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하나님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의 의지할 주께서 의를 좇아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시 65:5).
이제 하나님의 4절에서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할 것입니다.....이렇게 노래를 하죠. 하나님께 가까이 있게 하신 사람의 그 놀라운 특권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여기서 만족하다는 건 배부르다는 뜻인데, 하나님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배부르게 하시는 것이에요.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영혼의 만족이죠? 영혼의...마음과 영혼의 진정한 만족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이 이 세계 모든 만물 속에 나타나 있지만, 그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이 가장 농축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성경이에요.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의 진수다...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그런 성경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사실 어떻게 보면 현실이 아니잖아요. 현실이...하나님의 그 성품과 뜻의 아름다움이 거기 나타나 있지만 그것은 현실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소설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문학 작품이 아닌 것처럼, 현실이 아니잖아요. 그것들이 이제 펼쳐져서 실제의 삶 속에 전개될 때 그 때,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나타나는 거죠. 그런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현실로 나타난 그것이 바로 교회의 삶이에요. 그러니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들이 잘 쓴 문학작품을 연극으로 만든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도 하나의 현실이죠. 그러나 연극은 모든 사람이 약속을 하고 행동을 하고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이 아니죠. 연극에서 내가 청년으로 나온다고 그래도, 그것은 시간 공간 속에 펼쳐졌다는 점에선 현실이지만, 끝나고 나면 나는 또 애기 아빠로 돌아가야 되니까 현실이 아니잖아요. 그런 점에서 현실이 아니다 이 얘기에요. 근데 이제 교회는 현실이에요. 현실, 응? 여기서 무슨 각본을 짜고 뭘 하고 남 보이기 위해서 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거죠. 그것이 바로 오늘 시인이 얘기하는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겠습니다.....그래 성전 속에는 각양 아름다운 많은 요소들이 수없이 등장하게 돼요. 그런 아름다운 수많은 요소들이 이제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 아름다운 요소들이 바로 하나님의 진리가 성도들의 삶 속에서 전개된 것들이죠. 그 뿐만이 아니죠. 당시 성전에서는 가장 중심적인 기능이 죄를 용서해 주는 기능이잖아요.. 성전에 있는 모든 것들이에요. 하나님이 세우신 죄를 용서받는 제도, 제사 제도, 자기 헌신을 주님 앞에 표명하는 그런 제도, 그 위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과 그 모든 제사의 질서들, 거기에 나아가서 주님을 만나는 경험, 거기서 함께 주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형제와의 연합과 교제, 이런 모든 것들이 전부 다 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표하는 거죠. 그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움이 되는 거죠. 이런 아름다움이 시인의 마음 속에 큰 기쁨이 되었던 거죠. 그래서 제가 내가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할 것입니다....이렇게 고백을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5절에 보면,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의 의지할 주께서...그럽니다. 이제 땅의 모든 끝, 먼 바다에 있는 자들? 며칠 전에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시대의 사람들의 세계관과 관련이 있어요. 그들은 땅이 둥글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쟁반처럼 평평한 것이 땅의 끝이고, 그리고 저 바다의 수평선이 바로 그 바다의 끝이다...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먼 바다에 나가는 것을 굉장히 위험하게 생각을 한 거죠. 그리고 밑에서 막 잡아당기듯이 사람들을 끌어내려 떨어뜨린다고 보았단 말이죠. 그러니까, 먼 바다 그 다음에 땅의 모든 끝...이런 데 있는 사람들이 표현하는 바는 위험한 사람들이에요.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의지할 주님, 그래서 시편에 보면, 다른 곳에 보면,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거기서도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십니다...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낭떠러지의 마지막 그 때 가서 있는 그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거기서도 당신의 주권을 행사하셔서 인간을 붙드십니다...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의지할 주님이셔요. 그래서 우리의 인생의 과거를 돌아보면, 주님을 만난 은혜에 탁월한 감격이 있었던 때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요. 어려움에 처했을 그것이 배경이 되어서 주님을 깊이 만나는 그런 은혜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죠. 이것이 바로 바다 끝에 있는 자의 의지할 주라는 의미에요. 그러면서 이제 의를 좇아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실 것입니다....뭘 간구할까요? 바다 끝에 있는 사람들은 위험하니까, 하나님 앞에 도와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겠죠? 그러면 이게 실제로 바다 끝에 있고 땅 끝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물론 그런 것도 가리키지만, 그거보다도 더 적절하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그 언약의 백성들이 마치, 절망적인 바다 끝에 있어서 절망적이 사람들, 먼 땅 끝에 있어서 도저히 하나님의 도움이 미칠 것 같지 않은 위기적인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의 응답은 하나님의 도움이에요. 그래서 아까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그리고 먼저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했던 거예요. 그래서 그 구원의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신지를 여기서 설명을 하는데, 그게 바로 주의 의를 좇아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그래서 옳고 그름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또, 일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따라서 응답하고, 역사하신다는 그런 뜻이에요. 결국,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우리가 삶으로 위기 가운데 놓여 있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능력은 그것을 우리로 하여금 극복하게 하시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기서도 당신의 손을 펼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신앙이다...이렇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