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도우소서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무리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무수하오며 또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시 38:19-32).
이 시의 결론 부분에 해당 되는데, 여전히 시인은 원수가 강하고 그리고 원수로부터 자신의 고난을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제 시편 20절에서 시인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걸 보면 시인이 지금 받게 된 이 고난이 자신의 죄와 악함 때문에 받게 된 고난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징계로 말미암는 고난의 길을 걸어오면서 하나님을 향한 이 사람의 태도가 많이 쇄신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시를 시작할 때에는 자기가 죄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그리고 영혼은 물론이고 육체 까지도 이 고통가운데 있는 것을 호소를 했습니다만, 오늘 이 시가 끝날 때 와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선을 주는 사람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자신 안에 있는 많은 죄, 그리고 그 많은 고통들은 이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느끼는 임재의식, 거기서 오는 자기발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지 않을 때는 자기가 악하고 죄가 많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잘 몰라도 자기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나면 그랬지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자신의 불결과 악함을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그런 것 아니겠어요? 여기서도 시인이 하나님 앞에 그런 것을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악인의 특성을 이야기 하는데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그랬거든요. 이거는 잘못하는 거죠. 그렇죠? "선은 선한 것으로 갚아야 하는데 악으로 선을 갚는다." 이런 말이에요. 그런 말이 있죠.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 "인간이 자기가 누군가에게 은혜와 은덕을 입은 것은 아주 쉽게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손해 때문에 그에게 원한이 생기는 것은 잊혀 질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새겨진다." 그런 뜻이죠. 물에 새기는 거야 흘러가버리면 없어지지만 돌에 새기면 장구한 세월이 흘러도 돌에 그냥 남아 있기 마련 아니에요? 그런 것입니다. 그게 인간의 마음이거든요. 왜 그러냐 하면은 다른 사람에게 입은 은혜를 기억한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보다 우월하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을 더 나아가서 그런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할 의무를 기억나게 만들잖아요. 그걸 인간이 싫어하는 거죠. 또 하나는 뭐냐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엇인가 손해되는 일을 겪었을 때에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고 그게 가슴에 남게 되거든요. 왜 그러냐 하면 달리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당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을 빼앗기거나 혹은 누리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을 가리키거든요. 그래서 자기의 질서를 해친 그것은 커다란 고통으로 남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 것은 전혀 기억이 안 나고, 자신이 고통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깊게 있는 거죠. 이런 것들은 결국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악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죠.
이 사람들이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아마도 지금 이 시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즉, "친구도 멀리 떠나고 친척들도 멀리 서 있나이다." 그랬으니까, 아마도 이 시인에게 지금 그렇게 고통과 괴로움을 주고 있는 이 사람들이 한 때는 이 시인의 덕을 많이 입었던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덕을 많이 입었던 사람들인 것 같은데,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많이 배풀었던 이 다윗이 그 사람들이 오히려 덕을 악으로 갚는 것을 보면서 깊은 고통을 받는 거죠. 그러면서 고백하기를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 이게 진정한 고난이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려고 했더니 그것 때문에 나를 대적한 그 무리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승리하지만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그 모든 자신의 선한 행실의 상복을 이 세상에서 모두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우리가 선을 좇아서 살아가는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도 사람들이 빛이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싫어하는 장면이 나오죠. 왜? 자신들이 어둠속에 있기 때문에 빛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싫어했던 것이죠. 그러면서 마지막 의지할 데는 하나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하나님께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육체는 물론이고 우리의 영혼을 특히 잘 알고 계셔요. 그래서 우리에게 한없이 많은 복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셔요. 그리고 우리에게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실지라도 그것 때문에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셔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선함을 보이시기 위해서는 고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단 말이죠.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질서가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실지라도 이 세상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고 우리들을 도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세상이라고 하는 본질을 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때로는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악이 잠시 승리하는 것 같은 그 때를 하나님은 아주 훌륭하게 사용하셔서 그래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케 하시고 의지해야할 분이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생각나게 만들어 주시는 거죠. 만약에 우리의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고 부족함이 없다면 우리 자신이 속히 부패해버릴 것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쓰라린 고난, 어려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배신, 이런 모든 것들을 허락하셔서 그래서 형통할 때에도 주님을 의지하며 살게끔 만들어 주시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