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땅에 가득한 하나님의 위엄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시 50:1-3)
녹취자 : 이시내
이 50장도 찬송시 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1절에서는 온 땅에 가득한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2절에서는 그 언약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시온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을 보여주고 3절에서는 그 위엄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능력 있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에 세계관에서 보면 온 세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해 돋는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서 해 지는 데까지라고 하는 것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지상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사람들의 우주관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식으로 생각을 했느냐 하면 땅은 평평하고 그 다음에 하늘은 마치 접시위에 투명한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같이 그렇게 이 세상을 생각했습니다. 접시 같은 땅에 유리로 투명한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 같은 것이 하늘이고 하나님이 거기에다가 별을 달아놓으셨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우주관이니까 좀 조잡하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보면 해도 그냥 막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유리처럼 엎어진 투명한 바가지 같이 생긴 것에서 거기 붙어서 도는 것으로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히브리 사람들을 생각을 염두해 두면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라고 하는 것은 세계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그럼 그 사람들은 여기서 태양이 떠서 이렇게 가면 그 다음에는 여기서 이렇게 뜨면 의문이 풀리는데 같은 동쪽에서 뜨니까 그럼 어떻게 생각했느냐 이것입니다. 사실 태양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제가 기록을 못 봤는데 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면 달마다 그 달이 완전히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말로 달이라는 말이 호되시 인데 똑같은 어근에서 나온 말 새롭다 라는 뜻이 하다쉬입니다. 그래서 달이 여기서 떠서 이제 이렇게 나타났는데 한 달이 되면 그 다음에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 변하고 새로운 초승달이 뜨지 않습니까 그게 옛날 그 달이 계속 변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달은 완전히 죽고 손톱이 나듯이 새 달이 뜬다 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태양도 어쩌면 이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이 됩니다. 어쨌든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의 우주관으로 보면 인간의 사고가 미칠 수 있는 이 지상의 모든 세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거기까지 하나님이 세상을 부르셨다 여기서 부르셨다 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이냐면 하나님이 그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그러니까 이 창조된 모든 세계 중 어느 사람 어느 만물과도 하나님이 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이나 사물이 없이 그 하나님이 관계를 가지고 계신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선 창조에 있어서 그러합니다. 그래서 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이 모든 지상의 세계가 사람이든지 모든 사물이든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과 관계를 맺고 계십니다. 또 하나 창조된 것들은 창조된 다음부터 홀로 자신 안에 있는 원리만을 가지고 하나님과 단절된 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들을 붙들고 계심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물을 만물 안에 있는 모든 법칙들은 그것이 독자적으로 법칙을 가지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법칙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만물을 붙들고 계시는 규칙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세상은 하나님과 관계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과 모든 사물들이 2차적인 생성과 소멸,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창조된건데 다시 또 사라지기도 하고 다시 나타나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 생성과 소멸도 결국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관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이 땅에 있는 인간과 사물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중에 나는 새한마리도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떨어지지 않는다 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과 여호와가 함께 그 두 명칭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획일적으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만은 그러나 대체적으로 볼 때 이 하나님은 보편세계에 계시는 모든 만물위에 뛰어난 능력으로서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고 여호와는 언약백성들에게 계시된 그 백성들과 관계를 가지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람이든지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물이든지 이 모든 세계와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 이시라면은 여호와는 그 안에 있는 자기의 백성들과 언약을 기초로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주적인 하나님과 언약백성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함께 부르고 있는 대목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공정히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장 큰 위무는 이 세상을 살면서 그 하나님을 잘 믿고 그리고 세계에 가득찬 그 하나님의 그 영광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발견하면서 그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성도의 의무이고 인간의 의무입니다. 그것을 잘하는 사람들은 행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찮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뭐 더 이야기하면 굉장히 길지만 어쨌든 대게 그런 이야기입니다.
