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로 드리는 제사 (가칭)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이제 마지막 절에서 시편 50장 전체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헛된 제사를 드리지 말고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감사가 대체 무엇이 길래 이것이 결론이 되는 것일까요? 여기서 말씀하시는 감사란 흔히 일상 속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 때 고맙다고 말하는 단순한 호의의 표시가 아닙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은 나를 믿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그것은 신뢰감이나 미더운 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히 다른 것이죠.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우리들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믿음이란 하나의 선입견과도 같은 것입니다. 한 사람이 나에게 신뢰할만한 행동을 계속 하게 되면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갖게 되고 그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며 그 동기도 그릇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선입견을 갖게 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그와는 다른 것입니다. 전자의 믿음이란 영혼의 변화라고 말할 수는 없고 단지 내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전제일 뿐입니다. 과거의 일들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영혼의 움직임은 아닌 것이지요. 물론 모든 정신의 작용을 넓은 의미에서의 영혼의 움직임으로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인상을 느끼고 맛을 보고 기뻐하고 싫어하는 모든 것도 영혼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가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활발한 움직임이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 영혼의 강한 변화이며 보다 더 강력한 움직임으로서 도덕적인 방향을 결정하게 하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물론 사람에 대한 믿음도 도덕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사기를 쳐서 물건을 판다고 하더라도 내가 신뢰하고 나를 위해 배반하지 않을 사람에게까지 거짓으로 물건을 팔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사람 사이에서서 오가는 믿음도 도덕적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훨씬 중요한 차이점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자체가 우리 영혼의 중대한 변화입니다. 마틴 루터는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과의 새로운 영적 관계를 갖게 되는데 그 상태를 훨훨 타오르고 이글거리는 쇠가 붉은 빛을 내며 가열되는 것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단순한 호의의 표시가 아니라 도덕적 방향까지 결정하게 하는 영혼의 강력하고도 매우 활발한 움직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문맥상 추가 했음)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선 하나님이 제사를 강요하고 제물을 탐내시는 분이시라는, 당시 이방신에 대한 생각을 하나님에게 적용 하면서 결국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현저하게 느슨하게 만들고 거기에 충성하고자하는 의무를 상실하므로 악을 행하고 동족간의 자비와 선행이 사라지는 패역한 일들을 벌이는 데에까지 나아갔습니다. 그 모든 것의 문제가 감사가 사라지는 것에 기인한다면 그 감사는 단순한 호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똑같은 내용이 오늘 마지막 절에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릇된 방식으로 하나님을 제사하고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언약에 충실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그 모든 것들이 근본적으로 감사가 없는 데서 출발 한다고 경고하십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람에 대한 감사는 우리 삶 전체를 바꿔놓지 않습니다. 그래도 사람에 대한 감사는 사람에 대한 인상이나 생활에 대한 영향을 미치기는 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불평이 많았던 사람이 커다란 불행을 당해서 생사를 오가는 사람의 처지를 보면서 현재 나의 삶은 그렇지 않는 것에 대해 감사할 땐 그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현실들이 예전과는 현저히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영혼의 강력한 움직임으로서의 진정한 감사의 한 모형이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것도 나름대로 도덕적 효과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얘기하는 감사는 보다 더 훨씬 더 강력하고 본질적인 감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전에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잊지 않기를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이란 하나님의 존재의 위대하심과 하나님의 백성에게 보이신 당신의 도덕적 성품입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의 거룩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그 거룩함을 그 백성의 원수들을 심판하거나 혹은 당신의 백성에게 커다란 역사를 일으키는 구원행동을 통해서 또 당신의 백성을 크게 책망하실 때 보이시는 데 그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의 크기만큼 인간의 영혼은 강력한 움직임을 통해서 자신의 생명과 나라와 운명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감사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의존을 동반한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존재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고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고 지극히 영광스럽다고 하는 자각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이고 자기와 하나님과 맺은 관계에 대해 기뻐할 때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이 감사 속에서 사랑과 믿음과 헌신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달라고 요구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기초가 아니겠습니까? 지극히 큰 위엄을 알았다할지라도 그분이 나와 맺으신 그 관계에 대해 한없이 떨리는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인식하는 모든 행동들은 노예적인 공포에서 행하는 것이지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경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 감사는 하나님과 그 백성사이에서 있어야할 거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 가슴이 시릴 정도로 온전한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될 때 마음에 녹아내리는 그 정서의 경험은 마치 자기의 죄를 인식하고 가슴아파하며 회개하여 하나님이 그 죄를 용서해주실 때 일어나는 마음의 경험과 아주 유사한 것입니다. 죄의 깊은 용서를 경험하고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구원행동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감사로 그 심정이 녹아내릴 때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하나님에 대한 무제한의 복종과 헌신의 마음에 형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것만큼 자신의 삶 속에 적용하고 끝임 없이 순환(?)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 신앙의 지식들이 증가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경험은 이차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경험의 확실한 주인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빼도 좋을 것 같은데...)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종교(‘신앙’이라고 단어를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다양한 종교라고 하면 논란의 여지가 있을 듯해서..)의 경험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올바르게 판단되기만 한다면 성경 다음으로 훌륭한 정보가 되는 것입니다. 꿈꾸는 것 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나서 하나님을 향한 말할 수 없는 깊은 감사가 흘러나와 - 본성으로 하는 행동과 영혼으로 하는 행동에는 구별이 있습니다 - 그 감사의 마음이 우리의 영혼을 가득 채워서 나 같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감당할 수없는 큰 특권임을 알게 되어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감사의 정서를 느끼게 될 때 그 감사는 무제한의 헌신과 복종, 순종을 수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드리게 되는 것이지요.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불 때, 우리의 마음이 바쳐졌을 때 그런 마음을 통해서 흘러나오게 되는 하나님을 향한 모든 아름다운 행동은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나게 됩니다. 이 감사가 하나님께 놀라운 기쁨을 드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명감이라고 말할 때 -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사명감이 없이 올바르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위치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통해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게 되는 것이기에 사명감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 자기가 이 자리에 있고 구원받게 되고 이렇게 세워주신 것이 말할 수 없는 큰 은혜요 나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큰 특권이라는, 하나님께 기울어지는 감사의 마음과 은혜의 작용 없이 언제까지 하나님께 복종하는 사명감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감사와 헌신은 따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항상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자, 그 사람이 바로 행위를 옳게 하는 자와 병행을 이루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경건한 의무 중 하나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받은 것에 대해서 ‘매 순간 현재적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쁜 일이라도 그 당시엔 극도로 기쁨을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영혼은 그 상태에 대해서 금방 익숙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현재적으로 느껴지고 받아지기를 바라시고 원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