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눈물 흘릴 때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시 39:12).
헷 사람들 앞에 한 아브라함의 자기 고백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까? 나는 이 땅에 들어와 우거하는 나그네라. 이게 아브라함의 자기 고백이었습니다. 그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믿음의 조상들은 자신을 이 땅에서 나그네라고 생각했죠. 다윗은 이미 한 나라의 왕이었고 이제는 더 이상 나그네처럼 방황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다윗이 자기가 "이 땅에서 거류자가 됨이니이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거류자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 원어 뜻으로 보자면, 묵어가는 과객이에요. 그것이 거류자의 의미에요. 그렇게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고, 요셉 같은 사람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는데도 거기는 진정으로 자기 땅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의 땅, 영토, 조국의 문제가 아니라 천성을 향해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이 영원히 나그네 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신자들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영원한 집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땅이 있고, 지위를 갖고, 영구한 영토를 소유한 것과는 상관없이 그들에게 이 세상은 나그네 길입니다.
그들이 나그네라 또는 외국인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히브리서 11장에 의하면 그들이 떠나온 본향보다 더 좋은 본향을 사모하기 때문이다 그랬습니다. 이 시인이 비록 한 나라의 왕이었으나 하나님 앞에 깊이 낮아져서 자신을 돌아보게 될 때에 이 세상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이 인생길은 나그네 길이요, 자기는 이 세상에서 지나가는 과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언제 이런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까? 범죄하고 악을 행하며 사는 동안에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욕망은 항상 죄와 우리를 하나로 연합시키고 이 세상의 끈끈이에 달라붙게 만듭니다. 그래서 찰진 세상 사랑에 빠지게 하고 그리하여 마치 이 세상이 우리의 본향인 것처럼 그리고 이 땅이 우리의 인생의 전부이고 이 이상 다른 것은 우리에게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그 세상 속에서 세상과 함께 울고, 세상과 함께 웃고, 세상과 함께 정들고, 세상과 함께 한 덩어리가 되어서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러는 동안에 그의 영혼과 마음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는 모든 힘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실제로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얼마나 많이 누리고 있느냐, 누리고 있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가난을 칭찬하거나 높은 덕으로 칭송하지 않아요. 또 부유하고 높은 권세를 지닌 것도 성경에서는 덕성스러운 것으로 높이거나 칭찬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관심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성경의 관심은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주님을 얼마나 의지하고 그리고 그분을 향해 온전한 순종 속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이 마음과 영혼의 경향을 가지고 있느냐를 보면서 그를 덕성스럽게 평가하는 것이죠. 어떤 사람은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서 세상과 하나가 되고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더욱 세상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려고 하기 때문에 세상과 한 덩어리가 됩니다.
문제는 이 시인이 욕망을 따라서 죄짓고 범죄 하는 동안에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자기 것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깊은 고통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에는 오히려 하나님 생각이 안 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나니까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다시 간절해지게 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복된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셔도 그리고 그것을 누리면서 살아도 이것은 모두 지나는 것이며 그리고 내 인생의 본질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다 잠시 지내는 나그네 길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거죠. 그 때에 매 순간을 그 종말론적인 기대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또 하나는 이 시인이 "나는 주께 객이 되었습니다. 주님께 손님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신분으로 말하자면 이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아닙니까? 언약 백성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주께 객이 되었습니다."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주님께 낯 설은 자가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거죠. 무엇 때문입니까? 늘 친밀하고 그 사랑 안에서 살아야할 이 시인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낯 설은 자가 되고 주님 앞에 객이 되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언제 하나님이 그를 떠나셨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것은 불가능해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만 불순종하고 악을 행하면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거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가능해요? 그래서 시인이 뭐라고 했어요?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붙드시나이다. 내가 주의 낯을 피하여 어디로 가리이까?" 고백했던 것이죠. 결국 "주께 객이 되었다"라고 하는 이 말은 예전에 하나님을 대면하면서 경험하였던 그 아버지의 친밀함
(찬송)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그런 주님께로부터 비춰오는 그 친밀한 사랑, 그런 것이 사라졌다는 것이거든요. 무엇이 그것을 사라지게 했을까요? 이 시인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을 멀리 떠났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던 애틋함 들이 사라진 거죠.
우리가 정말 소중한 것은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그 소중한 것을 몰라요. 부모도, 자녀도, 아내도, 남편도, 교회도, 목회자도 정말 잃어버리기 전에는 얼마나 소중한지를 몰라요. 그게 인간이에요. 시인도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평안하게 살 때에는 숨 쉬며 살아가는 사람이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하나님의 그 고마움을 몰랐죠.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단절을 경험하고 난 다음에 주께 객이 되는 그것이, 이 세상에서 거류자가 되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경험하게 된 거죠. 아마 이때쯤에는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다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회복시키고 싶었을 것이고 그 은혜를 다시 찾고 싶었을 거에요. 그래서 오늘 시인이 말하기를 나는 부르짖고 눈물 흘립니다.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눈물 흘리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고백했던 것이죠. 이 눈물은 바로 자신에게 너무 소중하던 것들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는지를 깨닫는 눈물이었어요. 그래서 그 눈물은 주님을 찾는 눈물이었어요. 주님을 그리워하고 주님을 보고 싶어 하는 그런 종류의 간절한 눈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시인의 경험을 보면서 우리에게 참 복된 것이 무엇이고, 고난인 것처럼 보이지만 복된 것이 무엇이고, 또 영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참으로 복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헤아릴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우리들이 큰 어려움이 없을 때에 우리의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마음이 가난해 지고 늘 하나님 앞에 자기의 부족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눈물 속에서 살면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되어서 흘리는 눈물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외모를 취하시는 분이 아니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형통하고 좋은 길만 주시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박수와 갈채만을 받으면서 살도록 우리를 내버려두시지 않아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당신을 전심으로 의지하며 사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이에요.
오늘 새벽에 4시가 조금 넘어서 깼습니다. 뒤척뒤척 하다가 기도나 해야겠다고 하고, 5시가 조금 안 되서 나갔는데 어쩜 날이 그렇게 포근한지 모르겠습니다. 마당을 한동안 어슬렁 거리다가 교회에 왔습니다. ‘그렇게 무섭게 춥더니 결국은 겨울이 가는구나. 그리고 오늘 이 계절의 변화를 매서운 추위가 꺾지 못하는구나.’ 기분 좋은 새벽공기가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우리의 인생도 그렇겠구나. 지금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이 너무나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지만, 지금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이 너무나 괴로워서 가슴 아파 하지만, 결국은 좋은 것이 힘든 것을 꺾고 영광스러운 것이 이 부끄러운 것들을 이기며, 영원이 있는 것들이 잠시 지날 것들을 이길 것이다.’라고 말이죠. 그러면서 우리의 인생이 언제 끝나든지 우리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 속에서 전심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그리고 하나님 앞에 깊이 매달리면서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거에요. 그게 신앙이에요. 그래서 매순간 주님을 의지하고, 그러니까 시인이 고백하잖아요?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평소에 눈물 흘리며 살았으면 좋았을 뻔 했죠. 그렇게 못 깨닫는 인간이기 때문에 죄에 빠지고 시련을 만나고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을 맞기도 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깨달음으로 인도하시고 그래서 당신을 의지하며 살게 하시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