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처럼 바람처럼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 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시 50:3).
3절에 나오는 불같이 바람같이 하나님을 묘사하는 이 대목은 이게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의 빛을 시온에서 발하실 때 그 영광이 빛이 전파되는 방식이예요. 무슨 의미이냐 하면 불이라고 하는 것은 기존의 것을 태워버리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이 무엇이든지 불이 태우고 나면 재만 남잖아요. 그러니까 불이 의미하는 바가 뭐냐하면 소멸이예요. 그래서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요'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불은 태우는 것이예요. 태워서 겉 보기에는 붉은 꽃이고, 푸른 잎이고, 회색은 천이고, 고동색 나무고, 이렇게 여러가지 색깔이 있어도 태우고 나면 모두 다 소멸되어 버려 재로 돌아가는 거죠.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아름다운 시온에 비취실 때 시온에서건 아니면 시온이 아닌 이방의 땅에서건 하나님이 의지하시면 소멸하는 불로써 하나님과 상관없이 세워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도록 세워진 그 모든 질서를 소멸하시는 그런 일들을 하시는 것이예요. 이것은 사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할때 그때 그 은혜는 우리에게는 소멸하는 불이 되어서 하나님 없이 인간의 욕망과 죄에 의해서 수립된 우리 안에 있는 많은 질서들, 이것들을 성령이 우리에게 은혜로 역사하실때 태워지는 거죠. 그래서 허물어져 버리는 거죠. 소멸되는 거죠. 그래서 성경은 여러곳에서 이 성령을 불로 묘사해요. 물로도 묘사하죠. 또 바람으로도 묘사하구요. 근데 물로 묘사하는 것이 정결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 불로 묘사하는 것은 태워없애 버려서 파멸시키고 그렇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속에 세워진 이 많은 잘못된 사상과 그리고 인생관, 사회의 제도, 사람들의 마음, 편견, 이런것들이 쭉 세워지게 되는데 이런 것들을 하나님이 불로 삼키면서 그러면서 파멸해 버리시는 거죠. 그런 놀라운 일들이 있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시온을 아름답게 하십니다. 즉, 하나님과 특별한 언약관계에 있는 이 예루살렘과 시온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돌아오도록 그래서 그들을 먼저 태우셔서 그래서 정결케 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사상과 삶의 예배의 모든 질서들을 파괴하시고 그리고 이 하나님의 언약 중심인 이교회가 아주 아름답게 되었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이 아름다운 시온에서 당신의 영광의 빛을 충만하게 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덩치를 키운다고 해서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아무리 교회에 사람들이 많아도 그 덩치를 가지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예요. 세상과 다른 영혼과 마음,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예요. 어차피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확 덮어서 쓸어버려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단지 변화를 위한 하나님이 누구신가,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성품이 무엇이고, 심판이 임박해 온것, 이런 것들을 알려주는 도구일 뿐이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캄캄한 밤 바다에서 만약에 배가 길을 잃어버렸다면 온 항구가 수천개의 조명탄을 쏘아 올려서 훤하게 보여야지만 그 항구로 피하는게 아니예요. 등대 하나라도 옳게 켜져 있어서 그 등대 하나를 보고 수많은 배들이 피할수 있는 거죠. 그 논리거든요. 세상이 타락하고 어둡다 하는데, 그럴수록 온전한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많은 빛을 발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많은 배들이 그 등불을 보고 항구로 피하게 되는 거죠. 세상 나라의 특징은 결국은 하나님을 이길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힘을 형성하고자 해요. 그래서 그 힘은 많아지고 커지는 것이예요. 그렇게 해서 자신의 힘과 위력을 가지고 자신들이 원하는 질서들을 세상에 만드는 것이예요. 이런것들이 우리 사회에서 아주 촉진되고 있잖아요. 목욕탕 다 없어졌잖아요. 크게, 요즘은 목욕탕 하나 만드는데 100억씩, 150억씩, 심지어는 300억씩 들여서 목욕탕을 만든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옛날에 동네 골목 골목에서 보이던 그런 목욕탕들은 다 없어지고 말았어요. 그뿐만 아니라 구멍가게도 다 사라지고 이제는 들어서면 자기 차를 찾을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커다란 규모로 되어가는 거죠. 회사도 마찬가지죠. 이게 단순히 그냥 커지면 경제적으로 돈을 많이 번다 이런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 속에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은 크게, 많게, 그래서 뒤덮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떠난 자신들이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거죠. 