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이신 하나님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도다.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 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 하리도다”(시 42:9-11).
여기에서 시인이 다시 한 번 후렴구처럼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 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이 후렴구를 다신한번 마지막 절에서 반복합니다. 그 의미는 우리가 이미 며칠 전에 같은 시편에서 보았고 그 앞부분에서 시인이 하나님 앞에 그런 기도를 드립니다. 내 뼈를 찌르는 것같이 대적들이 말하기를 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비방하면서 묻습니다. 의 고백을 합니다. 그러니까 아마 이것은 남의 나라 땅에 와서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 시인의 일행에게 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라고 물었던 그것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 자신의 원수들 나라를 빼앗고 왕위를 찬탈한 그런 사람들이 묻는 것 같이 모두 포함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했다 면은 그렇게 다윗 왕을 쫓아내고 나라를 찬탈하는 그런 일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왕위는 다윗을 통해 하나님이 세우실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고 또 다윗을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셨기 때문에 기름 부은 자를 대적하며 싸우는 그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니 그들에게 너무 분명했기 때문에 사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 면은 할 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꺼이 그런 일을 감행했고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였어요 조롱하면서 묻기를 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말할 때 그 말은 이 시인의 뼈를 찌르는 칼같이 다가왔던 것입니다. 전쟁을 많이 경험했던 시인 이였기 때문에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이 한 평번한 이야기와는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즉 전쟁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로서 사람을 깊이 찔러 그 찌르는 칼끝이 뼈에까지 닿아서 그래서 그 뼈를 찌르게 되는 그러한 상태를 가리키는 거죠 그래서 이것은 상상만 해도 형언하기 어려운 그러한 고통이죠 그런 걸 가리키는 거죠 그래서 군대에서도 보면 백병전에 나갈 때 칼로 사람을 찌를 때 단순히 찌르는 게 아니라 깊이 칼을 집어넣고 그래서 그 칼을 회전시켜서 그래서 찌른 그 부위의 상처를 극대화 하고 그럴 때에 찌른 그 칼이 뼈에 까지 닿는단 말이죠 그런 것들을 훈련시켜요 그러니 그것은 이 시인이 이런 비난을 받을 때 경험했던 견디기 힘든 내면의 고통을 반영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깊은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던 거죠 이러한 고통이 역시 절망의 고통이라고 말할 수 있죠 이제는 하나님의 도움이 모두 끊어진 것 같고 모든 상황은 이제 내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고 외치는 것 같았죠 그렇기 때문에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습니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닙니까? 이렇게 하나님 앞에 외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었던 것이죠
하나님에게는 기억한바 된다는 그 말 자체가 사실은 하나님의 큰 사랑과 무한한 보호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의 표현이에요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능력 때문에 기억을 해도 그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신다면 그러면 그 기억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이렇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시편이나 혹은 다른 성경에 보면 경건한 백성들이 하나님이 자기를 잊지 않으셨다. 라고 하는 것을 아주 깊은 감격 속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목으로 드리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바로 그러한 것을 가지고 시인이 오늘 하나님 앞에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잊지 않으심은 더 크게는 이스라엘 하나님이 선택하신 언약공동체를 잊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의 각별하신 사랑과 은혜 거기에서 부터 출발하는 거죠
그래서 어제도 보니까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한다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공동체적 구원 그것이 찬송의 제목이 되어서 그 공동체가 그런 사랑을 받는 하나님 앞에서 언약의 백성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그 안에 속해있는 하나하나의 나 또한 그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 안 있을 것이라는 그런 신앙을 보여 주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 이었어요 그러니까 자신이 조금 우리 각자를 하나님이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것이 있지만은 그것을 기초로 하나님의 신실함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제일 먼저 언약백성들과 약속을 맺으신 그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 그리고 그들이 허물이 있을지라도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면서 그들을 변함없이 이끌어 오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의 빛 그 아래서 자신의 개인의 구원과 그리고 자신 개인이 하나님 앞에 버림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확신을 갖게 되는 거죠 오늘 우리들이 잃어버린 신앙이 바로 이런 신앙이에요 그런 거를 우리들이 잃어버린 거죠 그러니까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을 만난 은혜의 체험 이런 것들이 사실은 공동체를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언약의 충실하심 이런 맥락 안에서 우리들에게 받아들여질 때 구원의 의미가 아주 찬연하게 다가오게 되는 거죠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가지고 있는 많은 허물들을 공동체적으로 용서해주시고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사람에게 베푸신 크고 놀라운 사랑과 은혜의 구원도 사실은 공동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거죠
그러면서 이 시인이 네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원수들이 자기를 향하여 퍼붓는 비난과 모욕 그리고 압제 이 모든 것들은 강해 보이고 영원한 것처럼 보이지만은 그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그것에 비하면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건데 슬프게 내가 다니는 이유가 결국은 나의 믿음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성경에 보면 반석이신 하나님 이라는 이 표현이 아주 여러 번 등장해요 그런데 이 표현이 처음부터 등장한 것은 아니에요 반석이신 하나님께 라는 표현이 본격적으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때가 언제냐 하면 출애굽에서 반석에서 물을 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게 된 그 사건 이후에 이 표현이 많이 등장하게 되요 히브리말로 출어라는 말은 반석 혹은 바위인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구원인데 의미가 여러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분명해요 하나에요 반석이신 하나님 그러면 그것은 구원을 의미하는 거예요 또 나의 발을 반석위에 세우시고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 그 위에 자신을 두신다. 라고 하는 의미에요 그러니까 이것 역시 공동체적 고백이거든요 도저히 물이 없어서 더 이상은 행굼질을 할 수도 없고 살수도 없는 그때에 하나님이 명령을 내리셔서 모세에게 반석을 명하여 물이 나오게 하라 그 반석을 모세가 치죠 나중에 문제가 되지만 그렇게 하죠 거기에서 물이 확 쏟아지면서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고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죠 그러면서 이 반석이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자신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그런 고통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으로 건져주시는 중요한 구원사건의 하나로 기억이 되는 거예요 이것을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모든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받게 될 구원 특별히 그것을 세례와 관련시켜서 해석 하였던 것이에요 그래서 반석이신 하나님의 구원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현되는 그런 구속사적인 연결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여기에서 시인이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 나를 건져주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을 그 반석이신 하나님이 건져내신 것처럼 또한 나를 건져내실 것입니다. 라고 하는 그 믿음을 가지고 반석이신 하나님을 부른 거죠 그러면서 나를 잊으셨습니까? 내가 어찌하여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닙니까? 한편으로는 잠잠하신 것 같은 하나님께 소리치고 한편으로는 현실로 인하여 낙망한 자기 자신을 스스로에게 일깨우는 기법으로 소망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자신에게 촉구하는 것입니다. 어제 말씀한바와 같이 우리의 인생을 사는데 있어 가장 위험한 것은 절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절망에 빠질 때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 절망의 마지막은 욥기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러한 절망이 우리를 데려가려고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아무것도 없고 그런 철저한 절망 속에서 우리를 죽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낙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며 의자하며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죠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하신 저희들은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진실하신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도 저희와 함께 해 주시고 은혜를 내려주십시오 하나님 말씀으로 굳게 붙들려 주님 중심으로 살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도와주시고 은혜를 내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