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당할 때 자신을 돌아봄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나의 죄가 주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시 69:4-5)
이 내용은 그렇게 고난을 당하게 되었을 때 시인을 에워싸고 있는 수많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자기를 아주 미워하는 거죠.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악함 때문에 미워하는 거죠.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복음을 전하거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에 불신자들이 미워한다고 칩시다. 거기에는 어떤 이해 관계가 엃혔을 수 도 있지마는 대부분 그런 것 없이 미워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 거죠. 그것은 무엇 때문이죠. 시편에서 악인이라고 하는 정체가 뭐냐 하며는뇨.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적극적으로 그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속에 두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면 사람이 마음속에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마음에 두려고 하지 않으면, 그 마음 속에는 누가 있겠어요. 그러니깐 결국은 자기거든요. 그러면 자기 중심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 중심적인 사상이나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서 강한 저항을 느끼는건 틀림이 없잖아요. 그것이 싫은 거죠.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대적하고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악을 행하고 도전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결국 알고 보며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또,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함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거에요. 그게 시편에서 이야기 하는 악인의 정체에요. 악인이 항상 악을 행하는 것은 아니에요. 근본적으로 그 마음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소극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은 제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악인이에요. 그러니까, 그들이 자신의 이익이나 사상과, 하나님 중심적인 사상이 만날 때 에는 그냥 만나는 대로 살고 그리고 만나지 않을 때에는 강하게 도전하면서 살아가는 거에요. 그러니깐, 하나님에 대한 미움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한 미움이고 그거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도전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 뿐만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모든 것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미워하게 되면,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 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미움이 함께 들오는 거에요. 믿음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라틴어로 크레데레데움 하나님을 믿는거야, 크레데레데오 하며는 하나님 때문에 믿는 거죠. 나는 잘 믿어지지 않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그것들을 믿을 수 있는 거에요. 그것이 바로 믿음이에요. 믿음이든지, 사랑이든지, 미움이든지, 다 똑 같은 원리에서 의해서 일어나는 거죠. 그렇게 되니깐, 악인들의 입장에서 보며는 하나님을 향한 미움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그렇게 본성적인 미움이 존재하는 거죠. 그런대 문제는 아무리 그런 사람들이 있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이 그들보다 훨씬 우월할 때에는 그게 고난이 될 수가 없는 거죠. 그렇지 않겠어요. 예를 들자며는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상전이 있는데, 근데, 그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고 거기에 종이 있는데, 아주 비천한 말제 종이 있는데, 그녀석이 하나님을 안믿고 미워한다. 실제적으로 고난을 줄 수가 있겠어요.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의 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거에요. 그 질서를 흐트러 트릴려며는 힘이 있이어야 되요. 힘이 없어요. 몰라요. 불연 듯 죽을 각오를 하며는 가족 중 한사람을 칼로 찌를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마는, 어쨌든 힘이 없는 거죠. 권력이 없는 거죠. 그러나 그래서 인제 이러한 커다란 고난은 대부분 환경의 어려움을 동반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인제 시편에서는 영혼의 곤란한 형편, 신앙의 곤란한 형편을 이야기 할 때, 영혼의 깊음과 환경의 깊음을 함께 이야기 해요. 그래서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곤고하고 환경적으로도 어려움이 오는 거에요. 환경적으로 어려움이 온다는 것이 무슨 뜻 이에요. 결국은 자신이 환경을 장악 할 수 있는 권력을 잃어 버리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원치 아니하는 질서 속으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혹은 주변의 다른 환경들에 의해서 이끌려 들어가게 되는 거에요. 그것이 바로 다름이 아닌 고통을 받는 상황이다 이런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인이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죠.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머리털 보다도 많습니다. 무리하게 내 원수가 되어서 나를 끊어 버리려고 하는 자가, 끊는 다는 것은 시편에서 무슨 뜻이냐며는 한사람이 이렇게 목숨을 쭉 이어가잖아요. 자식을 낳는 것을 하나의 목숨에 쭉 이어 진다고 보는 거에요. 그리고 그것이 말하자며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이라고 본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시판하실 때에는 대를 끊어 버리리라 그런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 나오는 거에요. 그걸 끊어 버리려고 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끊어짐을 당하는 것은 곧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어지는 자신의 가문과 혈통의 끊어짐을 의미하거든요. 그렇게 까지 될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데, ,내가 취한 것도 아닌데도 물어주게 되었습니다. 근데, 모든 힘을 상실해 버린 상태를 의미하는 거죠. 포갑적인 체무자들이 돈을 백만원 밖에 안빌려 줬는데, 워낙 힘이 없으니깐 포갑적으로 위협을 가하면서, 이백원을 빌렸다고 쓰라고 하는 거하고 똑같은 거죠. 