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종말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
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
(시 37:35~37)
녹취자: 안두현
사실 눈에 띄게 들어나는 것은 선한 사람들의 번성함이 아니라 악인의 융성함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눈에 잘 띄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우리 인간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악인의 번영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우리의 마음을 혼란시키는 현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려서부터 배울 때에는 상선필벌, 상선악벌 그래서 선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상이 주어지고 악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벌이 주어진다는 것이 우리가 배운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자라서 세상 밖에 나와 보면 세상이 그런 원칙에 따라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때에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올바르게 선하게 살아야 할 동기를 박탈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유로운 사회일수록 선악의 가치가 분명하고 그 가치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여야지만 가치가 확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규칙을 어긴 사람들이 부를 갖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도모한다라고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어느 시인이 말하기를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여기에서도 악인이 단지 악인으로서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큰 세력을 형성해서 그 번성함이 대단한즉 그것이 마치 본토에서 나무의 무성함 같다고 했습니다. 본토라고 하는 것은 원래 그땅에 서있는 푸른 나무가 아주 무성하게 자라는 것 같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성한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에 보면 자취도 없이 모두 없어져버렸다. 이것이 바로 악인의 종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제 땅에 서있는 큰 나무와 같이 무성한 악인들이 어느 순간에 보니깐 하나도 없더냐 하는 것이죠. 사람은 악인이 번성할때에 사람들이 많이 보지만 그것을 보고 과연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가하고 의문을 느끼지만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악인이 번성한 그것이 잠깐 동안 있었던 일이고 그러한 현상이 있다고 하다라도 결국은 하나님이 만물과 세상을 다스리시는 통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성한 것 같았지만 그것은 마치 제자리에 심어놓은 나무가 번성한 것이 아니라 나무를 잘라서 쓰려뜨려놔도 잠시도 그 나무에 물기가 남아있는 동안에는 아주 그 무성함이 마치 제 땅에 꽃혀있는 것처럼 그렇게 번성한다 할지라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뿌리부터 잘라서 그것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얻는 믿는 사람들의 교훈은 악인의 번영함을 부러워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그것은 너희들이 보기에는 번성하는 것 같고 이기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것은 뿌리가 잘리우고 번성하는 것과 같이 오래 번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잘라 놓으면 잎사귀의 무성함이 그 잘리워진 순간에는 산에 있는 심겨진 나무의 무성함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여기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근원이 없기 때문에 곧 마르고 마르는 것처럼 악인의 번성함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사람을 보아라 화평한자의 결국은 평안이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악인은 번영하는 동안에도 계속 불안합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삶의 번영만을 보고 그들의 기쁨과 행복도 그와 같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악인의 번영함은 번영함 그 속에서도 내면의 깊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번영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완전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완전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니 성경이 말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완전이 말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이 완전함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시대와도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노아는 홍수가 끝나고 난 다음에 그의 행동이나 태도를 볼때에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 경건이 풀어진 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을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자라 그렇게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완전하다고 하는 것은 따라서 상대적인 것입니다. 결점이 없다라고 하기 보다는 여기서 완전한 사람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뜻에 보다 더 가깝게 다가가서 하나님 앞에 순전하게 살려고 하는 경향을 지닌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볼때 커다란 흠을 찾기가 어려운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봐라 그리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같은 말의 반복이지만 완전히 만약에 바깥으로 나온 어떤 행위들을 율법으로 조사한 결과 비교적 완전한 것을 가리킨다면 정직은 이러한 완전한 삶이 흘러나오게 만든 그의 내면의 성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외면의 삶을 그 개천처럼 추적해서 마지막에 그것이 그사람 안에 있는 성품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규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사람에게서 선한 행실이 악한이에게서는 반드시 악한 행실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는 이것들이 그렇게 해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봐라 하였더니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라. 그렇게 완전한 것이 그의 행위고 정직한 것이 그의 성품이라면 화평한 것 이것은 그사람의 내면의 세계이고도 그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사람들과 평화를 도모하고 하면서 살아가는 그 삶이 바로 평안이다. 하나님과의 화목의 뚜렷한 특징은 평안입니다. 편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편안 속에서 우리의 이 지성은 가장 잘 활동하고 우리의 의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잘 통제받고 결국 우리의 정서는 하나님 앞에 가장 훌륭하게 이렇게 고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인간의 구조 속에 기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온전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것이 평안이 아니라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온전하게 살아가려고 할때 하나님이 그 마음을 보시고 선물로 우리 인간에게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성경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만약에 많이 먹고 큰 부를 누리고 자원을 많이 소유해서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라고 생각을 하면 그러한 것들을 얻는 댓가로 이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법을 넘나드는 모험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진정한 복이 하나님과의 평화에 있다고 가르치고 그리고 거기로부터 흘러 넘치는 그래서 마치 인생을 사는 그 삶의 원리는 물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서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오는 그 기쁨과 은혜가 샘솟듯 솟아나서 그래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흘려 보내지 않아도 이것들이 넘쳐나면 그의 성품과 인격을 적시고 그리고 그것들이 끊임없이 흘러가서 주위의 땅들을 두루 적시면서 그러면서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이처럼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붙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