전능하신 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은 모든 것을 무능하거나 혹은 불능한 것이 없이 모든 것을 행하실수 있는 그러한 하나님의 힘, 의지의 힘 이런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중세의 신학자들은 이 하나님의 능력을 정말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능력을 절대적인 능력과 규정된 능력을 나누었습니다. 절대적인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절대적인 의미에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의미에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악한 자들에게 상을 주시고 의로운 사람들에 고통을 주시는 일도 하실 수 있느냐 하실 수 없느냐 이러한 논의들을 개혁자들에게 와서 한 번에 모두 다 부숴버린 것입니다. 그런 것 다 쓸데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은 하나님 자신의 인격적인 성품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면 되겠습니까 의로우신 하나님이 선한 자들을 벌주시고 그 다음에 악한 자들에게 커다란 행복을 주신다면은 하나님은 하실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면 안 되겠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러한 모든 논의는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전능하다라는 그 의미는 하나님 자신의 인격적인 성품의 빛 아래서 질서가 지어진 그런 능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능하신 능력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하나님의 위대하고 전능하신 능력은 누가 잘 경험하겠습니까 악을 행하고 미친 듯이 질서를 어기면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전능하심을 잘 경험하지 못합니다. 누가 경험하겠습니까 자기 자신도 하나님의 인격적인 성품의 빛 아래서 이 규정된 질서를 따라서 살 때 오히려 하나님의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능력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텐티아 오르디나타 라고 했습니다. 제가 한번 가르쳐드렸습니다. 어거스틴의 일평생의 기도제목이 하나님이여 내 안에 사랑을 질서롭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서 질서 롭게 하다의 그게 오리디나타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은 오르디나타 질서가 지워진 능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위대함과 전능하심은 그 질서를 넘나들면서 아무렇게나 사는 악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질서를 따라서 사는 사람들은 그 질서의 빛 아래서 찬란한 하나님의 인격적인 성품들이 다가오면서 그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이 모든 세상과 거기 있는 사물과 그리고 인간들을 내가 불러내었다. 내가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부르심을 피할 수 있는 사물과 피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와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서는 안 되고 우리의 삶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관계를 맺고 계시다고 생각을 하고 그 모든 것들이 그 하나님을 찬송하는 도구가 되도록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게 인간의 삶입니다.
그래서 이제 순서를 보면 하나님을 모르던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그 전능하시고 아름다운 존재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시 않습니까 그러니까 제일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지 못한 인간이라도 상당히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실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을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만드신 이가 없다면 어쩜 이렇게 현명하고 아름답고 질서 있게 이런 것들이 이렇게 꽃이 필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꽃잎이 잎사귀가 나는 것도 정확하게 수열로 난다고 말입니다. 그런 질서들이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이 안에 있는 꽃무늬 같은 것도 전부다 엄격한 질서를 따라서 이루어집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을 하는데 명료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깊이 만납니다. 그러면 구속주를 아는 지식을 통해서 창조주를 아는 지식이 선명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구속주를 아는 그 지식의 빛 아래서 그다음에 이렇게 보다가 구속주를 통해서 하나님께 올라간 사람이 다시 그 구속주의 빛 아래서 창조세계를 보면서 그러면서 창조세계를 내려오면서 이 창조세계에 담겨진 그 신비한 하나님의 질서와 아름다운 계획과 하나님의 성품들을 감상하면서 그러면서 그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노래하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면서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중의 신지식이라고 합니다. 창조주에 대한 신지식과 구속주에 대한 신지식이라고 합니다. 일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온 세계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누가 책을 썼는데 아는 것만큼 들린다 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음악입니다. 음악이 많은 가락들이 쏟아져 나와도 아는 사람 귀에는 들리지만 알지 않는 사람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 창조의 모든 것의 아름다움들이 비취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와 관계를 맺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높이고 사랑하고 노래하며 사는 그것이 성도의 의무입니다. 일평생. 그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탁월하게 아름다우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의 영혼과 마음을 하나님 앞에 순전하게 드리면서 사는 삶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통해서 그 아름다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그 모든 아름다움의 액기스입니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그 아름다움의 빛 아래서 거룩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며 그렇게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