편지를 썼어요 호통을 쳤어요 저보다 나이가 다 열 살씩은 많은 학생이었는데 열 살이 뭐야 한 스무 살은 많은 학생이었는데 너무 너무 불결한 거예요
그러니까 놀랍게 겉으로 볼 때 그렇게 성실하게 교회 다니는 사람을 안 만나주시던 하나님이 쓰레기같이 살던 인간을 만나 주시는 거에요 근데 사실은 불공평한 게 아니라 너무 너무 공평한 거예요 창녀 세리 인생 막장에 간 쓰레기들 그런 사람을 만나 주세요 왜냐.. 최소한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예배와 제사와 그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아첨하고 자기 자신의 행복을 도모해보려는 보려는 사특함이 없어요 죄는 지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 깊이 깨뜨려져 고통하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를 용납해달라고 자기가 범죄하고 악을 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주님 없이는 도저히 살수 없게 되었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은혜를 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갈망하는 거죠 마음에 없는 제사로 형식에 맞게끔 희생을 드리므로 하나님 앞에 뭔가 도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접근하는 거죠 하나님이 그 마음을 받은시는 거죠
그래서 십 사절에서 십 오절은 하나님이 새로운 방식의 예배를 제시하시는 거죠 그러면 그런 하나님이 당신 스스로 제사 제도를 만드셔놓고 당신이 스스로 그것을 부인하시는데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하는 건가.. 그러면 이 제사제도를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는 거냐.. 그게 아니에요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십 사절에 나오는 내용은 잘 들어 보세요 여기보세요 제사를 드리는 행위가 있잖아요 그거보다 더 넓은 삶이 있을 거 아니에요 또 제사를 드리는 행위가 있죠 그거 보다 좁은 마음이 있을 거 아니에요 이 세 개가 일직선상에서 일치를 이뤄야 된다는 거에요 무슨 얘긴지 이해가세요 다시 한번 할께요 제사를 드리잖아요 제사는 좁은 의미의 제사잖아요 그럼 더 넓은 의미의 제사가 있을 것 아니에요 그게 삶이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뭔지 분별하도록 해라 이것이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건 영적 제사니라 그 뜻이에요 그러니까 더 넓은 의미의 예배가 있잖아요 또 제사보다도 좁은 의미의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있잖아요 이 세 개가 일직선상에서 일관되게 일치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라 이거에요. 제사를 문제 삼으신 게 아니라 제사를 그렇게 드리는데 두 가지가 없는 거에요 삶도 잘못됐고 그것을 드릴 마음도 잘못된 거에요 제사하나를 달랑 드리는데 하나님이 이 제사는 비유를 하자면 삶 전체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이 넓은 의미의 제사의 집약으로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좁은 의미의 예배예요 그리고 이 좁은 의미의 짐승을 바치고 제사를 드리는 이 제사는 마음 안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표현이어야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 제사는 넓은 삶으로 보면은 넓은 삶의 핵심이고 또 마음으로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밖으로의 표출이에요 그것이 일직선상에 있을 때 이 예배는 안쪽으로는 그 사람을 새롭게 해요..마음을..바깥쪽으로는 그 사람의 삶을 새롭게 하는 것에요 그건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근데 이것이 일직선상에 있지 못할 때에는 그게 제사를 드릴수록 이 안에서 영혼이 계속 더 망가지는 거죠
아니 뭐 어떻게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십니까 그러는데 들어보세요 시간이 너무 갔는데 내일 또 하면 되죠 들어보세요 그게 뭐냐면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배의 정신 그리고 상한 마음..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진정한 마음의 각오 그런 게 없어요 그리고 예배를 드려요 예배를 드리는 그 순간에 나는 예배를 드렸다는 의식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거에요 그게 뭐에요 자기 의에요 그것은 하나님을 더 만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거에요 그러니까 예배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이 더 망가지는 거에요 그 다음에 그런 식으로 마음이 더 굳어지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신의 의로 가득 차 있으니까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삶이라고 하는 것은 더 나빠지면 자빠졌지 좋아질 수가 없는 거죠 지금 말씀드리는 게 왜 그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그렇게 삶이 개판이고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심지어는 여러분 새벽 예배까지 나오면서 거의 기도하지 못하고 마음이 어둠속에 쌓이는가 라는 것이에요 예배가 제대로 드려질 때 갖고 있는 파괴력은 굉장한 거죠 수십 년동안 아집에 갇혀 살던 사람이 한번의 예배로 하나님 앞에 그거를 버리잖아요 엄청난 이익이 걸려 있어서 포기 못 하고 살던 그것을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그 예배 속에서의 감격이 그 사람의 삶 자체를 바꿔 놓잖아요 시간이 많이 됐는데 30초만 할게요
(예화)지방으로 집회를 내려 갔어요 그날 저녁에 어느 집사님 한 분이 와서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나를 밥을 사 주러 그 다음날 가는 거에요 근데 목사님하고 둘이서 대화를 하는 거에요 자기 담임목사하고..아 목사님 저 어떻하죠.. 포기해요 포기해..하..그래야 되겠죠..지금 전화 하세요 포기하세요..그래서 뭔 소리를 하나..전화를 띠디디 걸더니 무슨 건설 아무게 사장입니다. 제가 그 공사를 못할 거 같은데 당신이 좀 대신해 주면 안 되겠소? 그래서 제가 뭔 얘기냐 했더니 건설업을 하는 사람인데 절에서 공사가 들어왔다는 거에요..40억짜리..그 사람 얘기가 뭐냐면 공사를 하면 교회는 돈을 잘 안 주는데 절은 너무 잘 준대..잘 깎지도 않는대..왜 그러냐니까 교회는 믿음으로 집을 짓고 절은 돈으로 짓기 때문에 그래서 수입이 괜찮다는거에요..어제 집회 참석하고 은혜를 받고 보니까 자기가 그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 보세요 그거 40억짜리 공사하면 돈이 얼마나 남겠어요 20프로만 자기가 잡아도 8억은 남을 거 아니겠어요 그거 누가 가가지고 공갈하면 그 돈을 포기 하겠어요 협박하면 포기 하겠어요 예배 한번 참석하고 나서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젠데 내가 손가락을 빨아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예배가 삶을 그렇게 변화시키는 거에요 그게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예배에요 새로운 방식의 제사에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