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키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12).
시인이 죄를 범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 경험하게 된 또 한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구원의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그제는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면전 의식을 잃어버렸다 그랬는데, 여기에서는 구원의 즐거움을 상실한 것이죠. 여기에서 말하는 구원의 즐거움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다윗이 경험한 구원의 즐거움은 이중적이었습니다. 우선 제일 먼저는,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될 것은, 구약 시대 사람들이 느끼는 이 구원의 행복과 즐거움이라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것과는 훨씬 다른 질의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신약 시대의 구원의 즐거움이 구약시대의 그것에 비해 훨씬 영적인 것이라는 것이죠. 설명하자면 이러한 것이에요. 신약 시대에는 지난 주일에 우리들이 말씀을 통해 알게 된 바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리고 우리 안에 충만하게 오셔서 그래서 우리 자신이 성탄절의 설교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임마누엘을 먼저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세요. 이것이 사실은 예수님께서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의 은혜의 누림에 대해서 비교하시면서 말씀하신, “세례 요한이 여자가 난 자 중에서 그보다 더 큰 자가 없지만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 보다 크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우리가 미래에 갈 천국이라기 보다는 신약 시대에 성도들이 누리게 될 그 진정한 행복을 말하는 것이에요. 세례 요한의 경우도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에 속하거든요? 물론 선지자들도 성령이 임하셨지만 그 성령이 임하셔서 그와 함께 하시는 정도가 선지자들마다 조금씩 달랐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례 요한은 무시할 수 없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었고, ( ? ) 라고 하는 개혁파 정통주의 학자에 의하면 세례 요한 같은 경우는 어머니의 태 속에서 중생한 사람으로 봐요. 그런 정도의 성령의 특별한 임하심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많지 않고, 또 그가 공적인 사역으로 나아가기 전에 빈 들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게 임하였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구약시대에 독특한 선지자에게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에요. 다윗도 역시 구약의 선지자 중 한 사람이었고, 모든 선지자들 가운데 탁월하게 하나님의 성령의 임하심을 경험한 사람이었어요. 그렇지만 신약 시대에 이 성도들이 누리는 것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신약 시대 성도들이 누리는 이 구원에 대한 영적인 경험의 질이 훨씬 탁월하고 높은 것이었다는 것이에요. 새벽시간이니까 제가 이것을 논증할 시간은 없습니다마는, 핵심적인 것 한가지만 더 보태보자면 이러한 것이죠. 우선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어요. 왜냐하면 이 당시에도 죄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백성으로 삼아 주신다 라고 하는 것은 물론 있었지만, 그러나 어디까지나 구원하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신앙 안에서 주어지는 구원 경험이에요. 그러니까 희미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믿기는 믿지만, 사실은 그 실체에 대해서는 희미한 것이죠. 그러나 신약시대의 성도들의 경우에는 성령의 역할 그 자체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증거하시는 것이에요.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이에요. 성령이 각 사람에 오셔서 가장 주요하게 하시는 당신의 일이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각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불신자이다가 신자가 된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성령의 첫 경험은 그리스도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알게 하셔서 믿게 하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신약 시대의 경우에는 자기를 위한 구원의 사건을 받아들일 때 희미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주 명료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 면에 있어서도 신자가 경험하는 성령의 임재 속에서 자신의 구원을 느끼는 이 경험의 질이 현저하게 다른 것이라 이것이죠. 이것을 보면서 우리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되냐 하면, 오히려 구약에서는 영의 임재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하신 즐거움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섭리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그 섭리 속에는 비상섭리도 들어가고 일반섭리도 들어가요, 비상섭리라는 것은 기적이잖아요? 기적이든 섭리든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육적으로 자신을 건져주시는 것을 통해서, 오히려 거꾸로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특별한 백성으로 삼으셔서 영원한 죄에서 자기들을 건져주신다는 것을 믿는 데로 나아갔다면, 신약 시대에는 정 반대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것들을 통해서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직접적인 임재 속에서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의 사건을 생각나게 해주셔서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자녀 된 것을 내주하시는 성령이 인치시고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증거를 해주시는 것이죠. 