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창에 미친 하나님의 영광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시 57:9∼10).
Ⅰ. 주께 감사하오며
아마도 이 부분은 시인이 환란과 시련을 당한 바로 그 때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 사실을 회상하는 가운데 이러한 신앙의 감격이 넘치는 것을 기록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한다고 했는데 이게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존재가 누구인지를 알고 자기가 하나님과 언약관계 안에서 돌봄을 받는 것을 인하여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원수들로부터 자기를 건져주시는 그 모든 기이한 은혜가 사실은 하나님과 맺은 이스라엘의 그 언약관계 안에서 충실하게 당신의 할 일을 행하시는 그 하나님의 돌보심 때문에 받는 그 은총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 감사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가장 훌륭한 기도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의식들이 그 감사에 맞추어서 움직이는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이 감사는 어느 곳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일종으로 또 어느 곳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찬송으로 불립니다. 그만큼 이 감사는 우리 자신을 움직이는 커다란 힘이고 또 정신의 작용이에요.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움직이는 큰 힘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하나님 앞에 늘 드리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찬송과 감사, 이것이 바로 언약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드려야할 최고의 제사지요.
Ⅱ. 주를 찬송합니다.
그러면서 ‘주를 찬송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의 대구법인데 만민 중에서 감사하고 열방 중에서 찬송한다고 했으니 만민과 열방이 짝을 이루고 감사과 찬송이 짝을 이루는 것이죠. 같은 의미의 반복이지요.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면 이 모든 사람들의 대표로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것은 시인이 모든 열방과 만민이 하나님께 마땅히 어떤 태도를 가져야 되는지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죠.
Ⅲ. 하나님의 속성
그러면서 시인은 하나님의 속성을 노래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여기에 진리라는 말이 나오는데 히브리어로 ‘엠에트’라는 말인데 진리라고 번역을 해도 좋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진리보다는 신실하심, faithfulness이에요. 이게 ‘엠에트’라는 명사가 사실은 ‘아망’이라는 단어에서 나옵니다. 거기서 여러분들이 잘 아는 단어 ‘아멘’이 나오는 것이에요. 그래서 또 모세가 ‘내가 그들의 유모입니까?’ 라는 그 단어가 또 거기에서 나와요.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연약하고 힘이 없는 것을 굳세게 하다.’라고 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엠에트’라는 명사는 가장 좋은 번역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신실하심은 궁창에 이르나이다.’ 라고 번역하면 가장 좋은 번역입니다.
이 시인은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신실하심은 궁창에 이르나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사용된 궁창이라는 단어는 원래 영어의 sky에요. 푸른 하늘이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이렇게 하늘을 쳐다보면 파란 하늘이 보이죠. 그것을 이 히브리사람들이 궁창, ‘라키아’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이제 ‘하늘에 미친다.’ 이것은 ‘솨마인’인데 우주를 가리켜요. 그런데 이 하늘은 우주를 가리키기도 하고 그 다음에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그 하늘나라를 가리키기도 하지요.
1. 인자와 신실하심
그러니까 결국 이 묘사는 뭐냐 하면 하늘과 온 우주의 가득한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게 뭐냐 하면 인자와 신실하심 두 가지에요. 자, 이게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시인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푸신 그 호의와 구원의 기초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이 신실하심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관계에 충실하신 하나님의 모습에 대한 노래에요, 찬송이에요. 그러니까 그 신실하심이 궁창에까지 가득 미치는 것이죠.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존재가 영이시고 무한하시고 완전하시고 불변하시고 단순하신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하나님을 알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의 속성과 속성이 시행되는 방식에 대해서 알 때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말의 의미인 것입니다.
시인이 이렇게 감격적으로 하늘에까지 가득한 하나님의 인자하심, 그리고 궁창에까지 가득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하는 것은 정말 하늘을 보아서 그것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속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속성을 가지신분인가 하는 사실을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첫 번째 무대는 자기 자신의 마음속이에요. 이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은 우주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어요. 중세의 사람들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개혁자들은 그렇게 믿지 않았어요.
2. 하나님을 알게 하심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계셔서 당신의 속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만 우리 자신 안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에 대한 발견도 우리 자신의 마음으로써만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우리의 지성 속에 비췰 때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행하시는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성경의 증언을 통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줄 때 그 때 우리는 진리와 성령의 도움으로써 비로소 거기에 하나님이 나타내 보여주시는 속성, 그리고 그 속성이 시행되는 방식을 알게 되는 것이죠. 그것을 깊이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먼저 우리의 인생, 그리고 인간들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계셔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고 계신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다시 상승하는 지식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를 바라보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들을 보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방법이에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가장 잘 보여주신 분이신데 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아는 방법이 상승의 방법과 하강의 방법이 있어요. 상승의 방법은 인간에게서 시작해서 인간으로 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자면 여러 가지 이유로 하나님화 하는 것이에요. 이것은 올바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앎, 삼위 하나님에 대한 앎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죠.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을 보여주시지만 이것은 상승의 방법이 아닌 하강의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삼위 하나님이셨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시는 그 모든 방법에 의해서 그래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셨다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똑같이 우리의 인식도 먼저 그분을 시인함으로 믿고 받아들이게 될 때 그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예수 그리스도가,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신앙으로부터 더듬어 내려오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하강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얼마든지 우리들이 우리 안에 이미 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인해서 이 창조된 모든 세계 안에 하나님이 당신의 흔적을 새겨놓으신 것을 발견하면서 감격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우리의 참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생활인 것이에요.
시인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한 때는 곤고하고 고난을 받았지만 지금은 그 하나님의 인자가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가 궁창에 가득한 것을 인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양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장 훌륭한 신앙은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 있는 그대로 계시는 하나님 그 자체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신앙이에요. 그래서 돌아와야 할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돌아가야 할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찬송하는 것, 이것이 신앙의 본질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