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는 세상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53:2-3).
우리가 사물을 볼 때에 인간이니까 인간의 눈으로 사물을 보잖아요. 그런데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가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이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이죠. 그래서 예전에는 한 가지 밖에 볼 수 없었는데 성령이 역사해주시면 우리가 예전에 보던 것들 말고 또 다른 면들을 볼 수 있게 해주시는 거죠. 그것이 뭐냐 하면 다름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에서 사물을 보게 해 주시는 거죠. 은혜를 많이 받았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죠. 분명히 그 사람이 정말 미운데 그런데 기도를 할라치면 그 사람이 내게 행한 악한 일이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의 비참한 상태에 대해서 눈물을 흘리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보게 하시는 경우가 발생하죠. 그러한 변화가 이게 마음속에서 일어나게 될 때에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마음과 시각으로 사물을 보게 해주시는 거죠.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도 이런 식으로 사물을 많이 보셨죠. 특별히 예수님은 당신 안에 품고 계신 마음이 죄에 물들어서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이 없거나 혹은 하나님과 다른 마음을 품으신 적이 없으신 분이었기에 더더욱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물들을 볼 수 있는 그런 시야들을 갖게 되신 거죠. 그러니까 우리도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물들을 보게 될 때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예전에는 비관적으로 생각했었는데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보니까 이게 비관할 게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큰 은혜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고 또 반대로 전에는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니까 그 일은 굉장히 슬픈 일이고 가슴 아픈 이이에요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태평하다라고 노래하는 시기에 이 사람들이 탄식하고 통곡하고 굶주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평안하다하는 시기에 위기를 외치고 모두들 위기이고 큰 환란의 때라고 할 때에 오히려 다가올 미래의 행복한 때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낙관을 전달해주기도 했던 것이죠.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시각과는 다른 눈으로, 다른 마음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요 그리고 시야요 그런 것들입니다.
여기에서도 이제 다윗이 그런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은혜를 경험한 거죠. 그것이 뭐냐 하면 이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고 모두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고 물러가서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 절망적인 묘사를 해내고 있는 거죠.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악이나 죄를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에만 도달하게 된 결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겉으로 보이지 않는 뿌리 깊은 죄 그리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 뿌리박고 내려있는 그 많은 악과 그리고 더러움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외모로 보이는 그 삶과는 다른 죄의 뿌리를 보게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본성의 빛 앞에서 비춰보면 모든 인간들이 전적으로 타락하고 전적으로 더러워지고 뒤로 물러가 있는 아주 비참한 상태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에요. 그런 비참하고 더러운 상태 속에서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 땅을 바라보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각도 없고 한결같이 뒤로 물러가 있고 그리고 도무지 선을 행하는 자도 없는 그러한 절망적인 세상이에요. 그것을 남의 나라를 통해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소위 언약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리를 보면서 그 안에서 그런 절망과 낙심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에요.
그런 깊은 어려움과 고통스러운 상황을 바라보면서 이 시인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그 자신 안에 어떤 소망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거죠. 그것이 바로 이 다윗에게는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큰 힘이나 자원, 물질, 이런 것 때문에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속속들이 깊이 부패해서 혹시 자신의 힘으로 어떤 물질과 명예를 모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사용해서 자기 자신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하는데 이바지하지는 못한다 하는 것을 깊고 절실하게 깨닫게 되면서 이 다윗이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는 그런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렇게 얘기를 해요. 칼빈주의의 첫 번째 특성이 인간의 전적인 타락이거든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이에요. 그래서 그런 인간의 전적인 타락 때문에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그런 인간이란 말이죠. 그것이 칼빈주의의 특징이라면 다윗은 가장 고유한 의미에서 칼빈주의자인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아무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확신하고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인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런 인간관이 여기에서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인간이 한결같이 물러가 있는 것이죠.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사람마다 다 살아가는 삶도 틀리고 그리고 그중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진실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 결국은 케 들어가 보면 그 사람이 정말 절망적인 사람이고 그리고 아무 희망이 없는 그런 비참한 처지에 있는 존재라고 하는 것을 아주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거죠. 그것을 보면서 이 다윗이 결국은 인간은 그가 가지고 있는 소유나 물질이나 이 세상의 자원들 때문에가 아니라 인간 자신 안에 갖고 있는 그 비참한 죄성과 타락성 때문에 결국은 인간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이렇게 돌아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너무 어렵고 환란이 많고 시련이 있어서 하나님을 제대로 못 믿어요. 또 어떤 사람은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여유가 있고 충분하기 때문에 주님을 믿을 여력이 없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하나님을 잘 믿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잘 믿던 사람이 그 다음에 형편이 넉넉해지고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면 신앙생활을 안하는 거예요. 또 여유가 있을 때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다가 환란과 어려움이 오면 믿지를 않아요.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이런 환경을 능가하도록 하나님 앞에 새 힘을 얻는 것이에요. 그래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 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원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가 노력해서 얻는 줄은 모르지만 그러나 시련을 이기게 만드는 힘, 그리고 이렇게 인간의 뼛속 깊이 사무친 이 절망적인 죄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게 하는 이 은혜의 힘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주어지는 거죠.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권력이 있다해서 그것을 자기 스스로에게 가져다 달라고 하나님에게 명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그런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이 뼛속 깊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그래서 결국은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러한 진솔한 결심 속에서 주님만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희망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