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용서하소서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 하소서”(시 51:1).
다윗의 시 중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내용들이 들어있는 시들을 함께 모두 묶어서 우리들이 ‘참회시’라고 부릅니다. 이 참회시의 특징은 자신이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 용서해달라고 빌고, 그리고 그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갖는, 그러한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특별히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사실 자기의 죄를 깨달을 수 없는 그러한 존재입니다. 마음에 양심이 있어서 그것이 우리가 죄 지은 것을 우리의 마음에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그러한 자각의 기능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양심의 기능도 사실 온전히 신뢰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이 양심의 기능도 아주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고, 또 주변의 환경에 따라서 이 마음이 가지고 있는 양심의 기능이 현저히 달라져요. 무슨 뜻이냐 하면, 예를 들자면, 사회가 깨끗할 때에는 잘못된 일을 하면 양심이 어느 정도 제 기능을 하지만, 사회가 전체적으로 부패되어 있을 때에는 양심이 제 기능을 잘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게 보통,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다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 양심의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 속에 붙어서 우리가 지은 죄를 고발하고 또 정죄하는 그러한 기능을 가지고 있어요. 양심은 홀로 역사하지 않고 인간의 의식 속에서 역사를 하죠. 다시 말해서, 어떤 일을 했다고 하는 의식이 살아 있을 때, 그 의식 안에서 죄를 지었나 잘못했나 하는 것들에 대한 인식이 살아있게 마련이지, 그게 없으면 기억 자체가 사라졌는데 양심의 가책이 남겠어요? 그런 얘기죠. 그래서 우리들이 죄를 깨달을 때 특별히 하나님 앞에 그 죄를 가지고 나아가서 용서를 빌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참회를 하게 될 때 그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될 때에는 몇 가지 과정이 필요한데, 우선 하나님께로부터 비추이는 말씀의 참된 빛이 필요합니다. 그래야지만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이것이 하나님 앞에 지은 큰 죄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는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공정한 판결을 내리시는 것은 양심의 작용을 통해서 말씀의 빛으로 자각을 하게 되는데, 그 다음에는 그 죄를 하나님 앞에 용서받기 위해서 시인이 늘 하던 것이 하나님의 성품에 주목하는 것이었어요. 모든 희망은 하나님의 성품에 있어요. 그래서 오늘 성경을 보면 인자를 좇아, 그리고 자비를 좇아 라고 되어있어요. 그래서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자비를 좇아 내 모든 죄과를 도말 하소서 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인자를 좇아 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내가 용서받기를 원하는데, 그렇게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기 원하는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그러한 사랑, 인자, 결국 사랑이거든요. 그러니까 가치 없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그 아가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 나 같은 죄인들을 사랑하실 수 밖에 없는 그런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성품을 근거로 해서 자기에게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것이에요. 병행구로 반복이 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라기 보다는 병행을 이루면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이 탄원을 심화시키고 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비를 좇아 내 모든 죄과를 도말 하소서… 여기서 ‘죄과’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남은 그러한 마음과 영혼의 흔적이고, 또 거기에 대해서 벌을 받기에 적합한, 벌을 받기에 알맞은, 그러한 오류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그러한 것들을 깨끗이 씻어주십시오 이런 이야기죠. 예를 들면, 죄는 어떤 것을 악을 행할 때에 범하게 된 잘못 자체를 이야기 한다면, 그것 때문에 생겨난 결과들 있죠, 그것들이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죄과에요. 예를 들자면,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허랑방탕하게 재산을 다 허비해버린 그 자식을 용서해주셨어요. 그렇지만 그가 허랑방탕하면서 과음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해서 위가 망가지고, 불결한 생활로 인해서 몸에 질병들이 생겼다면, 그것까지도 낫게 해달라 그 뜻이에요. 쉽게 이야기하면.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으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호소하는 것이죠. 결국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한 사건과 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그렇게 충성스럽던 우리아를 살해한 사건이었어요. 그러니까 이 일로 인해서 그는 영혼에 큰 상처를 입고 영혼이 병들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명백하게 살인의 죄를 저지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율법에 따라 죽임을 당해야 할 상황이었죠. 이 율법에 의하면 살인을 하면 반드시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율법대로 하면 다윗이 돌로 쳐 죽임을 당하던지 죽어야 되는 것 아니에요? 그러한 죄과를 지니게 되었는데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것이에요. 그러면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어떤 잘못을 해서 악을 행하고 죄를 짓는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에게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죠. 우선 제일 먼저 그렇게 죄를 지은 것 자체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 속의 깊은 동의에서 우러난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그 죄를 품고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에 아주 깊은 상처를 남기고 영혼을 망가뜨려요. 망가뜨린다고 하는 것은, 영혼이 가지고 있는 올바른 기능들을 파괴하고 깨뜨리는 이러한 잘못된 역할들을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이러한 잘못된 역할들을 하게 되고 그리고 뿐만 아니라 그렇게 죄를 짓고 나면 잘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인간의 경우 대부분 죄는 짓지만 이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없을 때가 많은 것이에요. 왜냐하면 인간이 지은 죄의 크기가 그 무한하고 크기 때문에 무엇으로도 그 죄에 대한 갚음이 안 되는 것이죠. 결국 인간이 지불할 수 있는 최고가 사망이에요. 그런데 그것으로도 사실은 갚았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사람을 살인했다 칩시다. 그래서 그 대가로 인해서 이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고 해도 살인한 그 사람을 살려낼 수는 없잖아요. 하나의 보복적인 개념에서 똑같이 징벌을 당한 최대한이 죽임을 당하는 것뿐이지, 그것이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낼 수는 없잖아요. 그러한 점에서 죄의 결과는 사실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죠. 또 설령 어떤 사람이 어떤 악을 행한 것에 대해서 충분히 제물이나 또다른 방법으로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 갚았다고 할 지라도 인간이 그 죄를 지음으로 가리웠던 하나님의 영광은 복구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회복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보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오늘 이 시인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 너무나 큰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자기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리고 자기를 죄를 지은 모든 결과로부터 도말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기도가 그냥 자기 마음 속에서 생겨나는 소원을 하나님 앞에 생각도 없이 토해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한 성품을 주목하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주목하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그 성품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라고 하는 성품이에요. 이 ‘자비’라고 하는 성품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 속에 다 들어가는 것인데, 죄인의 비참한 상태를 보고 아파하고 슬퍼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이런 것 있잖아요,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고 그 결과로 커다란 불행을 안고 비참하게 되었을 때, 그 악을 행한 것을 생각하기 보다 그 사람이 처한 비참한 상태를 먼저 생각할 때 그를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들잖아요. 그렇게 죄인의 악보다는 그가 현재 처하고 있는 비참한 상태를 주목하게 만들어 주는 것, 이게 바로 자비의 성품이에요. 이러한 자비의 성품을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이러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죠. 그러니까 결국 신자가 죄 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에 관한 지식,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지식이 아주 탁월할 때, 그 때에 그는 유리점을 갖는 것이죠. 자기가 죄를 짓고 행한 것은 매우 잘못한 것이지만, 그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지식 안에서 하나님을 묵상하며 그 성품에 호소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죠. 그 때에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그 죄과에서 깨끗함을 얻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를 알아가는 것이죠. 그렇게 변화되어 가는 것, 이것이 신자의 삶이요, 신자의 일생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