가인이 타락한 후에 그 자식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큰 건물을 짓는 것이었어요. 그게 바로 인간이예요. 그렇게 하나님이 잘못 세워진 것들을 소멸하는 불로써 태워 버리시고 그리고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그러는데, 이것은 좀 문맥이 있어요. 팔레스타인에는 그렇게 바람이 많이 분답니다. 특별히 바람이 아주 많이 부는 계절에는 어마어마한 바람이 불어서 1986년도쯤 됐나 한데, 여름인가 였는데 어마 어마한 바람이 불었어요. 그래서 뚝 위를 지나가던 봉고가 뒤집힐 정도였으니까 어마어마한 바람이었는데 그렇게 바람이 불때에는 무조건 창문을 다 여는 것입니다. 일단 창문을 다 열어서 바람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아야해요. 횡풍을. 그 포천쪽에 가면 가로수가 몇 십년을 서 있었던 거였거든요. 근데 그게 전부다 넘어져서 뿌리가 뽑힌 거예요. 그거는 초속 몇미터의 바람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어마어마합니다. 그게 아주 실제로 봤어요. 그 바람이 지나간 다음에 가보니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큰 나무가 꺾어지거나 아니면, 바람이 휙, 휙, 휙, 한번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계속 부니까 뿌리가 충분히 흔들려서 땅하고 간격이 생기는 거예요. 그때 이제 진짜 강한 바람이 부니까 그 몇십년씩 심겨졌던 나무가 뿌리를 확 드러 내면서 쓰러지는 거예요. 가는 곳곳마다 나무가 그렇게 쓰러지는 거예요. 무서운 바람이었어요. 그러한 바람을 많이 본거예요. 이게 뭘 의미하냐면 오랫동안 세워져 있었던 그런 잘못된 질서들이 뿌리가 뽑히는 것이예요. 이거는 파멸의 또다른 형태를 의미해요. 일단 뿌리가 뽑혀서 나무가 쓰러지고 그리고 뿌리가 땅위로 올라오면 그 나무는 더이상 성장할수가 없는거죠. 그래서 구약학자들가운데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히브리말로 '엘로힘'이라는 단어인데 아마도 '울'이라는 단어에서 왔을거라고 생각을 해요. '울'이 뭐냐하면 도토리나무예요. 그럼, 그 도토리나무가 하나님과 뭔 관계가 있느냐. 그 바람이 불어서 수많은 나무들이 그렇게 쓰러질때 끝까지 쓰러지지 않는 나무가 그 상수리 나무, 도토리 나무래요. 그래서 아마 뿌리가 특별한 모양이예요.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울'하면 아주 강한 것으로 인식이 된거예요. 그래서 그것이 복수형이 되어서 '엘로힘'이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그 하나님은 광풍을 불러일으키신다. 사방에, 그래서 무엇으로도 쓰러지지 않던 인간의 사상, 사람의 마음, 인생 이런것들을 막 쓸어버리시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가 사방에 부는 광풍으로 묘사가 되는 것이죠. 왜 이렇게 중국정부 이런데서 기독교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북한은 더 두려워하죠. 아마 한 사람을 북한이 들어가게 해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게 하는데 한 사람앞에 10억씩 받게 들여보내게 하겠다 그렇게 하면 아마 한국에 10억주고 사람을 보낼 교회 많을 거예요. 그게 간단하지 않겠어요? 근데 그게 못하는 겁니다. 요번에 인제 뭐 가끔 보면 북한에서 부흥회같은거 하잖아요. 어마 어마한 돈을 받고 그 일을 하는데 사람 다 골라서 보냅니다. 거기가서 은혜 받을 사람은 안보냅니다. 그런데도 역사가 일어나는거죠. 그렇게 무서워하는거죠. 특히 이슬람같은데 이 복음이 들어가면 사회가 뿌리채 뽑혀 버려요. 우리 나라의 첩실제도가 사라진게 기독교의 힘이라고 했잖아요? 남녀평등을 가져온게 기독교의 힘이예요. 내버려뒀으면 지금도 어림도 없죠. 근데 그런 사회에 있는 모든 이 하나님의 생각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일단 이 믿음이 들어가게 되면 다 부셔버리게 되는 거죠. 그것이 바람이예요. 광풍과 같이 부는 바람이예요. 그런 강력한 바람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도성이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되어서 아름다운 질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될때에 이 세상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세상을 변화시키는 현존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은 언약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의 표현이예요. 그래서 교회가 올바르게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죠. 그래서 교회 자신이 참된 진리의 토대 위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에 의해서 쇄신된 모습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거죠. 이게 부흥의 원리예요. 그래서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기 위하면 교회의 덩치를 키워서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있는 사람들이라도 주님을 잘 믿고 변화되고 한 사람 한 사람 들어올때 교회의 덩치에 관심을 갖지 말고 그 한사람 한사람이 참으로 주님앞에 복종된 사람으로 변화되게 할 때 이 세상은 그런 놀라운 변화들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