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날에 피할 곳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셀라)”(시 61:4).
자신의 인생에 닥치는 모든 불행과 커다란 시련들을 우리는 전쟁에 비유하면서 주님은 나의 피난처이시고 또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십니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부지중에 사람을 살인한 사람이 피난처를 향해 도망치는 사람이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전쟁에서 적의 치열한 공격을 피하여 산으로 피하는 마음이나 뭐 별반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 가운데에 이 시인의 고백이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환난을 피하고 시련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서 오늘 얘기하는 거예요. 그에 대해서 두 가지로 고백하기를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로다’ 병행법이예요. ‘주의 장막’은 ‘주의 날개’와 같고 ‘거하며’ 라는 하는 것은 ‘피하며’ 와 짝을 이루며 병행법으로 이루어지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주의 장막에 거하며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로다 이것이 환란날에 시인이 도망치고 자기를 보호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러면 주의 장막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연히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이동식 성전이에요. 다윗 때는 이미 가나안에 들어와 정착을 한지 상당히 시간이 지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막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움직일 수 없도록 땅에 고정된 성전을 지은 것은 솔로몬 때란 말이죠.
다윗의 때에도 광야시대에 성막과 같은 것들을 성전으로 삼아서 거기서 희생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섬겼단 말이죠. 그게 전쟁에서 사람을 보호해 줄 수가 있겠어요. 피하려면 커다란 성벽이 있고 강력한 군대들이 있고 대문이 있는 그런 곳에서 피할 수 있는 것이지 마차나 말을 몰고 돌격을 하면 천으로 두른 울타리인데, 성소와 지성소라 그래 봐야 18평정도 되는 물 돼지 가죽으로 덮개를 씌우고 천으로 싸서 짜서 둘른건데 단번에 부서버릴수 있는 것 아니예요. 그 장막에 거하며 그게 어떻게 환란 날에 피하는 방법이 되겠느냐 이런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 환란 날에 큰 고통을 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전쟁의 날에 칼과 칼이 맞부딪히고 말할 수 없이 무서운 상황이 벌어져도 주의 장막에 거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하나의 비유이지요 은유지요. 그래서 그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서 그분의 사랑 안에서 살아간다는 그런 뜻 아니겠어요? 그래서 시인이 병행 구에서 얘기하기를 주의 날개 밑에 피할 것입니다. 이 날개 밑에 피한다는 것은 닭이나 다른 새들이 자기 새끼들을 보호하는 방법에서 오는 거죠. 닭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새들이 자기 둥지에서 알을 품고 새끼를 보호하는 방법이 날개 그늘 밑에 두는 거예요. 그래서 밖에서 보면서 그 날개 속에 새끼들이 숨어있다는 것이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거죠. 오래된 얘기지만, 초등학교 다닐 때 시골에 있는 친척집에 가면 시골에는 솔개가 자주 뜹니다. 빙빙 돌면서 들쥐나 뭐라도 없나 하고 찾고 있습니다. 어미 닭이 소리를 지르며 비상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면 여기 저기서 풀을 뜯던 노란 조그만 병아리들이 그 신호를 알아듣고, 어미 품으로 옵니다. 놀라운 것이 어린 마음에, 어떻게 저 많은 병아리가 날개 속으로 다 들어갈까? 다 들어갑니다. 20마리 정도 다 품고, 보이지 않게 날개로 완벽하게 싸고 그리고는 고개를 들고 소리소리를 지릅니다. 사실은 자기도 채가면은 채임을 당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게 어미의 하나의 본능이 되는 거죠. 그런걸 가르치는 거죠. 그래서 그 새를 해치지 않고는 새끼들을 건드릴 수가 없고 눈에 띄지 않도록 날개 밑에 완벽하게 감추어지는 것. 그것이 여기에서 비유로 나오는 거예요. 물론 전쟁이 나고 환란이 나면 도망을 가야죠.
칼에 칼을 맞부딪히면서 싸워야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은 모든 승리, 이기는 모든 것들이 거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을 하는 거죠.
오히려 신앙의 참된 본질은 바로 그런 환란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당신의 날개아래 부르시는 것이죠. 그래서 저 좋은 대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환란을 당할 때에는 주님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새끼들이 어미의 날개 그늘아래 파고 드는 것처럼 주님의 품으로 들어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언제나 형통한 날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피할 수 있는, 피해야만 하는 날들을 주시는 거죠. 그래서 당신 앞으로 돌아와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렇게 고백을 한 겁니다. 전쟁이 일어난 거 같은 큰 환란,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심한 환란 속에서 주님의 사랑과 보호를 입으면서 아버지 앞에 살아가는 은혜의 비밀들. 그리고 신앙의 깊은 비밀들을 터득을 한 겁니다. 그러면서 그 놀라운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품으로 파고들어 그분께 쉼을 얻는 그래서 그분과의 관계를 다시 새롭게 하는 기회로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고난이 오고 시련이 오고, 혹은 큰 고난이나 시련은 아니더라도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이 있을 때 그것을 섭리 속에서 하나님이 완고하고 주님 없이 살려고 하는 우리를 당신에게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안에서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