그렇게 취하지 않은 것도 물어줄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니깐, 지신의 힘으로서는 그 모든 것들에 항거해도 그걸 계산 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없는 거에요.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도 이런 상황을 맞이 했던 것이죠. 이때에 우리의 질문은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공평하신 하나님은 내가 이렇게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에 그렇다면 그분은 어디에 계신가, 그런 한탄을 하게 되지 않아요. 그때에 이시인이 반성을 하는 거에요. 그게 뭐냐하면,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내 죄는 주님앞에 숨김이 없나이다. 그러니깐, 외적으로는 자기가 일방적으로 고난을 당하지만, 고난을 당할 때에 이시인은 나는 지금 기억에 나지 않지만는 지금, 혹은 그 옛날 어느 적엔가, 주님앞에서 악을 행하고 내 마음에 은밀히 숨겨진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정결케 하시려고 혹은 나에게 보응하시려고 그 두가지는 대게 아주 조와를 이루면서 우리에게 다가 오잖아요! 공평하신 하나님이 죄를 통해서 나를 단련하시고 그래서 나를 바꾸시려고 이렇게 나를 다루시나보다. 라고 하는 그런 깊은 고난, 그런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감당하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해서 시인이 깊이 고난을 당하면서 그러면서, 오히려 그 고난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삼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바로 잡으시는 그 계기로 삼으시는 거에요. 그래서 늘 말씀드리지만, 그리스도인들이 당하게 되는 이 고난을 성경 여러 곳에서 징계로 말하지마는, 근데, 그 징계라고 하는 성격 자체가 과거에 일어나는 어떤 일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적인 잘못된 해석이에요. 그러가기 보다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섬리 속에서 그래서 이제 우리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 물론 징계하시죠. 징계하는 데, 그 징계하실 때에는 그 징계의 의도가 우리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이 입으신 손해와 마음의 고통을 풀어 내시는 방식의 그 징계가 아니라는 거죠. 만약에 그런게 하나님에게 있다고 한다며는 그러면 유안한 인간과 하나님이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어요. 그래서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이 형식으로 볼 때에는 다윗이 지은 어떤 죄 때문에 하나님이 징계를 하시지만, 그러나 사람이 보기엔 그것이 징계와 같아도 하나님은 그런 징계의 때를 징계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섬리하셔서 그래서 이 사람으로 하여금 고난이 아니면 쉽지 않은 자기 돌아봄.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그런 시간들을 갖도록 도와 주시는 거에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시인에게 배푸셨던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이렇게 자기의 언약 배성들을 복주실 때 뿐만 아니라 때리실 때에도 하나님을 아는 기회로 삼아 주시고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면서 그러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존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거죠. 생각해 보십시오. 뒤편에도 나옵니다마는 만약에 이러한 고난 속에서 자신을 돌아 보았는데, 그런데 주님의 도움으로 자신의 어떤 죄를 알게 되었다고 칩시다. 예전에 지은 죄를 알게 되었다고 칩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근원적으로 파들어 가면 예전에 지은 죄는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는 거에요. 대부분의 경우에 예전에 내가 거짓말을 했다. 그 이후로는 거짓말을 안했을이지 모르지마는, 거짓말을 하고자하는 그 죄의 성향은 남아 있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자기의 내면을 살피도록 시인을 인도하시는 거죠. 그렇게 해놓고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회개하고 뉘우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거죠. 그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살피도록 만들어 주실 때에, 자신에게 그런 죄를 발견한다고 칩시다.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해결할 길이 있습니까? 두가지잖아요. 하나님이 그를 용서 주는 것과, 그런 잔존하는 죄를 없애 주시는 것인데, 아무것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없는 거에요. 그때에 인간은 더욱 처절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보며는요. 우리들이 죽을 위기에 놓여있게 되면, 하나님을 의지하잖아요. 무슨 말씀이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 일반 섬리의 복과 영적인 복이 있다 이렇게 말씀드렸잖아요. 똑같이 우리들이 부딪치는 문제도 일반 섬리의 문제가 있고 영적인 문제가 있어요.. 우리가 죽을 위기에 놓여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심정적으로 하나님아니면 도와 줄 사람이 없잖아요.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죠. 그렇게 매달리는 그것과, 죄인이 자신안에서 이런 죄를 발견하고,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앞에 자신의 죄를 고쳐 달라고 매달리는 그것이 사실은 같은 것처럼 보이지마는 그러나 사실은 후자가 훨씬더, 그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거죠. 왜냐하며는 환경적인 어려움속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할 때는 단순한 능력의 문제고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되는 문제지마는 그러나 자기 자신의 영혼을 인하여 하나님앞에 절망할 때에는 이거는 더 큰 복음 적인 은총을 필요로 하는 거에요. 그것이 뭐냐하며는 하나님의 용서와 그다음에 은혜죠. 그것을 필요로 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것이 부어졌을 때, 그것은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가 없는 것이요. 기도하면서도 어떤일들이 잘 이루어 졌을 때 그것이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신앙적인 감격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 거죠. 그러니깐, 사실 하나님을 어떻게든지,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하시고, 거기서 하나님을 찾도록 만들어 주시는 거죠.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며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이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