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에서 경험하는 하나님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시 53:6).
악인으로부터 끊임없이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는 비극 속에서 이 시인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국가적인 지평으로 확장해서 우리에게 그 의미와 계획들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자가 누구인고’ 그러면서 한 장소가 나오는데 ‘시온’이 등장 합니다. 이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인생의 역경에 처했을 때 결국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그 역경을 이기고 또 악한 자들에게 에워싸여서 고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악한 자들을 꺾으시고 거기에서 우리를 구원해 내시는데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개인적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안에 있는 백성이라는 사실을 증거 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신앙의 간증들을 낳으면서 믿음생활을 해 나가지만, 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를 입는 것은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언약의 백성들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특별히 당신 자신에 대한 앎을 주신 것입니다. 그 앎을 통해서 언약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지식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지식 속에서 인생의 여러 문제들을 헤쳐 나오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게 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 이것들은 나 개인의 소유라기보다는 공동체의 소유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공동체를 통해서 이 땅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될 때에는 그 사람들도 함께 나누어야 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요 앎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우리는 직접 하나님의 본질을 보아서 알 수는 없습니다. 무한하고, 영원하고, 불변하시는 분이시고,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불가해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본질은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과 맺으시는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속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그리고 속성이 행사되는 방식에 대한 앎을 가리켜서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속성은 결코 우리에게 혼합되어서 경험되는 적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실 수 있는 수많은 여러 가지 속성 가운데 하나와 만나는 것입니다. 두 개가 혼합되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형언할 수 없는 분이시지만 피조물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에서 어떠한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서 각기 다른 하나님의 속성들이 그 사람에게 경험되는 것입니다. 비참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가 경험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주님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경험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의한 자들에게 고통을 받으면서 주님께 호소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정의를 보이십니다. 요동치는 삶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나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많은 속성들은 하나님이 피조물과 맺으신 관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동시에 두 사람이 기도해도 한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에 강한 경험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속성과 그 속성에 대해서 알게 될 수가 있고, 동시에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라 사랑에 감격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똑같은 십자가의 설교를 들으면서 어떤 사람은 죄의 심각성에 부들부들 떠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기 같은 죄인을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성품이 경험되고, 두 번째 성품이 경험되고 할 수는 있지만 두 개가 혼합되어서 우리에게 경험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가 두 가지 성품이 함께 경험되는 것 같은 착각을 하는데 그것은 첫 번째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어떤 속성이 우리 기억 속으로 잠겨 있다가 이것들이 회상의 작용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 정동을 일으키면서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두 가지가 함께 경험되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그렇지가 않고 항상 순서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런 것들이 기억 속에 아주 많이 있어서 상황에 따라서 정동의 작용을 통해서 우리에게 회상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면서 나타나게 될 때에 그 때에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의 심령 안에서 아주 충만하게 경험되는 것입니다. 이런 속성에 대한 경험은 반드시 이러한 속성이 행사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앎은 속성에 대한 지식과 속성이 행사되는 방식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나와 상관이 없는 어떤 지식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나 개인의 삶 속에 어떻게 행사되더라,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공동체 속에 어떻게 행사되더라, 하나님의 사랑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교회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행사되더라, 어떻게 어떻게 하니까 하나님이 이런 지식들을 부어주시더라, 이런 것들에 대한 앎이 풍부할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앎과 속성이 행사되는 방식에 대한 앎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없이 아주 즉각적으로 실천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이런 사랑을 알았는데 그 사랑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만들어주고 순종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줍니다. 또 하나님의 공의를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더 올바르게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주어서 불의를 버리게 합니다. 이런 지식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신앙이 좋은 사람입니다.
어떤 우연적으로 헌신을 한다든지 우연적으로 어떤 결단을 내리는 한두 가지를 보고 신앙의 깊이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때 신앙이 좋은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경험을 하게 되면 그 경험은 지식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것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물론 기억으로부터 잊혀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주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당에 감을 매달아놨는데 그 감을 보면 어떤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음식을 별로 가리는 것이 없는데 절대로 못 먹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감입니다. 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는 감을 아주 좋아했었습니다. 어디서 배우셨는지 감의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할머니께서 감을 쪄서 해주셨는데 그것을 먹고 크게 채했습니다. 채했는데 약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동안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것 삶던 부뚜막만 보아도 토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감을 보기만 해도 그 때 기억이 올라와서 속에서 토가 확 하고 올라옵니다. 지금도 45년 전 기억인데 그때 생각만하면 속에서 올라옵니다.
