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과 깊은 물에 빠질 때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시편 69:14)
자신안에서 일어나는 잘못들 있잖아요. 욕망이라든지, 정욕이라든지, 죄라든지, 아니며는 낙심하는 마음이라든지, 절망감이라든지, 이런것들은 수렁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빠져들어가게 만드는 거죠. 어제도 잠깐 어느 신문에 보니깐, 도박을 좋아하는 죄의 모양과 게임을 좋아하는 그것이 이상 증상이 똑같다는 거죠. 그래서 뇌의 변형이 일어나는 거에요. 그렇게 자기도 어찌 할 수 없이 중독된 것처럼 빠져 들어 가는 거죠. 이런 것들은 사실은 환경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이거든요. 뭘 생각하든지 계속 부정적으로 생각하게되고 결국은 죄절하게 되고, 그다음에는 비참한 마음을 갖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드는 그런 것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은 밖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서 계속 일어나는 거거든요. 이런 것들은 수렁과 같이 깊이 사람을 빠져들게 만들어서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저항 할 수 없게 만드는 거죠. 그러니깐 인제 우리는 쉽게 경험해 보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이제 상상 할 수는 있잖아요. 진흙 같은 걸로 만들어진 그런 구덩이 같은데 빠질 때, 계속 자신의 몸이 무게에 의해서 밑으로 빠져 내려 가잖아요. 몸부림을 막 치며는 공간이 생기니깐, 더 빨리 빠져 내려가는 거에요. 그런데서 아무도 자신에게 밧줄 하나 던져 주는 사람이 없을 때, 서서히 빠져 내려 가는 거죠. 자신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 것들을 이 시인이 하나님앞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창세기에 보며는 14장인가요. 보며는 이런 구덩이 웅덩이 깊은 수렁, 이것이 전쟁에서 사람들이 도망을 가다가 빠져서 죽는 장면도 나와요. 아무리 이런 웅덩이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 가게 되며는 무기도 용맹도 아무 의미가 없는 거에요. 그냥 함께 쭉 빠져 들어 가는 거죠. 이런 것에서 자기를 건져 내 주셔서 그런데 빠지지 말도록 도와 주십시오. 라고 하는 그러한 탄원을 드리고 있는 거에요. 예비에서 두 번째, 후반부에 나오는 것들은 환경이에요. 자기를 미워하는 자 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뭐 거의 같은 뜻의 반복이겠죠. 자기를 미워하는 자들 곳 깊은 물에서 나를 건져 주시옵소서. 그래서 깊은 물, 은유는 시편에서도 보며는 죽음이에요 죽음. 그래서 하나님이여 물이 내 영혼에 까지 찾습니다. 그런 고백이 나오 잖아요. 요나의 고백에도 그런 고백이 나오잖아요. 이런 것들이 뭐냐하며는 뭘 가리키냐하며는 목숨이에요. 물이 목구멍까지 차게 되며는 숨을 쉴 수가 없게 되잖아요. 그렇게 자신의 힘으로 벚어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아까 것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이번에는 밖깥것들이 밀려 들어와서 자기 자신을 엄습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죠. 그게 인제 나를 미워하는 자들입니다. 뭐 원수 들이죠.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 복수로 나와요. 그러니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애워싸서 그래서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그런 장면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애워 싸고 있는 데, 거기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그러니깐 결국 이 시인의 입장에서는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죠. 왜냐하면 자기를 애워 싸고 있는 많은 환경들을 보면서 낙심하고 좌절하고 그러면서 자기자신이 스스로 빠져 들어가는 이런 절망과 낙담, 죄의 유혹 이런 것들로 부터의 위험과 또 한 편으로는 자기를 애워 싸고 있는 그 환경 자체 거기로부터 그것이 마치 깊은 물속에 자신이 빠져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처지를 생각하게 하는 거죠. 그래서 요나 선지자 같은 경우를 보며는 사람들이 제비를 뽑아서 바다에 던지잖아요. 그죠. 막 배가 항해에 위험을 느낄 정도로 엄청난 파도가 칠 때, 이 사람을 집어서 바다에 던져 버릴 때, 그때에 그렇게 바다에 풍하고 빠졌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어요. 어느 정도의 물이어야지만, 자신이 항거하고 몸부림을 치잖아요. 그 속에서 깊이 빠져 들어 가는 거에요. 그런 장면을 생각하시면, 되요. 거기에서 나를 건져 주시 옵소서. 그래서 이 시인은 결국은 이런 큰 고통과 곤경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보던지 환경을 보던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져히 자기를 지탱할 수 없는 비참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으면서 주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에요. 그렇게 하나님앞에 간절히 몸부림 치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된거에요. 그런 속에서 이 시인은 하나님앞에 호소 하고 있는거죠. 자기의 힘으로는 자신의 이런 내적인 깊은 빠져듬, 외적인 환경속에서 자기자신이 엄몰당하는 이런 깊은 위기 그 어느곳에서도 나를 지킬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주의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나를 건져 주시옵소서. 라고 하나님앞에호소하고 있는 것이에요. 실제로 그렇잖아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님이 우리의 삶의 환경이 고통스럽고 어려울 때에는 그것 때문에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것 같아도, 좋은 환경이 주어지며는 그것 때문에 미끄러 져서 시험에 들고 주님께로부터 멀어 지게 됩니다. 또, 좋은 환경을 주며는 그속에서 우리들이 부패하기 때문에 시련이 오며는 모두 주님을 붙들 것 같지만, 그러나 그중에 일부의 사람들만, 주님을 붙드는 것이지 시련이 오며는 그나마 하나님앞에서 보여주던 신앙생활의 겁질 조차 집어 던지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거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복을 주실 때,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도 아니고, 모든 고난 받는 사람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것도 아닌에요. 왜냐하면 결국은 그것은 자신의 내면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래서 한순간도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두손으로 굳게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주님을 깊이 의지하고 하나님앞에서 살아가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밤에도 이런 생각을 했어요. 참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거칠게 파도치는 그 바다위에 떠있는 작은 쪽배와 같아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바다에 떠있는 큰 배를 보며는 야 굉장하구나 그럴지는 몰라요. 뭐 천톤이든지 이천톤이든지, 오천톤이든지, 만톤이든지 바다에 나가면 전부다 가랑잎이에요. 파도의 그 힘을 이길 수가 없어요. 그런 커다란 파도가 치고 그런 시련이 올 때, 우린 얼마나 연약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되 감당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또, 시련을 주시되 주님이 우리로 하여금 피할 길을 우리에게 함께 주시지 않으면 이겨 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 간절히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그 의지의 표현이 이렇게 하나님앞에 모여 예배하는 것이고, 기도하는것이고, 찬송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의 향한 의존의 가장 간절한 표현인 것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