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화께서 열납하실 때에2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시 69편 13절)
이렇게 악인들에게 에워싸인 상황 속에서 시인이 택한 것은 하나님앞에 간구 하는 것이 였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이 열납하실 때에 나는 주께 기도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무슨 기도를 할때에 특별히 열납해 주시는 때가 따로 있다는 그런 고백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 말씀은 자기가 이런 인생의 위기와 어려움에 처하였을 그때에 하나님이 정말 그 자신에게 기도하게 하시는 때라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하나님앞에 마음 쏟고 기도하면 주님이 자신을 열납하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깨닫게 되죠. 그러니깐, 사실은 열납하시는 때가 하나님께 따로 있다기 보다는 기도자가 하나님앞에 그렇게 간절하게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그 시기들이 바로 하나님이 특별히 열납하시는 그 때다 그렇게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며는 시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열납하시는 때에 나는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라고 말합니다. 시인이 하나님앞에 간절히 매달릴 때, 그가하나님께 기대했던 것은 두가지입니다. 인자하심과 자기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시인이 이런 큰 시련과 어려움을 당하게 됬을 때, 하나님앞에 이렇게 주님의 인자하심에 호소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의 기반이 그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서 인자하심은 특별히 언약관계 안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우리를 성도되게 하시는 그런 사랑이에요. 이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시인이 기대했던 것이죠. 우리도 한번 생각을 해보 십시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면서 시련과 고난을 만나고 어려움을 많이 만나게 될 때에 그때에 그것이 그렇게 시련과 어려움을 만날때에 우리가 완전하게 정당할 때가 있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 하지 않습니다. 어느 하나의 사건을 두고는 종종 우리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고 저사람이 틀렸다 할 수 있는 그런 때가 혹시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삶 전체를 놓고 볼 때 에 우리가 어떤 난관을 만나고 고난을 당하게 됐을 때에 우리가 그런 식으로 이분법 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거든요. 우리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행했던 악하고 잘못된 일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서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자주 발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앞에서 우리가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 우리 자신을 돌아 보게 되며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잘못만이 아니라 나 자신의 허물과 그런 찢기들이 우리마음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요. 그중에 어떤 것들은 그런 고난에 처하지 않았더라면, 전혀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였는데, 우리에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 시인도 오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앞에 인자하심을 기대하는 거죠. 만약에 자신이 완벽하게 옳다면 인자가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면 되겠지요. 그러나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시고 그리고 그 백성들의 의로움 대신에 당신 자신안에 있는 그 신실함과 은혜로우신 그 은혜를 바라면서 그렇게 하나님을 향하고 바라는 그 믿음으로 주님앞에 주님앞에 나아가는 그런 신앙생활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동일하게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라고 간구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가지의 해석의 가능성이 있어요. 하나는 뭐냐하며는 오늘 우리 말에서 변역된 그대로 어떻게 내가 이 상태에서 구원 받아야 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게 응답해 주십시오. 라고 우리들이 해석할 수 있고 또하나는 여기에 나오는 진리라는 이 단어가 히브리 말로 보며는 신실함 이라는 뜻으로도 변역이 될 수 있는 단어에요. 그래서 구원의 신실함으로 내게 응답하소서 이렇게 되면, 이건 구원에 관한 진리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의 언약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언제나 구원하시는 그 신실함으로 나를 이 고통스러운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 건져 달라고 하는 그런 간절한 탄원이 되는 것이에요. 나는 후자의 해석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아무튼 결국 하나님께 하나님의 그 큰 인자하심을 자비하심을, 이 커다란 위기 속에서 하나님앞에 구했던 것이죠. 인간이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할 때, 그때에 그 마음이야 말로 하나님을 의존하는 마음이에요. 주님을 온전히 의존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인간은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간구하게 되고 주님의 인자하심 향하여 간절히 간구 하게 될 때에 인간은 자기를 위한 사랑을 포기 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종종 고난 가운데 두셔서 거기서 그 자신의 악함을 보시고 자신들의 잘못을 털어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수시로 그들을 정결케 하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에요. 인간의 마음은 심하게 부패해서 어느 한때에 건강하고 아름다운 영혼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가 일평생 동안 그런 영혼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보장해 주지 않아요.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는 그 순간 하나나님을 덜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정반대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하나님앞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되는 그 인간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후에 더더욱 하나님을 더 의존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도 이 시인은 자신이 이 고통스러운 위기 속에 계속 머물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행복해 지고자 하는 존재 이기 때문에 이 고통 속에서 많은 유익을 얻는 다고 할 지라도 그 고통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 였습니다. 하나님앞에 구원의 진리로 혹은 구원하시는 신실함으로 내게 응답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고 있는것입니다. 우리도 시련과 어려움 속에 처했을 때에는 의지할 이가 주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주님앞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되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 고난과 위기 속에서 주님의 그 크고 넓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앞에 더더욱 매달리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