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하나님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과 만민의 훤화까지 진정하시나이다”(시 65:6-7).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65편 6절과 7절입니다.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과 만민의 훤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아멘
구약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산에 대한 찬송이 많이 나옵니다. 그 산이 많이 나오면서 이게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의 움직이지 아니하시는 그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하는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여기에서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하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큰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이 피조물들을 통해서 이제 나타나게 되는데 사람들 생각에는 산은 운명적인 거예요. 왜냐면 과학기술이 이렇게 발달한 지금에 와서도 산을 변화시키는 것, 산을 예를 들자면, 평지로 만든다든지 하는 이런 것들은 굉장히 어려운 겁니다. 산이 바위나 이런 걸로 됐을 경우에는 거의 불가능하고 산이 순수하게 흙으로 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개미만한 트럭이 그것을 흙을 실어 날라서 다른 곳으로 메우고 그 산을 깎아 버려서 평지를 만든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 그 옛날의 사람들의 생각에 이 산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항력적으로 서 있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에 인간은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피조물이었단 말이죠. 그래서 여기에서도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그래서 시인이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산을 향하여 눈을 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저 산을 명하여 있게 하셨으니 그 큰 능력을 하나님께서 행하시리니 그 산을 만드신 그 능력으로 오늘 도움이 필요하는 나를 도우실 수 있을 것이다....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신앙입니다. 여기에서도 꼭 같이 주님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고...그리고 권능으로 띠를 띠셨습니다....앞부분은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는 능력을 보여준다면, 띠를 띠었다고 하는 것은 이게 왕의 관대를 의미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왕이 띠를 띠고...띠를 띤 복장은 정식으로 왕의 업무를 보기 위한 차림새에요. 그러니까 띠를 띠고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법을 집행하고 명령하기 위해서 나타나는 것을 뜻하는 거죠. 그래서 띠를 띠고 홀을 잡고 그리고 왕이 명령을 함으로써 온 나라를 자기의 뜻대로 다스리는 거죠. 그런 왕의 그림을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함께 묘사하면서 이제 이 세상의 인간의 왕은 단지 인간들에게 명할 수 있을 뿐이지만 이 왕은 이 명령을 하나님이 왕으로써 이 명령을 이행하게 할 수 있는 큰 능력을 산을 세우심으로써 보여주셨어요. 그리고 자신의 통치를 자연계와 도덕계 모두에 펼치는 거예요. 그래서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흉용이라는 것은 커다란 파도를 가리키는 것이고 배를 띄울 수 없을 정도의 파도를 가리키는 것이고, 요동은 물결의 파랑을 이야기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진정시키실 수 있는 분이시다...비슷한 예가 요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을 때 풍랑이 일잖아요.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폭풍을 발사하셨다고 나와요. 그러니까 온 바다를 전부다 다 풍랑 일게 하신 게 아니라 그가 타고 있는 그 바다에 하나님이 바람을 발사하셔서 그래서 파도가 쳐서 결국은 그 사람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도록 만드시는 거죠. 이렇게 하나님은 당신이 마음 먹으신 대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연의 세계 조차도 통치하고 다스리실 수 있는 그런 분이심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 만민의 훤화까지...훤화라고 하는 것은 좀 어려운 말인데, 떠든다는 거예요. 막 사람들이 데모 같은 거 하면서 뭐 산발적으로 구호를 외치고 사람들이 막 그 어떤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일정한 구심점 없이 막 떠드는 그런 걸 가리키는 거예요. 떠들 회자에요. 이게..그래서 이렇게 확 사람들이 요동치는 그런 감정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것을 하나님은 진정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을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이런 이야기에요.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이 물은 사람을 뜻하는 말로 자주 쓰여요. 특히 전도서 같은 데서....그러니까 이제 그런 것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바다, 그 다음에 물결, 그 다음에 사람, 이런 것들을 함께 문학적으로 연장선상에서 대비시키면서 그러면서 파도가 요동을 치는 것처럼 인간들은 땅 위에서 감정적으로 요동을 치면서 소리를 지르고 떠드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한 번에 잠잠하게 만드시도록 만드시는 그런 능력을 하나님이 자연의 세계 속에 그리고 인간의 마음 안에 행사하시는 거죠. 그것이 하나님의 큰 능력이에요. 우리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도 살다보면 우리의 삶의 환경이 요동칠 때가 있죠. 그쵸? 나는 안정되고자 하지만, 주위에 있는 환경이 막 요동을 쳐요. 그래서 어떻게 견딜 수가 없어요. 그 때, 하나님이 당신을 깊이 의지하는 우리에게 그런 모든 상황들을 잠잠하게 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있으신 분입니다. 하도 오래 돼서 좀 기억이 안 나는데, 영국에 있는 지금은 뭐 앨버트올 같은 경우가 아주 유명한 음악단이죠.. 그런데 굉장히 유명한 음악단인데, 거기에 파격적으로 흑인이 무대에 섰답니다. 그러니까 이제 사람들이 와서 뭐 흑인이 갑자기 그 당시만 해도 인종차별이 심하던 때였으니까,, 사람들이 막 교양없이 웅성거리고 막 떠들기 시작하고 그리고 흑인이 어떻게 여기에 설 수 있냐 그러면서 사람들이 시끄럽기 시작하더라는 거예요. 이제 이 음악가가 크리스챤이었어요. 그러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는 연주를 하겠다고 나왔는데 관객들이 웅성웅성웅성 떠들고 여기저기에서 흑인이 여기 서다니...하고 그런 소리들이 막 들려 올 때 말이죠. 눈을 조용히 감고 빌립보서의 말씀, 그것을 조용히 외운 거죠.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의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진정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최상의 연주를 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 바깥의 물질적인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파도들도 무섭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분노의 파도,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이 고르지 못한 격정적인 파도, 이런 것들이 모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지 못한 삶을 살게 되는 원인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아우구스티누스도 말하기를 무릇 죄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고르지 못한 데서 일어나는 격정입니다...고백을 했어요. 그렇게 하나님이 요동치는 물결을 잔잔하게 하시는 것처럼 수많은 만민의 훤화까지도 한 번에 그 마음을 다스려 진정시키시는 것처럼 하나님이 그렇게 자연계 안에서 우리의 마음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 요동치는 환경에 어려움이 일어날 때에도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주님 뿐이에요. 주님은 단지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실제로 그 큰 우리의 인생의 파도를 잠자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또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진정하지 못 하고 분노나 미움, 욕망으로 우리의 마음이 요동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잔잔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잠잠케 하시고 그렇게 변화시키셔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따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우리 마음 안팎의 수많은 파도와 도전들로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거죠.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분의 다스림 속에 있기를 우리의 마음 자체가 원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셔서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같아지기를 원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도 통치하시고 나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다스리시며 나아가서는 이 세상 모든 만민들까지도 다스리시고 통치하심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