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넘어질 때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락하시리이다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저희가 내게 대하여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망자존대할까 하였나이다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시 38:15-17).
앞부분에서는 시인이 그렇게 원수들로 인해 고통을 받고, 친구들이 자신을 떠나고 하는 큰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 앞에 귀머거리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였습니다. 지난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해 인생에 이런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든지, 혹은 자신에게 죄는 없지만, 하나님의 각별하신 계획이 있어서 이런 깊은 시련 속으로 들어갔던지 간에, 그 이유와는 상관이 없이 거기에서 무엇인가를 많이 말하고 듣고, 그래서 사람들의 비난에 일일이 대꾸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추한 것입니다.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끌어내려서 잘못이 있음을 증명하고,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의 판단에 귀를 기울이면서 흔들리는 것은 매우 불행한 것입니다. 이 시인은 비록 친구들은 배신하고 친척들은 자기를 멀리 두고, 원수들은 부당한 방법으로 자기 앞에 올무를 놓고 자신을 해치고 있지만, 그것만 보면 마음이 상하고 괴롭고 분노가 치솟을 수 있으나 더 넓은 우주적인 견지에서 보면,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눈에 보이는 것들 이외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그분의 견지에서 자신의 인생의 문제를 해석하고,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늘 변하고 오늘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내일 배신하고 오늘 내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언젠가는 내가 싫어서 떠납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 자신도 언제가는 누구가에게 활짝 피는 꽃이기도 했고 지는 꽃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불완전성입니다. 만약 세상이 완전하다면,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만이 참 소망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은 지나가고 흘러갑니다. 사라지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태어나고 흘러가는 것들이 있기에 때문에 소멸이 되고, 또 죽는 것들이 있기에 또다시 생겨납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고통이요 괴로움일 수도 있겠지만, 이 우주 전체를 놓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것이 아름다워서 이 세상을 붙들고 계십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비결은 이 세상에 보이는 물질들이나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고 보면, 이런 신앙의 이치를 터득하고 보면, 우리가 쓰는 말 중에서 “실망했다”는 말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에게 실망했다는 말을 많이 씁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말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많은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에 실망합니다. 그렇게 변하는 사물, 꽃처럼 피었다가 지고, 졌다가는 다시 피는 그 사람의 사랑에 울고 웃고 살아가는 그런 삶은 불안하기 짝이 없고, 슬픈 삶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비결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많은 사람, 그리고 눈앞에 일어나는 고난과 역경, 그리고 기쁨과 순적한 순교 이 모든 것들을 만나면서 항상 그것과 일대일로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 아니라, 역경을 주신 하나님, 또 고난을 맞이하게 하시는 하나님,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순경을 주시는 하나님, 그 모든 사물과 환경 너머에서 그렇게 주님을 만나고 붙들게 될 때, 그때에 그 안에 있는 평안을 통해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 계셔서 이 모든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움직이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기쁨이고 행복이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인도 역시 이런 모든 인생의 이치를 완전히 깨달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남의 이야기라면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자신이 깊은 시련과 배반, 그리고 고난과 역경에 속에 들어갈 때에는 자신이 그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기 쉽습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이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근심이 많습니다. 저 원수들이 나를 이렇게 쓰러트리고 아주 교만해져서 나를 멸시한다면 어떻게 할까? 근심이 마음 안에 가득하고 앞으로 향하여 가려고해도 걱정거리가 가득합니다. 아직 자신을 정리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불안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에게서 칭찬할 만한 것은 결국 그 모든 믿음의 연약함, 눈에 보이는 환경을 뛰어넘지 못하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주를 바란다는 점입니다.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 하시리로다. 즉 주를 온전히 바라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한결 같다고 생각한다면, 교만입니다. 사람을 향한 사랑도 활짝 피었다 시들듯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활짝 필 때가 있으면 시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항상 하나님 앞에 활짝 피었던 처음 사랑일수도 있고, 처음 사랑이 아니면 은혜의 때의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항상 그런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치 않습니다. 어제는 참 아름다웠어도 오늘은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을 사랑할 때는 꽃처럼 피어있어도 지금은 시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분은 날마다 자신이 하나님의 끝임없는 은혜의 도움과 매순간 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향하여 항상 자신의 사랑이 꽃처럼 피어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하나님을 위해 이런 일을 하고, 이렇게 사랑하고 이렇게 헌신하고 했던 것들을 의지하지않고, 다만 자기가 세상에서 방황할 때, 어떻게 십자가의 사랑으로 인도해 주셨는지를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삶. 매일매일 그것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새롭게 살아가야합니다. 꽃은 죽지 아니하면, 올 여름에 진 꽃이 내년 봄에 다시 피지만, 신앙은 계절에 따라서 그렇게 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은 때에 따라 물을 주시고 햇빛도 주십니다. 그래서 이세상의 꽃은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여름에 시들어서 가을에 씨를 맺고 겨울 지나고 봄이 되면 꽃이 핍니다. 1년 기다리면 됩니다. 우리 신앙도 그렇게 때가 되면 다시 피어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을 사경회 때 열매를 맺고, 신년사경회때 물주면 다시 활짝 피어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에 너무 소망을 많이 두기 때문입니다. 염려하지 않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 것이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깊이 의지하면서 정신없이 변화하는 이세상의 물결에 대해서 적당히 눈을 감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보다는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