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고한 자의 독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 도다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곧 술사가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행할지라도 그 소리를 듣지 아니하는 독사로다”(시 58:3∼5).
이 다윗은 개혁주의 신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전적 타락에 대해서 이미 사도 바울이 그 교리를 설파하기 훨씬 전에 터득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약 1000년 전이겠지요? 다윗이 주전 10세기 때의 사람이니까……. ) 그래서 이 시편의 대부분을 다윗이 지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커다란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위대한 철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또 자기 자신을 통해서 이 세상의 인간들을 깊이 꿰뚫어 볼 수 있는 그런 신학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이 이러한 교리를 깨닫는데 있어서 유대인으로서 익숙하게 알고 있었던 이 시편에 관한 지식이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 공교롭게도 이 신학의 역사를 보면 종교개혁 1세대들과 2세대, 3세대들을 포함해서 이 시편에 대한 주석들을 많이 씁니다. 이 시편이 그러한 개혁주의 신학의 모태가 되는 아주 근본적인 담론들 즉 인간이란 누구인가?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또 세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죄란 무엇인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아주 풍부하게 보여주는 그런 구약의 책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다윗은 우리가 오늘 읽은 성경본문 첫 절에서 우선 ‘악인이 모태로부터 멀어졌다,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한다.’ 모태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은 모태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언약 백성들이 그렇게 강포를 행하고 악을 행하는 그것이 자신들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본성에 속한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시인이 여기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언약 관계를 파기하고 악과 강포를 행하는 그것이 결국은 본질적으로는 천성적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 부모의 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대해서도 그렇게 말합니다.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으며, 그래서 얼마나 그 죄와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면서부터 곁길로 가고 거짓을 행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시고 인간에게 가라고 지시하신 아주 분명하고 명백한 길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빠져나와서 곁길로 가는 그것은 이 사람 다윗이 보기에는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언약 백성들은 하나님과 특별히 언약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조차도 하나님을 거스르고 주님을 대적하고 본성의 악을 따라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이죠. 그런 자연스러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했던 것이죠. 그 때에도 그런 초자연적인 은혜가 필요한 것이죠. 원래 이 자연이라는 말은 우리 몸 밖에 있으면 산이나 강이나 물, 들, 이렇게 인간에 의해서 가공되지 않고 원래 그대로 존재하는 세계를 자연이라고 부르지만 이 자연이라는 말이 만약에 인간과 관련지어서 이야기 된다면 그것은 인간의 있는 그대로의 본성을 가리키는 것이에요. 그리고 인간의 있는 그대로의 본성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악을 행하며 살아가게 되어있는 것이죠. 그 근원이 결국은 자기를 주인 삼은 삶이에요. 자기를 주인 삼으며 살아가는 그 생활 속에서 자기는 그렇게 끊임없는 악을 행하며 불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그러니까 죄인의 본성과 관련해서만 본다면 하나님과 언약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으신 그 언약관계, 그게 결국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은혜의 언약관계거든요. 그 은혜언약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이 그 언약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할 수 있는 자연적인 내적힘이 그들에게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두 가지를 약속하시는 것이에요. 그게 뭐냐 하면 죄에 대한 끊임없는 용서와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언약관계에 충실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은혜를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바르게 하지 못했을 때는 용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바르게 한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없을 때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시기로 약속하시는데 이 모든 것들이 다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것이에요. 그러니까 신앙에 있어서 경건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 초자연성을 아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경건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그들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곁길로 가고 그리고 거짓을 말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그들에게는 진리가 없는 것이에요. 그 모습이 어떤 모습과 같으냐하면 뱀과 같다는 것이죠. 그래서 뱀이 그 자신 안에 독을 간직하잖아요? 그래서 뱀이 사람이나 짐승을 물면 무는 즉시 독사는 그 이빨에 아주 미세한 구멍이 나있어요. 그래서 꽉 물체를 무는 순간 그 속에서 독이 주사바늘을 통해서 몸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 독이 주입되는 것이에요. 반사작용에 의해서 마치 우리가 신 사과를 먹으면 침이 확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꽉 물면 이빨을 통해서 독이 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에요. 독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죠. 최근에는 과학자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어떤 뱀은 음파를 발생한답니다. 그래서 물고기가 아주 좋아하는 그런 음파를 발사해서 그 물고기로 하여금 도망을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오게끔 그래서 꽉 물어 포획을 하는 것이죠. 아주 동물의 세계는 아주 신비해요. 하나님의 어떤 지혜와 이런 계획을 아주 열심히 보여주는 그런 세계죠.
그러면서 이게 4절, 5절에 나오는 문맥이 뭐냐 하면 당시에도 이렇게 뱀을 가지고 그렇게 길들여서 그래서 뱀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아라비아의 문물을 보면 코브라나 뱀을 놓고 피리를 분다든지 하면 그 소리를 들으면서 뱀이 따라 올라오고 춤도 추고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것을 얘기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그런 방수를 악기나 피리나 소리나 어떤 등등으로 행할 때에 뱀은 거기에 맞춰서 춤을 춰야 되잖아요? 그런데 어떤 뱀들은 전혀 그런 훈련이 안되고 너는 피리를 불던지 장구를 치던지 나는 나대로 간다는 그러는 뱀이 있잖아요? 전혀 훈련되지 않은 그런 뱀 말이에요. 그래서 뱀이 그러는 것처럼 결국은 아무리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옳은 것을 행하고 어떻게 하라고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셔도 전혀 미동도 안 하고 그렇게 흔들리면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유한 것이죠. 그러니까 독하고 악을 품고 있으면서도 결국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주인삼고 살아가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망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이 모습이 어떻게 보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이렇게 인간이 뱀의 독과 같은 그런 하나님을 향한 미움, 그리고 하나님을 대항하려는 본성을 깊숙이 간직한 채 무엇에 의해서도 통제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경건한 신앙생활은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절망하는 데에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이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