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시는 하나님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 40:1).
여기서는 39편에 나오는 내용과 유사한 상황인데 이 40편에서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는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마 1절과 2절 그리고 3절, 4절로 이어지는 전반부는 먼저 자기를 돌아보아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감사와 감격이 나오고 그리고는 다시 그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서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날들을 회상하면서 그렇게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무슨 이유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의 침체와 그리고 어려움이 상당히 오래도록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렇게 오래된 가운데서 극복하고자 몸부림친 그 시간들이 꽤 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어려움 속에서 그가 인내하고 또 인내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끊임없이 당신에게로 돌이키고 그리고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살기를 원하시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속히 이 일을 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한 신자가 하나님 은혜 안에 있다가 그 은혜로부터 멀어졌을 때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이런 것으로부터 멀어져서 멀리 떠났을 때, 그 때에는 한 순간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거든요.
영혼의 질병이라는 것과 육체의 질병이 유사합니다. 우리들이 어떤 질병에 걸려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되면 그것은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그 병적인 증상들이 쌓여서 그렇게 된 것이 틀림이 없죠. 우리들이 길을 가다가 부딪쳐서 피부의 껍질이 까져서 피가 난다던지 이런 것은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는 몸속에서 서서히 시작된 질병은 아니죠. 하나의 외상이죠. 그렇죠? 그것도 아픈 것이지만, 저는 질병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거죠. 질병이 걸린 것은 오랜 세월을 두고 서서히 몸에서 쌓인 것이거든요. 그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났을 때, 우리의 몸이 정상적인 사람과 그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틀린 상태로 전이된 것이거든요. 그러면 우리의 건강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우리의 몸에 질병이 있을 때 증상들이 나타나잖아요. 예를 들자면, 위의 염증이 심하고 식도에 염증이 있고 그래서 소화가 안 되고 그 다음에 신물이 넘어오고 그런다고 칩시다. 예를 들자면, 그러면 그 신물이 넘어오지 않게 그렇게 약을 먹고, 진통제를 먹고 소화제를 먹는 거, 그것은 완전한 치료라고 말할 수 없잖아요. 그 근본적인 치료는 밖으로 드러나는 증상을 없애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몸속에서부터 고쳐서 그 병의 뿌리를 걷어 내야지만 그게 진짜 건강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우리가 알레르기 체질이 있어서 아토피나 혹은 조금만 공기가 안 좋은 데 가면 온 몸에 두드러기 같은 것이 돋는다고 칩시다. 연고를 사다가 피부에 돋아난 두드러기를 가라앉히는 것도 처방일 수 있지만 그러나 가장 좋은 처방은 그 사람 몸 안에 이렇게 살아가는 환경에 대해서 예민하게 하는 그런 체질 자체가 건강한 것이 아니니까 그것을 체질 자체를 완전하게 바꾸어서 다른 사람이 되게끔 만들 때에 그것이 근원적인 치료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똑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지고 우리가 많이 미끄러지게 되면 거기에는 증상이 나타나요. 불안, 초조, 평안을 잃어버리는 것, 염려, 근심, 마음의 기쁨이 사라지는 것 등등의 많은 현상이 나타나요. 육체의 현상보다도 훨씬 더 많은 현상들이 나타나요. 왜냐하면 모든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영혼과 정신의 작용이기 때문에 모든 방면에서 그것들이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그렇게 드러난 것들을 응급처방 한다고 할 거 같으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아마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오락을 해야 될 것이고 미래에 대한 염려, 초조 이런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쾌락에 빠져야 할 것이고, 이렇게 간단하게 이 정신 속에서 나오는 안 좋은 증상들을 치료하기 위한 많은 것들이 그렇게 추천할 만한 것들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런 것들이 다시 우리의 영혼을 어지럽히고 혹은 더럽히고 해서 이런 것들이 순환이 되는 거죠. 그래서 보면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영혼의 침체에 빠지게 되면 우리의 정신과 마음이 아주 산란하게 분산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살아가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고 허둥지둥한단 말이죠. 그리고 살아가는 보람도 별로 없고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문제가 하나님과의 평화를 잃어버리는 데 있다 깨닫고 거기로 돌아가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구조 자체를 서서히 바꾸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시간이 걸리죠.
그래서 저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죄에 빠지고 했을 때 어느 한순간에 가슴이 저미도록 울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도 그 한 번의 기도로 응답이 되어서 자신의 영혼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막혀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리는 그런 일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거죠. 그때 인제 죄인들은 낙심하게 되죠. "내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애처롭게 부르짖는데 어떻게 그 순간만 그렇게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시는 것 같고,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주시지 않는 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낙심하게 되거든요. 근데 이제 그렇지가 않아요. 그래서 오늘 여기에 보니까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그래서 자기가 하나님을 떠난 날들은, 그렇게 먼 날을 하나님을 떠나고 마음에서 주님을 버렸으면서 그런 시간들이 너무 고통스럽고 괴롭다는 마음 때문에 한순간에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주님 자신을 즉시 건져주셔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근데 하나님 자신은 그렇지 않아요. 서서히 하나님께서 고쳐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 자신을, 마음의 틀, 생각의 구조, 이런 것들을 바꾸시는 거죠.
(예화) 우리 어렸을 때는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아서 한 방적산업이 외화를 벌어들이는 중요한 수단 중에 하나였습니다. 거의 사람 손으로 하는 것이고 그때는 남는 게 노동력이었습니다. 누에고치를 놔두면 20몇 일만에 완전히 고치가 되는데 더 놔두면 거기서 나방이 되어서 나옵니다. 나방이 나오면 사람과 똑같이 머리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꼬리가 뒤에 고치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면 날아가고 싶어서 몸부림을 칩니다. 꽁무니를 고치를 매달고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나오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불쌍하다고 고치에서 나방을 빼주면 나방이 못 날고 결국 죽습니다. 꽁무니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다가 결국 쓰러져버립니다. 내버려 둬야합니다. 내버려두면 날개짓을 하다가 몸부림을 치면서 하체가 강해집니다. 하나씩 하나씩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에 나오는 것입니다. 막 날개짓을 하는데 하체가 고치에 매달려서 못나옵니다. 못나오는 가운데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날개에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오려고 몸부림치면서 아랫도리가 성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공중에 확 날아갈 수 있는 나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도 보면 여기서 보는 것처럼 한 동안 죄 가운데 있었던 것이 고치의 상태라면 거기에서 인제 그 고통이 심해서 벗어나려고 막 몸부림치는 것에요. 그래서 나와서 이제 하나님이 한 번 머리만 내밀면 확 건져주시면 좋겠는데, 그런데 날을 수가 없어요. 오랫동안 죄의 악습에 젖어 있는데, 한 순간 눈물을 쏟고 회개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확 잡아당기시면 훨훨 날라서 세상으로 날 수 있을 거 같아요? 아니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기다리십니다. 이 때 자신이 하나님의 더 많은 은혜를 기다리는 거죠.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매달리고 은혜를 구하고 그러면 하나님이 극복할 힘을 주시고, 더 은혜를 구하고 하는 가운데 이전에 악습들을 버리게 되고 마음에 있는 이 죄를 향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있는 경향 자체에 서서히 변화가 오게 되는 거죠.
물론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서 벗어나게 되는 거죠. 그렇게 될 때에 정말 오랫동안 젖었던 악습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에요. 이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영혼의 침체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의 지혜란 말이죠. 그 신실하심을 믿으며 하나님 앞에 매순간 나아가는 것, 이것이 침체에 빠진 사람들의 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