똑같이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그 속성을 경험하면 기억이 속으로 내려갑니다. 언제나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한 번 경험 한 사람이 늘 뜨겁게 하나님 사랑하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대신 내려갑니다. 이것이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없는 사람은 아무리 불러오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억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계기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확 하고 올라옵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추억이 쌓이는 것입니다. 추억이 쌓이면 못 헤어집니다. 사랑이 끊임없는 기억이 있어서 그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만 하면 그 기억이 올라와서 그 기억이 올라올 때 마음의 막을 건드려 사랑의 정동이 확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설교를 해서 은혜를 받고 막 깨뜨려지는 사람은 옛날에 깨졌던 사람이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사람들이 깨뜨려진 경우가 드문 이유도 바로 기억이 불러 올려 져서 정동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일반적인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크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지식들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풍부한 정동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러한 당신을 아는 지식을 특정한 사람들에게 많이 주시고 싶어 하는 백성이 있는데 바로 언약백성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주시는 이유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 선택받은 소수의 언약백성에게 이런 하나님을 아는 은혜와 지식을 우리에게 풍부히 주셔서 이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개인적인 지평에서 악한 자들에게 시달리는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을 노래하다가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건져줄 자 누구냐?’ 이것은 몰라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답을 찾아낸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누가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누가 이스라엘을 건지리요?’라는 대답이 이미 시인의 마음속에 있는 가운데 노래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장소가 제시되는데 바로 시온입니다. 시온은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특별히 임재하시는 장소로 묘사가 되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는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데 이 성전과 예루살렘이 일치가 되지 않습니다. 후에 솔로몬의 성전이 지어지면서 완전히 일치가 되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의 효과가 가장 강력하게 나타나는 곳이 예루살렘과 시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언약백성과 맺으신 그 친절과 그리고 하나님의 왕권적인 통치를 나타내 보이는 첫 번째 공간이 예루살렘과 시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온에서’라는 부사구를 붙여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맺으신 언약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만약에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있을 때 우리를 건져주시고 도와주시고 힘을 주시고 도와주셨다’ 어떻게 우리에게 힘주시고 도와주십니까? 원수를 물리치시고 우리를 거기에서 건져내시잖아요? 그 과정 자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속성과 속성이 발휘되는 그 찬란한 방식들이 언약백성들의 가슴속에 새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백성들에게는 ‘무기가 딸려서 졌다, 군인들의 수가 모자라서 죽었다, 패배했다’ 이렇게 되지만 하나님을 아는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건져주신 그 모든 과정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속성이 계시되고, 그 속성의 방식들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이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뜬금없는 이야기 같지만 이것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 있었던 그 많은 전쟁을 회상하면서 자기 개인적으로 베풀어주셨던 그 큰 은혜의 근거를 공동체를 하나님이 다루신 은혜로운 구원의 행동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도움이 끊어진 것 같을 때에도 공동체의 역사를 생각하면 하나님이 절대 나를 버리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도 떼어놓을 수 없는 공동체 속에 속한 언약 백성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면서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좋아 한다’ 이것은 같은 말입니다. 야곱은 개인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칭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말이 같이 반복이 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즐거워하고 행복해 한다라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 거의 잃어버린 경건의 기술들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우리가 어떤 어려움과 시련을 만날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지 않고 버려두신 것 같은 그러한 일종의 ‘반기감’ 같은 것을 느낄 때, 나를 ‘반기’시켰다라는 느낌을 가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동체의 역사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깝게 생각하자면 우리 교회로 인도하신 방법, 더 멀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의 교회를 이끌어 오신 방법,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그 방식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주님이 당신의 교회를 버리지 않으셨으니, 언약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으니, 또한 내가 그 안에 내가 있어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 같은 느낌은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시기 위한 한 방법일 뿐이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안에 있는 나를 버리실 수 없다라는 신앙을 갖게 만들어줍니다. 이런 경건의 기술들이 오늘날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런 것들을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회복해서 공동체적인 신앙을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의 신앙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인이 처한 것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의 영혼이 손해 보지 않고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길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