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원과 영광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시 62:7).
Ⅰ. 나의 구원
그러면서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를 7절에서 묘사하고 8절부터 실질적으로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시인이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구원이라는 것은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구약에서 말하는 이 구원은 단순히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는 개념이 아니에요. 물론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구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주 포괄적이에요. 그래서 인간을 그 모든 악과 그리고 고통에서 건져주셔서 그래서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창조의 목적대로 살 수 있게끔 해주시는 그 모든 것이 구원이에요. 그래서 구약에서는 우리의 일반적인 생활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내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행동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영적인 관계를 보여주고 신약에서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적으로 건져주시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행동을 통해서 우리의 삶 전체를 주관하고 통치하시면서 이끄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기에서 ‘나의 구원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라는 이야기는 삶속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모든 위기와 고난에서 건져주시는 그 일이 하나님만이 나에게 하시는 일입니다. 나의 영혼이 침체되어서 죽은 자 같이 되었을 때에 나의 그 영혼을 다시 살리시는 그런 일들도 주님이 나를 위해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여기에 묻어있는 것이에요.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면 시인이 하나님을 향해 가지고 있는 신앙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의존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다윗을 구약에서 최고의 인물로 꼽으며 존경했던 이유도 바로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의존의 마음을 그의 참회를 통해 통회하는 심령을 통해서 보여주었기 때문이에요. 그래 이것은 한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서 깊이 통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의존한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주님이 당신의 손으로 그 사람을 빚으실 때에 그 빚으심에 합당하도록 순종할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사람이 그렇게 존경을 받았던 것이죠. 여기서 구원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을 보여줍니다. 신앙이 없을 때에는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그래서 나를 곤궁과 어려움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많은 방법들을 사용합니다. 때로는 이것이 지나쳐서 인간의 잔재주와 잔꾀를 의존하기도 하고 때로는 죄 때문에 어려움에 빠져있는 자신을 건져내기 위해서 죄를 짓기도 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거든요. 그런데 시인은 ‘나의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가 나의 인생이 어려움에 처하고 고난을 당할 때에 거기에서 건져주시는 그 일은 오직 주님께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에요.
Ⅱ. 나의 영광
그러면서 그는 또 말하기를 ‘영광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영광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시인이 시편에서 아주 자주 사용하는 단어에요. 그리고 나의 영광이라는 말도 아주 자주 사용해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영광이라는 말이 무겁다는 ‘카보드’ 라는 뜻인데 히브리말에서 무겁다는 것은 중요하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실제로 무게가 무겁다는 뜻보다는 무엇인가 거기에서 발휘되는 효과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어떤 힘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나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를 믿고 그와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취급되는 그것이 바로 나의 영광이에요. 그것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오직이라는 말이 첨가되지요?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신앙이 없을 때에는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겁게 취급되게 하기 위해서 남다른 지식을 소유한다든지 남다르게 많은 물질을 소유한다든지 남다르게 많은 권력을 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다스림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영광이 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시인이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나의 영광이시구나!’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귀하게 여김을 받고 높이 여김을 받는 그것이 결국은 하나님과 맺은 관계에 있구나!’ 그것을 여기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만이 나의 영광입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주님을 믿고 따르는 길이 때로는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 같아도 우리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앞에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그 모든 이유가 하나님과 맺은 관계와 신앙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나의 영광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비록 내가 한 나라의 왕이요 그리고 제왕이라고 할지라도 만약에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면, 내게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다면, 내가 하나님을 버린다면, 내 영광은 따로 존재할 수 있는 영광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의 영광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절대의존적인 신앙 이것이 오늘 시편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Ⅲ. 내 힘의 반석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내 힘의 반석이라는 것은 히브리말로 ‘추루’라고 하는데 이것은 바위에요. 바위인데 그냥 바위가 아니라 넓고 평평해서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런 종류의 바위에요. 그래서 이 반석위에 만약에 어떤 건물을 짓는다면 이것은 기초가 매우 튼튼해서 흔들리지 않는 건물이 되는 것이죠? 이제 이런 생각을 해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매우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 만약에 그가 어떤 무거운 것을 번쩍 쳐들고 그가 만약에 진흙위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힘으로는 그것을 충분히 들 수 있어도 발을 디디고 있는 그곳 자체가 불안정하게 되면 오히려 그것을 충분히 들 수 있어서 든 그 상태가 오히려 그 사람에게 더 위험하게 되는 것이에요. 사람이 삶의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많이 소유해보십시오. 반드시 불행해집니다. 삶의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박수와 갈채와 영광을 받아보십시오. 어떻게 됩니까?
