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만족함은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시 63:5).
여기에서 시인은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을 인하여 자기 손을 들고 기도하겠다 이렇게 말한 후에 그러면서 그 자기가 왜 그렇게 살게 되는지를 다시 5절에서부터 설명을 하는 거죠. 그래서 그 고백하는 내용이 바로 그 얘기죠.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 같이...이거는 이 골수라고 그랬는데 좀 번역이 그렇구요.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은 이게 풍부함...그런 정도의 뜻이에요. 그러니까 정확하게 보자면은 풍부한, 기름진 것이 먼저 나와요. 기름진 것과 풍부한 것을 먹고, 먹음 같이 ...이렇게 해서 오늘날은 뭐 기름진 거 먹는 거 별로 안 좋아 하잖아요 그죠? 그렇지만은 저희 어렸을 때만 해도 이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은 굉장히 호사스러운 생활이다...이렇게 생각을 했다 말이죠. 그래서 그 그 기름기 있는 그런 음식, 뭐 워낙 없었으니깐요...저 어렸을 때만 해도 배 나온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배 나온 사람들은 사장배라 그래 가지고 굉장히 배 나온 사람들 스스로 긍지를 갖고 그리고 옆에서 보는 사람도 뭐 부러워하기까지 했는진 모르지만 어쨌든 나빠 보이지 않는 그런 분위기였어요. 지금은 뭐 똥배라고 푹푹 찌르지만은...그런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이 부의 상징이다 이렇게 생각을 한 거죠.
그러면 여기에서 인제 이야기 하는 건 뭐냐 하면은 육체가 음식을 먹는 것과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고 만족을 누리는 두 개를 같이 비교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육체가 풍부하고 그러니까 풍부하다라고 하는 것은 뭐냐하면은 뭐라고 그럴까 그 음식을 먹는데 그 음식이 뭐라 그럴까 그 그 뭐라고 표현을 해야지 잘 표현이 안 나는데 표현 생각이 안 나는데, 이렇게 음식을 음식 음식을 음식을 먹을 때 이 음식이 영양이나 이런 것도 풍부하면서 그러면서 양도 아주 그 넉넉해서 그래서 사람이 기분 좋게 음식을 섭취하고 또 거기에 부자들이 먹는 아주 기름진 음식들이 함께 있는 그런 어떤 식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끊임없이 그런 음식이 공급이 된다면 육체가 그것을 먹고 아주 만족을 누리지 않겠어요? 이렇게 생각을 해 보세요. 상상의 날개를 펴면, 상상의 날개를 펴 보면, 여러분들이 그 어 인제 밥을 먹으로 갑시다 그러면 인제 뭘 좀 드시겠습니까? 아이 그냥 간단하게 그냥 간단하게 그냥 먹읍시다...이 얘긴 무슨 얘기냐 하면 아직 배가 안 고프다는 거예요. 배가 안 고프든지 아니면은 음식 배가 고파도 음식 자체에 대한 욕망이 거의 없는 거예요. 아이 그냥 뭐 그렇게 복잡하게 그냥 물이나 말아서 김치하고 그냥 간단하게 한 술 뜨고 말지..그 얘긴 뭐냐면 배가 고파도 음식에 대한 욕망이 없는 것이에요. 근데 배가 아주 굉장히 고파요. 그리고 배가 고플 뿐만 아니라, 맛있게 한 번 풍부하게 먹어 봤으면 좋겠어요. 그 얘긴 무슨 얘기냐 하면 배만 고플 뿐 아니라 영양에 대한 욕망도 있는 거예요. 그런 욕망이 있을 때 배가 많이 고픈데, 상을 내왔는데 진짜로 진귀한 요리가 가득 차려져 있어서 이것 저것 주워 먹으면서 기쁨을 느낀다 이거죠. 근데 그거를 충분히 먹었어요.
그 때 완전한 포만감,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음식을 이것 먹고 싶다, 저것 먹고 싶다 말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그런 완전한 포만의 상태, 배만 부른 게 아니라 이제 더 맛있는 음식을 먹어 봐야 되겠다라는 그 의지 욕구가 모두 사라진 상태, 그 때에 육체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상태가 되잖아요? 음식에 관한 한...그게 뭐냐면 만족이에요 만족 만족...그래서 인제 미국 사람들이 충분히 드셨어요? 아우 좀 더 많이 드시지 충분히 드셨어요? 그럴 때 충분히 드셨어요? satisfied? 만족하셨어요? 물어 보죠. 그게 충분히 먹은 거예요. 그 때 인간은 음식의 욕구가 만족을 느끼게 되고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게 되는 거죠. 똑같은 일이 자신의 영혼에 일어나고 있다는 거죠. 사실 음식에 대한 욕망은 뭐 칼칼한 걸 먹고 싶다든지, 고기를 좀 먹고 싶다든지, 생선을 먹고 싶다든지, 맛있는 비빔밥을 먹고 싶다든지, 뭐 이렇게 많은 종류가 떠오르지만, 영혼이 곤고할 때는 모두 해 보고 싶고, 모두 모두 모두 그렇게 해결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거를 지식이 없을 때에는 그게 무엇으로 해결 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진짜 자신의 영혼이 곤고하고 고통 받고 외롭고, 쓰라리고 방황하고 허무하고 막 이러면서도 그거 하나 하나에 대해서 무슨 처방이 따로 있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하고 또 뭘 원하냐 라고 물어볼 때에도 육체가 원하는 것은 우리들이 비교적 선명하게 설명하고 나는 이걸 원한다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그 영혼이 원하는 거는 꼭 집어 내서 난 이게 필요하다라고 그렇게 말을 할 수 없는 그 정도 자기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처방을 내릴 정도가 되면은 그 사람은 상당한 수준의 사람이란 말이죠.
