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에 지존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열방을 치리하시며 하나님이 그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열방의 방백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여호와의 것임이여 저는 지존하시도다"(시 46:8-9).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기에는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작은 나라에 집중하는 것 같다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구요. 이미 벌써 구약 안에서 신약 시대에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교회의 확장의 전망들이 보입니다. 다만 구약안에서는 그러한 신약의 선교를 통해서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교회의 영적 전망이 지상의 나라라고 하는 하나의 껍질을 통해서 보인 것이죠.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임금을 삼으셔서 그래서 그 나라의 태평을 이루게 하시죠. 그리고 주변에 많은 나라들을 굴복시켜서 그래서 조공을 드리게 하고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가 그렇게 많은 열방 가운데 존귀히 여김을 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그렇게 여러 나라에서 조공을 받았다 그러지만 그게 전체의 크기가 사실 손바닥 만한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주변에 있는 앗시리아 라든지 바빌론 이라든지 혹은 애굽 이라든지 그런 당대의 교통하는 권역 자체가 그 정도밖에 안되었으니까. 조금 더 확대해서 보면 거기에서 이제 바다 쪽으로 나아가서 저 아래에 있는 페니키아 라든지 아니면 그리스라든지 이러한 나라들로부터 그렇게 복속하고 그들에게 조공을 받았던 게 아니거든요. 기껏해야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으로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편에 좌우에 있었던 아주 작은 나라들, 우리로 말하자면 나라라고 할 수도 없는 작은 동네 같은 그런 거거든요. 그러니까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나라에 대해서 그렇게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다윗의 판도라고 그래봐야 사실 손바닥 만한 거거든요. 그런데도 그게 중요한 이유는 왕국의 크기나 땅 덩어리의 크기를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스라엘의 중요성은 역사적인 외적인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크기로 따지자면 중국이나 로마가 훨씬 큰 의미를 가지고 있고 고대로 돌아가자면 페르시아나 아니면 이집트나 바빌로니아나 이런 나라들이 훨씬 더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거죠.
오히려 이스라엘의 중요성은 그 크기가 아니라 그 의미예요. 즉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장엄한 당신의 구속의 계획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통해서 거기에 그것을 매개로 해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계시의 말씀들을 보내신 거죠. 거기에 의미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일반 역사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 작은 나라가 의미 있는 것은 하나님이 큰 나라가 아닌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나라의 역사를 사용하셔서 당신이 이 세상의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장중한 계획들을 펼치셨다는 것이에요.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제 이 시에서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열방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 사상이 있었던 거죠. 이것은 비정치적이기도 하고 정치적이기고 하죠. 그래서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은 지역신의 개념이에요. 그래서 신들의 세계가 자기의 관할지를 분할하고 있다 이렇게 믿었던 것이에요.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영역에서는 자신들의 신이 최고의 힘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는 그런 생각, 그래서 우리들이 싸울 때 신들도 싸우고 거기에서 신들의 우열이 가려진다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어저께도 잠깐 책을 보니까 중국에도 그런 사상이 아주 분명하게 있었더군요. 그래서 민족마다 지역마다 신들이 있어서 그래서 그 신들이 자기의 영토와 영역을 지켜준다고 굳게 믿었고 그래서 자신들이 다른 민족이 다스리는 땅에 들어갈 때는 아주 극도의 주의를 하는 거죠. 그리고 자기의 신의 힘을 상당히 신뢰하면서 그 신의 보호가 있어야지만 이민족과 더불어 싸워 이길 수도 있고 이민족에게 갈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거죠. 그러면서 ‘도’ 라는 글자, ‘길 도’자 있잖아요. 그거 말고 ‘이끌 도’ 자가 있어요. 그런 글자가 원래는 무당들이 사람의 머리를 들고 들어가는 형상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민족을 칠 때, 이민족의 땅에 들어갈 때, 그 때에 사람의 머리를 잘라서 그래서 신들에게 바치면서 그것을 가지고서 들어감으로서 자기의 신의 호의를 사고 저 신들 앞에서 이길 수 있다는 그런 사상인데 그 도는 ‘도덕’ 할 때 ‘도’ 는 나중에 생긴 거래요. 그래서 이끌 도자 가 먼저 나오는데 그게 말하자면 무당들이 머리를 들고 이방민족에게 들어가는 그림이라는 거에요.
