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수렁에서 찾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내 목이 마르며 내 하나님을 바람으로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시 69:1-3)
탄원시입니다. 언제 이것을 썼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다윗의 시입니다. 여기에 보며는 영장으로 소산으로 맞춘 노래 원래 소산님이라는 것은 백합화라는 곡조를 가리키는 거죠. 그래서 우리 말로 하자며는 이런거죠. 무슨 노래를 지어 놓고 가사를 만들어 놓고 이가사를 찬송가 211장에 맞춰서 부르시오. 그런거죠. 이 백합화 곡조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당시에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가락 이었어요. 그 가락에다게 이 시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른다, 여기서 영장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성가대의 악장같은 그런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그사람을 시켜서 소산이란 곡조에 맞춰서 불려지던 시편이다 그런 뜻이에요. 여기에 보며는 제일먼저 시인이 위기를 호소합니다.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물들이 내영혼까지 흘러 들어 왔습니다. 여기 영혼이라고 번역된 이말이 사실은 레페쉬라는 히브리 단어에요. 그 단어의 원래 뜻은 영혼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말이 아주 다양하게 번역이 되요. 구약에서, 영혼이라는 뜻으로도 번역이 되고,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번역이 되고, 정신이라는 뜻으로도 번역이 되고 다양하게 번역이 되요. 그래서 인제 이것은 영혼까지 물이 어떻게 흘러 들어올 수 있겠어요. 그죠. 그리고 레페쉬라는 말이 목숨이라는 뜻으로도 사용이 되요. 여기서 레페쉬라는 이 단어가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직역을 한거고 이말이 의미하는 것은 목구멍이라 이렇게 해석을 해요. 그래서 물들이 넘쳐 들어 왔는데, 목구멍까지 물이 들어 왔습니다. 무슨 뜻이냐며는 사람이 물에 빠져서 그래서 물에서 해어날 수 없이 허우적 대다가 죽는 장면이 결국 그 물을 마시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 물이 기도를 막고 물을 먹다가, 익사하는 것은 물을 많이 먹고 익사를 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도저히 기력이 없어서 물에 빠지는 건데, 그 직전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물들이 내 목구멍까지 흘러 들어 왔습니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이 물에서 해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살곳이 없는 깊은 수렁이라고 했는데, 그런거 아니에요. 물에 빠졌어요. 깊은곳이 있고, 얕은 곳이 있고 해서, 한군데라도 발이 닿는 데가 있으면, 그럼 목숨은 부제 할 수가 있지 않겠어요. 거기 버티고 서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면, 구조해 주는 사람이라도 나타 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잖아요. 숨을 쉴 수 있으니깐, 그런데 그런곳이 없는 게요. 그래서 사람들이 대게 물에 빠져 죽는 것이 그래서 바닥이 평평하고 고른곳에서는 익사사고가 많이 안나요. 그래서 해안가나 아니며는 강같은데도 보며는 평평하게 바닥이 계속되다가 확 꺼져서 수렁 같은 것이 나타나 날 때, 거기에서 사람들이 깊이를 모르다가 놀다가 익사를 하게 됩니다. 그런 광경을 여기에서 묘사를 하고 있는 거죠. 어느 곳에도 설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그래서 어떻게 멈추어 서자니 디딪곳이 없고 헤엄을 치자니, 기력이 없는 그런 상태를 가리키는 거죠.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물이 내게 넘치 나이다. 그러면서 더 깊은 대로 빠져 들어가니깐 물결이 칠 것 아니에요. 그렇게 물결이 칠때에 자기잣신은 더 깊은 곳으로 빠져 가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에요. 이것이 다윗이 경험한 인생의 어떤 난관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의 끊임없는 수렁에 빠지는 인생의 위기 였어요.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도 언제나 찾아 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해어나오려고 몸부림 쳐도, 더 깊이 빠져들어가는 그런 수렁과 같은 인생의 상황을 맞이 할 수 있는 거죠. 대게 늪이나 수렁같은 곳에 빠직게 되며는 사람들이 헤어나오려고 막 몸부림을 치잖아요. 그러며는 진흙사이에서 자신의 몸이 공간을 만들어요. 몸부림을 치니깐, 공간을 만드니깐, 몸이 더 빨리 빠져서 내려가요. 도져히 어떻게 가눌 수없을 정도로 깊이 빠져서 내려가요, 그러니까 그렇게 설 곳이 없는 수렁에 계속 빠져 갈 때, 그때에 몸부림 치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수렁속으로 자기를 데려가요. 그리서 1,2절 뭘 보여 주냐면,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인생의 위기를 만났는데,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그런 시련과 고난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에요. 