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씻기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2-3).
다시 한번 시인은 자기의 죄를 하나님께서 씻어주시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눈 여겨서 보면,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는 두 개의 동사가 반복이 됩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제하소서’ 이렇게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엄격히 말하면 앞에 나와있는 ‘나의 죄를 씻으소서’ 하는 이야기는 자기가 지은 죄, 그러니까 이미 이루어진 그 죄, 그리고 그것에는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의 어떤 형벌이 뒤따르지 않겠어요? 거기로부터 자기를 씻어달라는 고백이고, 두 번째 오는 기도, ‘나의 죄를 제하소서’ 라고 하는 이 기도는 지금 현재 이루어진 죄가 아니라 자기의 마음 속에서 자기도 어찌할 수 없도록 강한 힘을 가지고 역사하는 그러한 죄의 경향성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다윗이 죄를 지었을 때 자기가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고 회개를 시작했지만 자기가 행한 일이 너무나 엄청나고 큰 일이에요. 이것이 앞으로 어떤 결과들을 몰고 올지, 일반적인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것들이 앞으로 어떤 결과들을 몰고 올지, 그리고 또 이렇게 행한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내리실 징벌이 어떤 것일지, 깊은 두려움에 떨면서 그는 자기의 죄를 씻어달라고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갛게 씻어달라’고, 마치 세탁을 하듯이, 그래서 옷에 어떤 얼룩이 묻고 점들이 생기면 그것으로 인해서 의복이 더러워져서 입을 수 없는 의복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서 자기의 죄를 씻어주시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탄원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곡하게 탄원하면서 그것이 세탁되어서 깨끗이 씻겨 나갈 때 옛날에 그 옷에 그런 더러운 것이 묻은 적이 있었는지 표시가 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자기를 씻어달라고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중적으로 시인은 어려움에 사로잡히고 있는데, 하나는 과거에 이미 행한 자신의 죄에 대한 끊임없는 후회의 고통과 그리고 지금 자기 안에서 역사하고 움직이는 또 다른 죄의 힘입니다. 그래서 이미 이루어졌지만 이루어진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지금 자기 마음 안에서 이것들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또 다른 현실을 경험하면서 하나님 앞에 안타깝게 기도하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신자가 죄를 범했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세가지 밖에 없어요. 하나님 앞에 지난날들을 깊이 회개하고 돌이키던가, 두 번째로는 지난날에 이미 일어난 자신의 죄과에 대해서 끊임없는 후회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원망하든가, 자신의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후회,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끊임없는 후회와 그리고 끊임없는 집착은 결국은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게 되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환경을 허용하신 하나님께 대한 원망, 절망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절망의 정체는 욥기에 나와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욕하고 죽는 거에요. 그것이에요. 그래서 이미 일어났고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일 경우에는 그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그것이 회개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죠. 이미 일어난 일인데 어떻게 하겠어요? 끊임없는 후회는 우리로 하여금 정당한 회개로 데려가지 않고 우리를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절망으로 데려가는 것이죠. 그게 두 번째이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이미 죄를 지음으로 자기 안에 형성된 그러한 잘못들을 가지고 계속해서 그 가던 길을 가는 거에요. 그게 바로 신자의 삶의 행할 수 있는 세가지 삶이에요.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과를 씻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빌면서 또 한가지 비는 게 무엇이냐 하면,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해주시옵소서, 지금도 자기 안에서 한편으로는 지난 날에 지은 그 죄에 대해서 깊이 마음 아파하고 뉘우치면서, 또 한 편으로는 그로 말미암아 생겨난 그 성향 때문에 자기가 또 다시 죄를 지으려고 하는 이것이 안에서 강하게 솟구치고 역사하고 있는데 이런 죄의 소원을 자신도 어찌할 수 없이 깊이 고민하며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바는 무엇이냐 하면,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앞에 항상 죄가 있나이다’ 이것이 결국 무엇을 의미하냐 하면,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 죄의 용서를 빌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도,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지금 한편으로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 앞에 그 죄에 대해서 용서해 달라고 빌면서도 또 한편으로 지금 내 안에서 역사하며 또 그것을 행하려고 하는 모순된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일단 바이얼린을 생각해보세요. 줄이 있어서 그 줄로 연주를 하는데 일단 그 줄이 풀어져서 이게 음이 맞지 않게 되면 아무리 정교하게 연주를 해도 결국은 그 바이얼린이 불협화음을 내는 것처럼 똑같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이 영적인 삶도 그런 원리에요. 그래서 아무리 정성을 들이고 바르게 하려고 매번 애를 쓴다 할지라도, 이 영혼이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되어서 조율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면 항상 불협화음을 끊임없이 내게 되어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해서 그래서 이 마음 속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이것이 자신의 마음 속에서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되도록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영혼의 튜닝이에요. 그러한 것들이 언제든지 조화를 깨뜨리고 내면의 세계가 흐트러지고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자기자신을 돌아보면서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일깨우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우리들이 기도를 하다가 마음이 깊이 상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기도하게 된다든지, 아니면 때로는 굳이 그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감동을 받아서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보고 올바르게 한다든지, 혹은 또 설교를 듣던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들을 읽으면서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주 강하게 격려를 받는다든지, 이런 모든 것들이 흐트러졌던 우리 영혼 안에 있는 줄들을 올바르게 튜닝하는 것이란 말이에요. 그렇게 잘 마음의 질서들이 튜닝될 때 그 때에, 아주 정성을 들인 그런 연주가 진가를 발휘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마음이 질서들이 바르게 되어있을 때 그 때 바로 그 질서 안에서 삶이 나오고 그 질서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받아들여지고 그 질서 안에서 내가 내 자신을 정확하게 보게 되고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결국 끊임없이 인간들이 죄를 피하려고 해도 결국은 그 죄에 에워싸여 살고 있고 유전자 자체가 죄를 좋아하는 성품들이 있기 때문에 일단 그 죄의 즐거움과 맛을 알고 나면 신자는 그 죄의 유혹과 그 죄가 자기를 자각하는 그런 강한 흡입력, 매력을 끊지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럴 경우 지식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죠. 예를 들면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그게 나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행하잖아요. 아이들이 불량식품이 안 좋은 것이라는 것을 머리 속으로 알면서도 거기에 일단 맛을 들이고 끌리게 되면 먹게 되잖아요. 똑같이 그런 것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죄를 짓지 않겠다고 매 순간 결심하는 것도 훌륭한 것이지만, 더 좋은 것은 무엇이냐 하면, 영혼의 참된 즐거움을, 하나님을 알고, 발견하고, 사랑하고, 순종하고 하는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일단 신자의 영혼이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에서 기쁨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것은 영혼에 빨간 불이 들어온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을 의지하며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에게서 끊임없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그렇게 해야 해요. 그래서 하나님 이외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별로 없도록, 그 때에 그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리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하는 그 일에 열심을 내게 될 것이에요. 그래서 일단 신자의 마음 속에서 이런 하나님에 대한 기쁨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그 창고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그 진수가 바로 성경이기 때문이에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맛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런 생활,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매일매일 신앙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