그렇게 고대에는 자신의 신들이 전부 자기네 영역에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한 생각을 했던 사람이 선지자들 중에도 있었어요. 그 대표적인 사람이 요나 같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요나서에 보면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그러니까 자신이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탈출하면 하나님의 권한이 미치지 않을 거다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러나 모든 환난을 통해서 하늘과 땅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라고 하는 고백이 나오게 되는 거죠. 어쨌든 그런 지역신의 개념이 타파되는 그런 어떤 신관의 변화를 요나서가 보여 주는 것이죠. 그런 것들이 선교적인 전망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이스라엘 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되어서 이방의 나라를 정복하고 접수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거죠. 그래서 예를 들면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모압 족속 같은 경우에 이렇게 이스라엘이 굴복시켜서 그래서 북왕국 오므리 왕조 아래서 이렇게 말하자면 복속된 국가로서 식민지 처럼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런 것들을 가리키는 거죠. 그런 것들을 보면서 한껏 고무되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열방의 나라의 하나님이시다. 비정치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민족들과는 달리 하나님 자신이 하늘과 땅의 여호와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선인과 악인에게 비를 내리시고 이 모든 세계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아주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거에요. 그랬기 때문에 이제 여기에서 ‘하나님이 열방을 치리하시며 하나님이 그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라고 찬송을 하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열방의 방백들이 모이며’ 이 열방의 방백들의 모임이 뭐냐하면 나라가 이스라엘에 복속되어서 그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신도 섬기면서 마치 복속한 수많은 나라의 우두머리들이 이스라엘 왕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리면서 이제 그에게 국정을 지시받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는 거죠. 그렇게 되는 것처럼 이 땅에 있는 수많은 권세자들이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이 나라를 다스려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당신을 우리의 백성과 함께 섬겨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나님 앞에 하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에요.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땅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죠. 그래서 주님 앞에 깊이 깨뜨려지고 변화되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그분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그리고 그분 앞에 자신의 전 삶을 복속시키는 것이 그게 하나님 나라의 완성된 모습이에요. 그래서 자신은 없고 하나님의 뜻만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그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세상의 모든 방패는 여호와의 것임이여 저는 지존하시도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옛날에는 성루나 성벽에 방패를 걸어서, 그래서 그것으로서 군대의 수를 표시했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런 방패가 많이 걸려있으면 그러면 그 나라는 엄청난 군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군사력, 모든 군대가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군대가 되어야 한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이번에 그루지아하고 러시아하고 전쟁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야, 진짜 한 나라가 힘이 있어야 되겠구나’ 하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어요. 그루지아가 서방 세계하고 그렇게 친밀하게 지내고 나토에도 가입하려고 애쓰고 했을 때 러시아의 눈에 얼마나 눈의 가시겠어요? 그죠? 그렇게 하면서 자기가 전쟁을 일으키면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자신들을 지지해 줄 것이고 아마 군사적인 지원도 해줄것이다 대통령이 이렇게 판단을 했다 그래요. 그런데 막상 전쟁이 일어나고 나니까 지금 어느 세상인데 거기에 그렇게 쉽게 개입을 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하고 나니까 그냥 강력한 러시가 전투기, 탱크들이 떠가지고 다 박살내버리니까 한숨에 수도를 정복하고 전부 다 유린해 버렸쟎아요. 그러면서 섬짓하더라구요. 아, 이게 이런거구나. 어떻게 대통령이 올림픽에 와 있는 그 날 전쟁을 일으켜서.. 