아무 표적이 없어도. 그래서 환란과 시련이 많이 와도 그 성령의 증거가 있으면 그 시련과 환란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시고 자기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것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죠. 이러한 방식으로 현저한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구원의 즐거움이 이중적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하나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육적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적으로 성령의 임재 속에서 그것을 경험하는 것인데 다윗의 경우에는 특별히 둘 다 아주 풍성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끊임없는 감화를 통해서, 밤 중에도, 새벽에도, 아침에도,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자신의 구원의 관계를 인치는 그런 경험 속에서 살았고, 또 섭리적인 면에서는 끊임없는 전쟁 속에서 자기와 함께 하셔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이런 구원의 즐거움을 이중적으로 경험했던 것이에요. 신약에서 성령님은 믿는 자 안에 오셔서 그 안에 언제나 내주하심으로써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너희를 버리지 않겠다 라고 하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죠. 구약에서는 성령이 오셔서 어떤 사람에게 직임을 주셔서 일을 끝내시면 떠나시는 것이에요. 그런데 성령이 구약시대에도 성령이 오셔서 그 신자 안에 특별히 머무시는 그런 중에서도 신약 시대에 경험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근심시켜드리고 슬프게 해드리면 이 안에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일정 부분 철수시키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완전히 거두실 때가 있고, 그를 버리시기로 작정하셨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완전히 거두시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이 현저하게 은혜의 역사들을 철수시키세요. 다윗은 후자를 경험한 것이에요.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했을 때 그 속에 누가 생각이 났겠어요? 전임자 ‘사울’이 생각나지 않았겠어요? 하나님이 그 성령을 거두셨을 때에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 비참한 말로를 아주 똑바로 보았던 것이죠. 그러니까 그러한 하나님의 특별한 성령의 임재가 있었던 사람들은 소수이고, 하나님께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일단 그것을 거두시고 나면 그것을 받지 못했던 사람보다 더 비참하게 되는 것을 다윗이 아주 선명하게 보았던 것이죠. 그리고 자신도 그렇게 버림을 받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고 하는 아주 깊은 현실적인 두려움을 사실 처음으로 경험했던 사건이었단 말이죠. 그래서 구원의 즐거움이 현실적으로 사라진 것이에요. 그러면서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 같은 그런 깊은 두려움을 느꼈으니, 이는 구약의 성도들이 느끼던 구원 경험의 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그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탄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무엇을 발견하는가 하면, 신앙에 있어서 이 올바른 경험의 질과 깊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니까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항상 그 사랑의 감정과 표현이 후퇴해 있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랑의 표현 그 자체가 계속 앞으로 가지 못하지 후퇴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에요.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채 하나님의 면전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에요.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경험했던 그것으로 돌아가기 까지는 견디지 못해하는 이 다윗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신앙에 있어서 한번이라도 올바르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그런 진리 안에서의 경험이 있으면 그것이 기준이 되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받고 있는 영혼의 복된 상태에 대한 가늠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더 많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이 하나님을 추구하고 의지하며 살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이에요. 12절에서 우리들이 경험한 바가 바로 그것이에요. 다음 시간에 뒷부분을 더 해드리겠습니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해 달라는 간절한 탄원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죠. 신자가 범죄하거나 마음으로 불순종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 사람 안에 있는 은혜를 거두시죠. 거두시고 나면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이 즐거움이 현저히 사라지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은 용서를 통해서 경험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던 성경의 모든 인물들은 그 사랑의 경험의 핵심에 공통점이 있는데 자기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에요. 다윗이 이러한 깊은 고통 속에서 자기를 용서하시는 은총을 경험하고 시편 130편에서 노래하잖아요? 그러한 용서에 대한 깊은 경험을 통해서 이 다윗이 더 심오한 하나님을 아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러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