그 속에서 이시인이 깊이 몸부림 치다가 마지막 3절을 선택하게 됩니다. 내가 부르 짖음으로 피곤하고 내 목이 마릅니다. 거기에서 이 시인이 한 것은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 부르 짖는 것이였어요. 성경에 나오는 이 기록 가운데 기도의 여러 형태가 나오지마는 그 중에 하나가 부르 짖는 기도는 내적으로 부르짖는 자의 마음속에있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과 자신의 처한 상화의 위기성,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의 표현, 이 두가지를 함께 보여주는 것이 부르짖는 기도에요. 그러서 이사람이 그렇게 간절히 부르 짖었는데 그것이 순십간에 응답되어진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간절히 부르 짖었는데, 그래서 결국은 매우 피곤하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자신의 목이 매우 마르게 되었는데, 아리러니 하잖아요. 물속에 빠졌는데, 목이 마르다고 하니까. 하나의 문학적인 모순법이죠. 그러니까 아주 좋은 대조를 보여주는 것이요. 그렇게 물에 빠진 그것도 물이고 목말라서 먹고싶은 그것도 물인데, 물의종류가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것이에요. 우리들이 이세상에서 살아가지만, 그러나 세상으로 충분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거이 아니고, 세상이 충분하면 우리가 믿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니가 마치 바다에 배를 띄우고 항해를 하는 사람들이 목이말라하는 것과 똑같잖아요. 물천지인데, 근데 그걸 먹을 수가 없잖아요. 또다른 물이 필요하잖아요. 오히려 그 물은 우리에게 도움을 줄때도 있지만는 그 물이 흔들리고 파도가 치며는 항해를 위기로 몰아넣어요. 그래서 그 물 가지고 안되고 또 다른 물이 필요해요. 또 다른 종류의 물이 필요해요. 그물이 어떤 물이겠어요. 내목이 마릅니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앞에 간절히 부르 짖었기 때문에, 목이 마르다는 의미도 육체적으로 가능하겠지마는 성경에서 표현하는 이 물은 신령한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의 생명이에요. 그래서 그 내가 주를 찾기에 목마릅니다. 라고하는 거는 시편41편 같은 데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목마릅니다. 라고 하는 그런 시같은 경우 그런 것들은 결국 무얼 보여 주냐면는 하난님을 향한 갈망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것은 하나님을 만남으로서 채워지는 거에요. 그것이 목마른 자의 물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욕망가운데 대치 할 수 있는 욕망이 있고 대치 할 수 없는 욕망이 있어요. 대치할 수 있는 욕망은 배고프다 그러면 배고픈데 빵이 먹고 싶다 밥을 먹은들 문제가 있겠어요. 근데, 목마른건 대체가 안되요. 목마른데, 물은 줄수 없고 좋은 영화 한편 보여 줄태니깐, 위로를 삼아라. 위로가 안되죠. 그런것들이 대체할 수 없는 욕망이에요.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죠. 전세계에서 물하고 전기를 펑펑 쓰는 나라가 아무데도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낭비하는 거에요. 전기불만 보며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내가 끄는데, 근데 그게 뭐냐며는 물을 그렇게 마구 쓰는 나라가 우리나라 밖에 없어요. 물이 너무 흔해서 그러는거죠. 신문에도 가끔 광고가 나요. 예를 들면 휘발류가 없으면 전기로 대체하고 빵이 없으면, 쌀을 먹고, 소고기가 없으면, 닭고기를 먹고 물이없으면, 안되죠. 물은 뭘 바꿔서 대체할 수가 없는 거에요. 물이외엔 필요없는 거에요. 여기에서도 이시인이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표현하는 거에요. 간절히, 그래서 다른 것들은 대체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대체할 수가 없어요. 신앙은 다른 무엇으로 내 영혼에 체워지지 않는 갈증은 다른 무엇으로 보충되어질 수가 없는 거에요. 그러면서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내목이 마르며, 내 하나님을 바람으로서 내 눈이 쇠하여 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앙망하는 거죠. 왜! 주님께로부터 오는 도움을 기대하면서 하나님을 앙망하는 거에요. 그것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눈이 쇠하였나이다. 그러니깐 이기간이 상당한 시간이 흘러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종종 우리의 인생에 어려움이 생기고 고난이 생길 때, 하나님이 우리를 단번에 건져 주시기도 하지만, 거기서 묵은 찢거기를 모두 털어내고 정말 자기 스스로 하나님아니것을 선택한 그 결과를 깊이 뉘우치면서 돌이켜 서기를 하나님앞에 매달리면서 선택하게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결국은 자신이 그릇되게 선택한 그 결과가 얼마나 아픈 것인지를 충분히 경험하고 난 다음에 주님 품으로 돌아오도록 만들어 주시는 거죠. 그때까지 하나님은 간절히 주님을 찾는 마음이 되도록 우리를 기다리시는 거죠. 그래서 주님께 돌아가려는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을 때 까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이뤄어 가시는 거죠. 이것이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표현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