그게 아주 오랫동안 별러온 전쟁이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해서 군사력으로 밀어붙여버리는 것이죠. 우리도 아무도 의지할 수 없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누구를 의지하겠어요? 우리 자신이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한 나라의 힘이 군사력에 있다는 것은 너무 분명하쟎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군대가 하나님의 나라에 든든히 있어서 그래서 그 방패를 많이 걸고 그 나라에 헌신한다면 너무 훌륭한 거죠. 그래서 한 교회의 힘은 결코 외관적인 사이즈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사이즈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총도 못 쏴 본 애국심도 없고 총도 못 쏴 본 군인 천명과 고도의 특정 훈련을 받은 특공대들 몇 사람이 싸우면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 아들이 이번에 8월에 제대를 하는데 어느날 와서 그래요. “아버지” “왜?” 그러니까 만약에 전쟁이 나면 우리 특전사들이 비행기를 타고 북한에 투입이 된대. 그것도 인민군 군복을 입고 투입이 된대. 그럼 어떻게 돼냐니까. 걔네들도 우리나라 군복을 입고 투입이 된대. 수만명이 서로 개전하자마자. 막 혼란스런 상황이 되겠죠. 그런데 “우리 특전사 대원 한 명이 북에 떨어질 때 다 죽이고 싸우는 것 말고 몇 명이 군대를 혼란시킨다고 생각을 하세요” 그래. 나 그런 것 모른다 그러니까 “ 우리 특전사 한 명이 낙하산을 타고 떨어졌을 때 전쟁이 아니라 부대를 막 혼란하게 시킬 때 팔백 명의 군대를 혼란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훈련을 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가 막 신출귀몰해서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거에요. 그래서 한 팔백 명의 군대가 막 그 놈을 잡으려고 쫓아다니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거에요. 대대라고 하는 것이 원래 한 팔백 명 되는 것이 대대인데 그 특전사는 일 개 대대가 육십 명 밖에 안된대요. 그런거를 중령쯤 되는 사람이 지휘를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결국은 수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철저하게 훈련된 그러면서도 나라에 대한 절대적인 애국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냐 그게 문제죠. 마케도냐에서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군대하고 맛붙었을 때 놀라지 마십시오. 사만대 이십삼만이 벌판에서 격돌을 했어요. 그러데 이십삼만명이 사만한테 몰살을 한거에요. 몰살을 한거에요. 그게 전법이 나와요. 아직도 역사속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당해내지를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생각을 하면 이십삼만명인데 한 줄로 쭈욱 서서 그냥 밟고 지나가도 이길 수 있겠어요? 그 사만명이. 육분이 일 밖에 안되는데. 아무리 군대가 훌륭하지 않아 세상없다고 하더라도. 어나나라 군대는 뭐 종이입니까? 무기나 이런 것에 있어서도 절대 우세하죠. 이십삼만명대 사만명인데. 근데 그 벌판에서 이십삼만명이 사만명한테 완전히 초토화되는 거에요. 페르시아를 주저앉히는 거죠.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이에요. 그 때 전쟁을 지휘했던 사람이 알렉산더 대제, 자신이 직접 전쟁을 지휘하는거에요. 전투지에서. 페르시아가 아데나 지역까지 쳐들어가쟎아요. 그런데 결국 거기서도 지거든요. 그러니까 수로 이기지 못한 전쟁이 많아요. 많아요. 무지하게 많죠. 2차대전때도 히틀러가 러시아를 접수하려고 오백만명의 군대를 보내쟎아요. 그런데 마지막에 돌아올 때 수십만만 살아와요. 거기에서 전부다 죽어요. 군인들이. 그러니까 수로 이기지 못한 전쟁이 많아요.
그러면 이런 비전이 선교적으로 성취되기 위해서는 교회 사이즈가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철저히, 진짜 민방위대 같은 군인들말고, 민방위대가 군인도 아니지만. 그런거 말고. 진짜 철저하게 훈련된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된 그러한 전문적인 전투병력이 필요한거죠. 그래서 헌신되지 않는 일만명 보다는 자신의 생명과 마음과 온 뜻을 하나님 앞에 바친 한 사람이 역사에 미친 영향이 훨씬 큰거에요. 왜냐하면 그 사람은 소수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소수이기 때문에. 그래서 위대한 역사를 써가는 거죠.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러한 강함은 이 세상 나라에서는 잘 발달된 무기와 투철한 애국심과 체력 아니겠어요? 그런데 영적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잘 훈련된 말씀의 무기와 그 다음에 세상의 판도와 나라를 아는 시대를 읽는 지식과 그리고 경건의 강한 능력 비밀이신 그리스도에게서부터 받은 경건의 탁월한 능력과 힘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런것이 아우러져서 이 세상을 이기면서 나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을 위해서 교회는 해야되는 거죠. 그래서 처음에 군대의 문을 두드렸을 때에 전투 안하는 비전투 군인이나 아니면 슬슬 놀러다니는 옛날에 방위 같은 군인이나 아니면 특수전을 수행하는 군사들이나 들어갈 때는 체격조건이 좀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들어 갈 때는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들어가쟎아요. 물론 무술을 얼마나 하는지 키는 얼마나 하는지 보지만 그 차이가 뭐 얼마나 되겠어요? 