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며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 46:4-5).
‘시내가 있어서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그랬습니다. 그건 하나님의 은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물이 없이는 도시가 존재할수 없죠. 그래서 옛날에 문명의 발상을 보면 항상 도시는 강을 끼고 발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많은 문명들이 꽃피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서도 시내가 있는데 그 시내가 나뉘어 흘러서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이러한 어떠한 물, 물들이 성을 향하여 흐르고 그리고 그 성에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인 성소를 기쁘게 한다는 그것은 마치 한 도시에 물질의 문명이 강을 타고 발달을 하는 것처럼 또한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이 모여사는 그 도성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은총이 흐름으로써 그럼으로써 그 육신이 사는 것처럼 또한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이 한 교회가 누릴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것이예요. 그 은혜의 물이 교회에 잇대어 흐를때 그때 거기에서 많은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먹고 그리고 변화되고 은혜를 받고 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수 있는 힘, 능력 이런것들을 받게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에는 하나님의 은헤 이외에는 어떤 것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쁘시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을수 없어요. 무슨 뜻이냐고 하면 이 세상에는 있는 많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기뻐하고 또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게 되면 그 은혜를 받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되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시는 모든 계명들이 번잡하고 고통스럽지가 않고 오히려 기쁘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갈수 있는 그 모든 삶에 있어서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고 기뻐하시는 그런 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 자신들에게 즐거움이 된다는 것이죠. 억지로 의무에 매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그 의무를 즐거워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그런 생활인 것이예요. 그런데 오늘 성경은 그런 은총이 흐르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이 그 성중에 계시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그 언약 백성들이 있는 그 성중에 함께 계실때 그 성은 요동치 아니할 것이다. 어제 보니까 그 바로 앞에 고백한 내용. 즉 하나님은 환난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며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리든지 혹은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거를 실제적인 증거를 이제 4절서부터 쭉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 성중에 계시기 때문에 성이 어떠한 고통을 당하고 또 산을 움직일만하고 바다의 물결이 넘실거릴듯한 그런 국가적인 큰 재난과 어려움을 만나도 그런 어려움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시인의 신앙의 고백이예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종류의 환난과 시련을 만나도 잠시 흔들릴지라도 잠시 고통을 받을지라도 결코 성을 요동치게 할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크신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가 닥치는 모든 문제가 우리가 아는 상식과 방법대로 해결되기를 원하시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의 지혜를 초월하고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더 큰 능력과 권능으로 우리들이 상상할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또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리들을 지켜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그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의 지혜와 큰 능력에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면서 사는 본분을 다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신다 그것입니다. 능력이 모자란다거나 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당신의 언약의 백성들을 붙들고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기 때문에 그 성이 요동하지 않을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새벽에만 하나님의 백성을 도우시겠어요? 늘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언제든지 자기의 백성을 지키시겠죠. 그런데 이 시인이 굳이 이 이야기를 덧붙이죠. 그것은 뭐냐하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새벽에 일어난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기 때문이예요. 새벽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보게되는 것도 새벽에 일어난 일이었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도 새벽에 일어난 일이었죠. 산해릅에 군대 18만 여명이 와서 졸지에 시체로 변하게 된 것도 새벽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등등 이 새벽에 하나님이 큰 능력을 행하시는 장면이 많이 나타납니다. 밤에는 불안과 공포속에서 떨고 두려움 속에서 염려하여도 새벽이 되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그 위대한 일들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보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죠. 만나도 그래서 새벽의 시간에 일어나죠. 저녁 내내 내일은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벽에 일어나서 온 지면에 가득히 내린 그 만나를 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는 졸고 자도 우리를 위해 쉼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는 것지요.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생활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우며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살아가는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본분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백성의 안전과 행복이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