근데 마지막에 결국은 해결책은 어디서 나오냐 하면 결국은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그런 모든 것들이 자기에게 만족이 되게 해결된다고 하는 것을 배우게 되잖아요? 그렇잖아요? 우리의 그 우리의 뭐 우리의 몸의 그 배고픔은 여러 가지 많은 욕구들을 동반하잖아요? 그것은 뭐 아무거나 먹었으면 좋겠어요 그거는 뭐 그냥 그 배고픔 자체가 뭐 확 압도한 상태를 보여주는 거고, 그 정도가 아니면은 배가 고프면서도 배가 고픈데도 그냥 이거 먹자 그러니까 아이 싫어 그리고 그 음식점 안 들어가겠다고 그러고 딴 데 찾잖아요? 뭐냐하면 그거는 그런 다양한 욕구들을 계속 찾는거죠. 예를 들면 아침에 인제 이렇게 새벽기도를 하고 갔는데 아침을 먹고 싶다 그럴 때 그런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누가 아침에 그렇게 불 피워서 굽는 그런 그 저기 고기나 갈비나 그런 거를 먹고 싶은 사람이 그 누가 있겠으면 또 아침에 차가운 냉면에 얼음 둥둥 뜨는 걸 먹고 싶다는 느낌을 갖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렇게 배가 고파도 다양한 음식의 욕구가 다양하잖아요. 근데 영혼은 그렇지가 않다 이 얘기에요. 주님을 육체가 음식을 못 먹었을 때에는 먹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다양한 음식의 욕구들이 생겨나지만, 영혼이 하나님을 못 만났을 때에는 막 감정이 떠돌면서 여러 가지 하나님을 못 만난 증상이 그 증상이 나타나는데, 그 하나하나에 대한 무슨 처방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거죠. 그렇게 처방을 할 수 있다고 세상 사람들은 생각을 하고 무슨 사람을 놀이로도 치료한다, 음악으로도 치료한다, 뭐 요즘은 무슨 미술로도 치료를 한다, 이야기로도 치료를 한다, 그러지만은 사실은 그것이 궁극적인 치료가 되겠어요?
정신의 질병인데,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것으로써 우리의 영혼의 진정한 치유와 변화가 오는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시인이 그걸 고백을 하는 거예요. 내가 왜 내 일생을 살면서 그렇게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 분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할까..그것은 바로 나의 영혼이 참된 만족을 하나님께서만 누리기 때문이다...내 육체가 풍부한 음식과 기름진 음식을 먹고 배부르고 만족한 후에 더 이상 소망이 욕망이 없는 것처럼 내 영혼이 주님을 만날 때 내 영혼은 진정한 만족을 느끼고 거기서 나는 하나님의 인자가 나의 육체의 생명보다 더 낫다는 사실을 경험합니다....그 고백이거든요. 그러면서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찬송도 역시 뭐냐면은 그냥 입을 벌려서 소리를 내는게 아니라 몸 전체, 마음과 영혼 전체가 하나의 울림통이 되어서 거기에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거예요. 그래서 찬송은 영혼의 가락이에요. 영혼의 가락이에요. 그래서 이 찬송은 영혼의 가락이에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은 찬송을 부르면서 그 찬송이 우리의 영혼의 가락을 조절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이 마음이 번잡스럽고,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 하고 등등 있을 때 이 찬양은 우리의 영혼의 이 가락을 북돋워 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니까 그렇게 찬양할 때는 항상 어떤 원칙이 있어야 되냐면 그냥 노래하면 안 되고, 그 찬양을 자기 요즘은 찬양을 자기 스스로 즐기는 찬양이거든요. 진정한 찬양의 의미가 아니에요. 찬양은 영혼의 가락이에요. 그래서 그 찬양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하나님을 집중하게 해서 하나님을 즐거워 하도록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이끌어야 되는 거예요. 그게 진정한 찬양의 의미에요.
요즘은 뭐 그 저 유행가 가요 그 무슨 등수 매기듯이 그 등수도 매기고 해 가지고 사람들이 그냥 자기 자신을 즐거워하게 이렇게 부르는데 그것은 찬양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에요. 찬양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당신 자신을 백성들이 즐거워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그 입술로 찬양한다라고 하는 것은 이 몸과 영혼 전체가 울림통이 되어서 하나님을 향한 가락이 울려 퍼지는 거죠. 그러니까 자기가 하나님을 만날 때 그는 마음이 찬양으로 가득찬 사람이 되어서 우리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주님을 찬양하며 사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