그런데 막 한 일년 이년 정도 지옥을 넘나드는 훈련을 받고나면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거죠. 그렇게 태어나는 거죠. 그러니까 교회 와서 사람들이 자꾸 쉼을 얻는다고 하는데 그건 일면은 맞는 거지만 그렇게 쉬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위대한 전사들이 되어야 하는 거에요. 그런 전투적인 생애를 얼마나 훌륭하게 사느냐 믿음의 싸움 이 싸움 속에서 얼마나 영적인 싸움 속에서 얼마나 승리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이바지하느냐가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그거를 이 세상에서는 키나 신장이나 나이가 문제지만. 이 영적인 세계에서는 그런게 문제가 아니란 말이죠. 자신의 영혼이 문제예요. 영적으로 자기가 얼마나 살아있고 강한 힘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느냐 그게 문제쟎아요. 사람들이 그게 문제죠. 그러니까 교회는 그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하나니의 말씀을, 간단하쟎아요. 부지런히 전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 뒤집어놔서 그래서 수시로 “그렇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고 그리스도의 군사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으로 꽉 차도록 만들고 그러고는 진리의 말씀을 잘 가르쳐서 그냥 막대기나 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종류의 무기를 공급해주고 그렇게 그거를 가지고 싸우고 그러는 거쟎아요. 그러니까 나라는 다른 걸 다 못해도 두 가지는 해야되는거에요. 하나는 뭐냐하면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거. 또 하나는 뭐냐하면 어떠한 적의 위협으로부터도 자신의 나라를 지킬 힘, 스스로의 힘,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늘 그 나라는 자신감이 없고 비참한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거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끊임없이 산업을 돌려서 맨 앞자리에 가는 산업이 뭐에요? 군수산업이에요. 끊임없이 연구개발을 해서 최신의 무기를 만들어 내는 거에요. 그리고 최신의 무기를 만들어 내고 그리고 그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마음과 육체를 갖게 만들어 주는 거죠. 그럼으로써 강한 군대가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서 이겨 나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왜그런지 몰라도 그런 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이번에도 총을 만들었는데 벽 뒤에 숨은 적은 죽일 수가 없었쟎아요. 이스라엘에서 적을 쏘기 위해서 벽에서 이렇게 나와서 쏘다가 너무 많이 사람이 죽으니까
총에다가 LCD를 달았어요. 그래서 총만 이렇게 내보내면 여기에 이렇게 화면에 보이는 거죠. 그래서 드르륵 쐈거든요. 그래서 미국이 금방 보고 배꼈어요. 그런데 이번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안하고 물론 그것도 있지만 벽 뒤에 사람이 안보이면 거기다 대고 총을 딱 겨눠요. 두 가지 총알이 있는데, 새로나온 건데 그런데 레이저를 쏘면 레이저가 돌아와서 거리를 딱 계산을 해요. 그 거리를 총알에다가 입력을 해요. 쏘면은 저 벽에서 일 미터 쯤 겨냥하고 벽 옆을 쏘면 벽을 지나서 일 미터 쯤 지나서 터져요. 터지면서 거기서 수많은 작은 총알이 튀어나와. 그래서 거기 있는 사람이 너 댓 명이든 몇 명이든 다 죽여버리는거에요. 그런 발달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발달하지 않은 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싸우면 애국심하고 상관없이 어떻게 되겠어요? 엊그제도 한 번 자료를 보니까 미국에서 만든 전투군함들이 전부 다 사격을 위에 올라가지 않고, 요새 우리나라 나오는 군함도 그래요. 밑에서 사격하게 되어 있어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수많은 무기들이 달렸는데 밑에서 컴퓨터 게임하듯이 사격을 하는 거에요. 자동으로. 그런거 나오면 아무리 애국심이 충만한 사람이 나와도 배 위에 올라와서 옛날처럼 총을 겨누고 대포를 겨누고 쏜다 그럴때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서해교전에서 얻은 교훈이 그거쟎아요. 우리 한 명도 안 죽고 거기 팔십명이 죽었쟎아요. 그러니까 뭐냐하면 끊임없이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내야 되는 거에요.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있다 그거죠. 그것들을 끊임없이 길어내서 성도들의 손에 들려줘야 되는 거에요. 그거를 위해서 교회는 헌신을 해야되는 거에요. 모여서 맨날 먹고 마시고 놀고 그래서는 희망이 없어요. 보람있는 인생을 살 수 없는거죠. 오늘 이 시간에도 한 번 물어보쟈 이거죠. 나의 전투지는 어디인가. 난 어디서 싸우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진짜 전투하고 있는가 군인처럼 자기를 연마하고 자기를 절제하고 군사마다 자기의 일에 매이는 자가 없나니 그랬는데 나는 이 전투지에서 복무하는것이 나의 최고의 사명인가 이런것들이 아주 분명하게 살아있어야 되는 거죠. 매일 하나님 앞에 위로나 받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소비적인 신앙생활 가지고는 안된다는 거죠. 전투적이고 담대한 그러한 분명한 소속의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야 된다 그거죠. 그런것을 이미 이 구약에서 전망하고 있는 것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