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져주시는 하나님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시 40:2).
이때 사람들은 짐승을 잡고 그러기 위해서 웅덩이를 팠다고 합니다. 웅덩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일단 발을 헛디뎌서 빠지면 나오지 못하는 그런 곳이 바로 웅덩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아무리 훌륭한 재능과 재주, 이런 걸 가지고 있어도 일단 웅덩이에 갇히게 되면 방법이 없는 거죠. 지금 우리들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흉기같은게 없다고 하더라도... 두 길 정도되는 커다란 웅덩이에 빠졌다 칩시다. 그리고 똑바로 서서 한 키를 더 올라가야지 지면에 닿을 수 있다고 치고, 웅덩이의 넓이가 꽤 넓어서 이쪽 벽과 이쪽 벽이 안 닿는다고 칩시다. 자기의 힘으로는 올라올 수 없죠. 절대 올라올 수 없죠. 결국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기가 막힐 웅덩이’라고 하는 것은 이 시인이 어떤 이유로든지 하여튼 들어가게 된 영혼과 환경의 깊은 침체를 얘기하는 거죠.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하고 나올 수 없는 그런 영혼의 깊은 침체, 그런 것을 뜻하는 것이죠. 그런 영혼의 깊은 침체,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헤어나올 수 없는 환경의 깊음, 이 속에서 고립 무언의 상태가 된 지경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시인은 수렁에서 자신의 기도를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들으신 것을 수렁에서 자기를 끌어올려 주신 것으로 그렇게 고백을 합니다. 그러니까 수렁에서 자기를 끌어올려 주신 것으로 고백을 하는데, 이 수렁이라고 하는 것은 부드러운 흙 같은 것들로 되어서 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무게에 의해서 빨려 들어가는 곳이 수렁 아닙니까? 다윗은 전쟁터를 많이 누비고 또 목동도 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이런 지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 수렁을 참 많이 경험했을 거란 말이죠. 이런 수렁에 빠져갈 때 결국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용맹이나 지혜, 이런 것에 의해서 해결이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바깥에서 밧줄을 던져주어야지만 붙들고 나올 수 있는 상황 아닙니까? 결국 이 깊은 웅덩이, 수렁 이 모든 것들은 뭘 보여 주냐면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환경과 영혼의 깊음을 보여주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는 오직 하나님 밖에는 도울 분이 없었기 때문에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다고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사 자기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죠.
시인은 다른 곳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들으심으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 도다.’ 라고 말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큰 사랑, 주님의 놀라운 은혜는 기도 응답의 경험 속에서 아주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만져지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이시지만 자신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경험을 통해서 우리 모든 사람들은 그 분이 인격적인 분이시며 그리고 자기와 같이 하찮은 인간을 긍휼이 여기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신앙 생활에서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느끼며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는 가장 중요한 은혜의 수단이 되게 하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준다면, 기도는 그런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행하시고 나를 위해서 인격적으로 나를 대해주시는가 하는 것을 자신의 내면의 세계 속에서 경험하게 만드는 실제적인 은혜의 수단이죠. 시인이 이런 깊은 웅덩이와 수렁과 같은 상황에 빠지게 된 것, 그것이 지금 무엇 때문인지는 본문에서 명백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죄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혹은 왕이 되도록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사울에 의해 추격을 당하면서 이리저리 떠돌며 방황을 하던 때와 같이 자기의 죄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큰 계획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게 되는 그런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지간에 이 사람은 지금 깊은 웅덩이와 수렁과 같은 상황에 있게 되었고, 거기에서 헤어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자기를 끌어 올려주셨다.’ 라고 말합니다. ‘끌어 올려주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언제 그를 끌어 올려 주셨습니까?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그러니까 상당히 긴 시간 동안을 이 깊음 속에 지내며 하나님의 구원을 앙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앙망하면서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장시간 부르짖으며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쇄신되고 그리고 더 많이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망을 갖게 되었더니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큰 은혜를 내려주셔서 그 깊음 속에서 건져주셨다 하는 것이죠.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영혼에 침체든지 환경의 어려움에 빠졌을 때 속히 거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우리 관심의 초점이지만 하나님은 그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고쳐 새 마음을 만드시고 환경의 어려움 속에서 고통받는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반성하게 만드시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가장 아프고 괴로운 때에 가장 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가장 시련이 많고 고통이 가득할 때에 거기서 오히려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자신과 같은 인간을 돌아보시는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과 자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곧 신앙이예요. 그래서 시인은 말하기를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밟으면 끊임없이 빠져 들어가는 수렁과 같은 곳이 아니라, 아무리 튼튼한 발이 있어도 벗어나올 수 없는 웅덩이가 아니라 반석에 두고 그리고 자신의 걸음을 견고케 하여서 어디든지 자신이 원하는 데로 갈 수 있게 하시는 그런 하나님을 경험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영혼의 깊은 침체에 빠지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거기에서는 방향도 잡을 수 없고 우리의 인생의 진척도 없는 것 같은 그런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는 거예요. 그러나 오늘 이 시인의 경험을 보면 하나님이 그 속에서 기다리게 하시고 부르짖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비해서 사실은 하나님이 가장 소중한 분이시며 우리가 귀중하게 생각한 것 중에서 하나님이 가장 귀중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만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 앞에 나아오도록 만드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어디에 있든지, 우리가 범죄했을 때든지 혹은 까닭모를 고난을 만날 때든지, 혹은 아무 것도 없는데 우리의 마음을 가눌 수가 없어서 깊은 영혼의 침체 속에 빠져들 때든지... 어느 때에 든지 간에 우리의 인생의 참된 구원자는 하나님 뿐이시고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고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 뿐이시라는 생각을 해야하는 것이예요. 그러면서 주님을 깊이 의지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일어난 가장 나쁘게 보이는 그 상황, 가장 고통스럽게 보이는 그 일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은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이시고 우리를 가까이 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시는 것이죠. 이게 바로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가 시련과 고난을 만날 때 경험하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주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그리고 성실한 마음으로 주께 부르짖으며 주님의 은총을 구하는 것이 이게 신자의 삶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