뭐 꼭 접합한 예화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청소년 시절 때에 일본작가 중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탐독하던 작자가 있었어요. ‘가와바다 야스나리’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설국이라는 소설을 썼어요. 참 아름답게 쓰인 소설입니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정말 예쁩니다. 그 책을 쓰고 일본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요. 그때 엄청난 사건이었지요. 그리고 불과 얼마 안 되어서 자살했습니다. 그 엄청난 영광과 수입이 있었고 가는 곳마다 진짜 일본의 수상은 누군지 기억이 안 나도 가와바다 야스나리를 모르면 간첩이었지요. 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노벨상을 받고 일 년이 좀 넘었을 때에 자살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어요. 왜 그렇게 커다란 영광을 받고 자기네 집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의 결론이 자신에게 주어진 그 명예가 자신에게 너무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오늘 시인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나의 힘의 반석이 되십니다. 내가 아무리 많은 영광을 얻고 그리고 때로는 고난을 감당하기 위해서 큰 힘을 발휘할 때조차도 주님은 나의 반석이십니다. 내 인생에 아무리 무거운 짐을 져도 쓰러지고 주저앉고 땅이 꺼져서 넘어지지 않도록 탄탄하게 마치 큰 집이 반석위에서 견고하듯이 그렇게 하나님이 나의 힘의 반석이십니다.’ 고백하고 있는 것이에요.
(찬양)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그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에요. ‘실수가 없이 내가 인생의 어떤 처지에 처해있든지 간에 그분을 의지하기만하면 나의 발을 붙들어주시고 내 삶의 건축하는 모든 일의 토대가 되어주시는 하나님’ 그 시인이 고백하고 있는 것이에요. 사람들은 이러한 토대가 없이 무조건 자신 위에 재물과 권력과 지식과 이 모든 것들을 쌓아올리려고 해요. 그러나 그런 것들은 참된 반석을 가진 것이 아니죠. 이런 경우들이 많이 나옵니다. 여러분들은 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철학자들이 자살률이 매우 높습니다. 한때는 제가 심취하던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사람도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엄청난 추종자들을 만들었지만 그냥 뭐 그 사람 책을 안 읽으면 시대정신을 모를 정도였지요. 그러나 1889년에 결국은 길거리에서 쓰러집니다. 그리고 결국은 병원에서 쓸쓸히 죽어가요. 이러한 것들도 결국은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면 우리의 삶에 있어서 무엇을 건축하느냐와 함께 우리의 삶의 기반이 얼마나 중요한가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Ⅳ. 나의 피난처
그러면서 고백하기를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으며 내 힘의 반석이시며 그리고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피난처는 전쟁이 났을 때 도망가는 그 피난처를 가리킨다기보다는 도피성을 염두에 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도피성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만약에 실수로 누군가를 죽이든지 사고를 치게 되면 의도가 없는 사람일 경우에 그러면 우선 도피성으로 도망을 가는 것이죠. 왜냐하면 손해를 입은 가족이나 친지들이 미워하는 마음으로 살해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도피성으로 도망갑니다. 거기는 안전합니다. 절대로 다른 사람이 보복하러 들어올 수 없도록 도피성에 머물면서 사실을 심리 받는 것이에요. 인생을 살다보면 그렇게 도망쳐야 할 때가 있는데 이 시인은 ‘하나님이 바로 나의 인생의 피난처이십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니 시인이 어떻게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시인이 5절에서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나는도다.’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