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찬송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 57:8)
Ⅰ. 내 영광아 깰지어다.
그렇게 마음이 하나님 앞에 확정되고 또 확정되었더니 이제 시인이 하나님을 찬송할 마음의 감격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깊은 감격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서 ‘영광아 깰지어다.’ 그러는데 이 영광이라는 것은 자기를 하나님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중한 존재로 만드는 그 무엇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내 영광아…….’ 라고 노래한 것은 최소한 두 가지 의미를 갖는 것이죠. 우선 첫째로는 이것은 자기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영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자기의 고유성을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켜서 영혼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영혼은 인간을 인간의 영광을 누리게 하는 가장 중요한 내적인 요소입니다. 한 사람의 위대함은 정신의 크기에 달린 것이고 이 정신이 얼마나 올바른 힘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정신의 힘과 올바른 크기가 얼마나 크냐? 가 그 사람의 영광의 핵심이 되는 것이죠.
또 한 가지 의미는 이 영광이라는 것은 시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외적인 장점들을 가리키는 것이죠. 그러니까 시인이 어떤 권세를 가지고 있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어떤 효과나 무엇을 가지고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이 전부 다 깨어서 그래서 하나님을 알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찬송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고의 시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하나님을 향한 감격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Ⅱ.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시인이 ‘비파야 깰지어다. 수금아 깰지어다.’ 이렇게 노래하는 것은 마치 이 비파나 수금이 영혼을 가지고 자기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그 일에 참여하는 주체인 것처럼 그렇게 비파와 수금을 향해서 의인법적인 대화를 나누는 광경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찬송의 주체는 자신의 영혼이지만 자신의 육체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하나님을 향한 찬송에 참여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비파와 수금으로 일컬어지는 모든 악기들이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 일에 참여하게 되기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시인이 고난과 시련 속에 많이 있다가 하나님이 거기에서 자기를 건져주셨을 때에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알 때 시인의 마음속에서 생겨났던 현상인 것이에요. 이런 깊은 감격과 하나님을 향한 강력한 찬송이 이 시인의 마음속에서 어우러지게 되었고 솟구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Ⅲ.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라고 말합니다. 새벽이 잠을 자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이 새벽을 깨운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이런 뜻이죠. 새벽은 고요한 시간의 대명사입니다. 밤은 모든 사람들이 휴식과 그리고 안식을 취하느라고 고요한 시간이지만 이 새벽의 시간은 일하여야할 시간과 그리고 쉬고 있는 시간이 겹치는 시간이지요. 쉼과 안식, 죽음으로 상징되는 밤이 끝나고 생명과 노동, 그리고 활기로 대변되는 하루의 아침이 시작되는 그 겹치는 시간이에요. 그 새벽을 하나님 앞에 깨우겠다는 의미는 무슨 뜻이냐 하면 일차적으로는 이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감격을 그칠 수 없는 상태, 그래서 새벽이 밝기를 기다리면서 하나님 앞에 그것을 쏟아놓듯이 터치는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침에 만나게 될 모든 만물들을 향하여 시인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는 것을 선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이 새벽인 것도 아주 놀라운 수사법적인 시간의 묘사입니다.
그래서 지나간 어두운 밤은 시인이 원수들에게 걸음을 장애받고 그물이 준비되어 영혼이 억눌린 것 같은 상태에 있었던 그 시간들을 상징한다면 이 새벽은 지난 어두운 밤이 모두 끝나고 이제는 새로운 날이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날을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악한 자들은 웅덩이를 팠으나 스스로 빠지고 또 그들이 스스로 미끄러졌기 때문입니다.
Ⅳ. 영광의 찬송
이렇게 새로운 시작의 날을 맞이하면서 시인이 하나님 앞에 비파와 수금으로 온 마음과 영혼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육체의 모든 영광을 영혼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하나님께 노래하고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죠. 신자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은 정확히 자기 자신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만큼만 살 수 있는 것이에요. 그것은 아주 명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이 경험된 그것만큼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는 것이죠. 이 시인은 마음속에 오히려 고난과 시련을 통해 가득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이제 자기 혼자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아침의 햇살과 함께 마주하게 되는, 어두움이 물러나고 드러나게 되는 모든 이 세상을 향해서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질서가 생겨나도록 이 새벽을 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무기력한 신앙생활이 보편화되는 때에는 우리에게는 이런 신앙의 감격과 그리고 바깥세계를 향해 터져 나오는 이런 신앙의 기쁨들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힘을 가진 내적 소명입니다. 그 소명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계에 가득하고 자기를 비롯한 모든 이웃과 만물이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는 그러한 세상입니다. 이 안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영광을 받으시는지를 다음 절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