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낯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셀라)”(시 54:3-4).
여기서도 시인은 일관되게 악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묘사해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악인이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않는 사람이다. 이것이 악인의 정체입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 간다’ 라고하는 사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내포합니다.
우선 첫째는 하나님을 인간이 피할 수 없다는 사상, 주가 어디에서 살든지 인간이 하나님을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그런 고백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면 자기를 자비롭게 여기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만약에 그가 불순종하고 악을 행하면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어디로 가겠습니까?’라고 반문을 했습니다. 그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입니다. 인간은 어디에서 살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면전을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 면전에 살아간다라고 하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은 이 하나만이 아니기 때문에 두 번째 의미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 앞에 서 산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태어났을 때 그 아버지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결과 의로써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에서 특별히 구약에서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의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면서 그 분의 은총을 입고 그 분의 사랑을 입으면서 살아가는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최고의 행복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이고 그것이 바로 믿음생활입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악인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셈이 된다라고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의미인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그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며 그 교제 속에서 살아가지를 않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바로 여기에서 거꾸로 뒤집어서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같은 표현입니다. 그래서 중심을 하나님으로 놓고 보면 자기를 하나님 앞에 두는 것이고, 또 중심을 자신에게로 놓고 묘사를 하면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인에게는 자기중심적인 삶이 있으니까 자기를 중심으로 놓고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부족하지만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올바른 삶을 살고 창조의 목적을 따라 인생을 병행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굳이 자기 자신의 삶을 그 지식에 적용하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하나님에 대한 즉각적인 실천성을 가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아는 지식, 하나님의 속성과 그 속성이 행사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은 즉각적인 실천성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겠다라고 하는 것을 별도로 고민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깨닫고 나면, 속성이 행사되는 방식에 대해서 지식을 갖고 나면 거의 동시에 즉각적인 삶의 실천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보면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지식이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신학지식이 무엇인가? 여기에서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하는데 신학지식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크게 두 흐름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지성의 활동이라는 지식을 우선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는 정의를 내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살아가는 삶이라고 하는 것을 훨씬 더 중심에 놓고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참된 하나님을 향한 신학지식, 즉 하나님을 향한 앎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는 생활이다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라고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고 그 성품이 행사되는 방식에 대해서 알게 될 때에 즉각적으로 삶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그 의로우신 속성이 행사 될 때에 악인은 징벌하시고 고난을 받으며 의롭게 산 사람들은 보상하신다라고 하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그 때 비로소 불의한 자신의 삶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옳다고 믿고 그 길을 걸어가는데 너무 힘이 듭니다. 그런 속에서 하나님이 자기 언약백성들을 위로하시고 돌보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격려를 받으면 쉬운 길을 버리고 어려운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즉각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앎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찬란한 하나님의 속성들이 있는데 그런 속성들을 끊임없이 알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에 개인적으로, 교회의 지평에서 공동체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인류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그 당신의 속성을 행사하시는 방법에 대한 깨달음을 갖고, 그것에 의해서 정동되어지고, 그래서 마음에 하나님의 성품으로 말미암는 감동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성품들이 아주 찬란하게 우리에게 개시되어지면서, 깨달아지면서 이런 끊임없는 감동을 받는 것, 그것이 바로 수준 높은 신앙생활입니다. 그 때 그것은 말할 수 없는 은혜와 놀라운 변화와 감격들을 가져다줍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을 전달해 주는 것이 자연세계에 있는 모든 사물들과 사실들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전달이 되고, 성경의 진리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전달이 됩니다. 그런데 직접성의 정도에 따라서 다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통해서, 우리의 영적 생활 속에서, 성경의 개시를 기초로 전달되는 하나님의 속성과 그것이 행사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은 직접적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직접 가르쳐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세계에 있는 것들을 통한 것들은 직접성이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양으로 본다면 우리들이 접하는 이 자연세계가, 일반학문의 세계가 훨씬 많지만 하나님에 대한 직접성에 대한 면에서 본다면 성경이 양을 적어도 가장 강력한 직접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오대양 육대주를 수없이 헤매는 것 보다는 요한복음 3장 16절 한 절을 제대로 깊이 읽고 은혜를 받는 것이 훨씬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앎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더 많이 인간을 바꾸어 놓을 수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그 속성에 대한 방식에 대한 새로운 앎, 그리고 그것 때문에 자신의 삶이 그 지식에 의해서 바뀌고, 정동되고, 변화되고, 하는 이런 것들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가게 되는 인간의 삶, 저 밑바닥에 있는 인간의 마음, 이것들은 결국 부패한 것들을 쏟아내는 악과 부패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악인이 언약백성인 다윗의 생명을 수색하고, 구박하고, 고통을 주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가운데 이런 일들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이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악인과 더불어 싸우면서 피를 흘리는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은 나의 본능자시라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드시는 자와 함께 하시나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을 붙드시는 자와 함께 하시나이다’ 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번역이 아니고 정확한 번역은 ‘주님이 내 생명을 붙드시는 자입니다’라고 번역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내 생명을 붙드시는 자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그렇게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께 붙어있는 자신을 수색하고 악을 행하지만 그러나 생명은 악인의 손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빼앗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영혼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인생의 풍랑을 겪으면서도 결국은 ‘나를 도우시는 자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시며 내 생명은 주님이 붙들고 계시다’라는 신앙고백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고 믿음생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의 행복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그 분께로부터 오는 끊임없는 지식의 빛 아래서 은혜를 받고 삶의 모든 상황에서 그 분을 의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인생의 참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고 올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간다는 이유 때문에 시련이 올 때에도 주님만이 궁극적으로 나를 돕는 분이심을 기억하면서 그 분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