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할 이유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시 67:3).
시인은 먼저 하나님이 자신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복을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 얼굴빛으로 자신들에게 비춰 달라고 기도하면서 주의 구원을 만방에 알려 달라고 기도한 다음에, 민족들로 찬송케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것은 부흥이 확산되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그 큰 부흥의 은혜가 어떻게 이방나라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전형적인 본보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을 알리셨지만 자연이나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알려지는 이런 지식들은 그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주님을 올바르게 찬송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은 주지 못합니다.
여러분, 요나서를 보면 기이하다...라는 느낌을 받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해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강퍅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는데, 그 니느웨 백성들에게 요나가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더니, 임금으로부터 모든 가축에 이르기까지 금식을 하고 가축이야 자기가 금식을 했겠습니까? 밥을 안 주니까 굶었겠지...근데 어쨌든 그렇게 금식을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아주 놀라운 선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배경이 어떻게 되냐 하면요, 많은 성서학자들이 천문학의 도움을 받으면서 주기계산을 하니까 바로 그 때 커다란 그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커다란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뭐냐면 일식이 있었다고 보는 거죠. 일식이....이 사람들은 태양을 정말 우상시하는 사람들인데 그 태양이 이렇게 갉아 먹히면서 달에 의해서 가리워지는 게 그 사람들은 그런 천문학자 지식이 없으니까 갉아 먹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죠? 그 때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는 거예요. 바로 그 때 바로 그 때 선지자가 나타나서 그래서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구령의 열정도 아니고 하나님이 한 대 치시니까 이제 정신을 차리고 와서 곧 하나님이 심판을 하실 거다...이런 선포를 하게 되었을 때, 그들의 마음이 녹아 내리기 시작했던 거예요. 자 그러면, 결국 이 세상의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그 계시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준비까지는 하게 하는 거죠. 그래서 이 자연 속에 나타난 성경의 계시를 제외한 하나님에 관한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 분명할 뿐 아니라 선악간에 하나님이 판단하신다는 것, 이것은 너무나 분명하게 가르쳐 주어서 선악을 몰랐다거나 혹은 하나님의 존재를 몰랐다거나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거예요. 거기까지가 자연계시의 한계에요. 그런 것들을 아주 잘 받아들여지게 되면 그러면 특별계시가 사람들에게 주어졌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을 때, 빨려 들 듯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준비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신 못 차리고 신앙적으로 방황을 하다가 어쩌다가 큰 일을 당하게 돼요. 그래서 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을 당하면 ‘내가 이게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 여러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되는 거죠. 그것도 보면 가만히 보면 이렇게 일반적인 섭리 속에서 살아가다가 마음이 준비가 되고 결정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을 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되는 것이죠. 이 이스라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해 주는 계시를 지니고 있는 민족이었어요. 그 민족이 삶과 그리고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선포해 줄 때 열방은 그 음성을 들으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데 오늘 여기에서 민족들이 주를 찬송케 해 달라는 것은 뭐냐면 그 찬송할 이유를 하나님이 달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어떨 때 하나님을 찬송하게 돼요?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알았을 때, 그 때 그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찬송의 제목이 되죠. 예배가 먼저예요? 지식이 먼저예요? 대답을 못 하셔. 새벽엔 대답하면 안 되나? 지식이 먼저예요, 예배가 먼저예요? 당연히 지식이 먼저죠. 알아야지 경배를 하죠. 지식이 먼저란 말이요. 지식이 제일 먼저예요. 주님을 높이는 그 지식이 제일 먼저예요. 높이는 것이 먼저예요. 그러고 나서 그 지식 때문에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아서 경배하는...알지 못하는 자를 예배하는 것은 이방인들의 전형적인 특징이었어요. 그래서 바울이 아데니에 갔을 때 그 사람들과 논쟁하면서 뭐라 그랬어요? “야 넌 지나가다 보니까 왠갖 신들의 이름이 있고 그 신들에게 경배한다고 그러는데 야 가다가 보니까 알지 못 하는 신에게...그런 것도 있더라...그것은 혹시라도 빼놨다가 그 신이 섭섭해 하면 곤란하니까 아직 생각이 안 나는 신을 거기다가 다 모아가지고 도매금을 경배하는 거죠. 그런 것도 보았다....”그러면서 조롱을 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런 것은 이방 종교의 대표적인 특성이에요. 그래서 이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린다고 할 때는 제일 먼저 머리부터 차례대로 들어가는 거예요. 머리가 들어가고 눈, 코, 입, 귀, 그리고 우리의 심장, 모든 것이 마지막에 오장육부까지 주님께 들어가는....그래서 주님을 향한 최고의 경배는 주님을 알고자 하는 욕망으로 나타나요. 그래서 한 시대의 교회에 가장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가 뭐냐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를 알았던 그 지식을 같은 시대 사람들에게 전하는 거예요. 그것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전도로 나타나요. 전도만이 아니라 이미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도 올바르게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가르치는 거예요.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전문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과 신학을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죠. 체계적으로 그것들을 갖게끔 해 주시는 거예요. 어제도 저기 총신대학생들이 한 40명 왔었어요. 저녁 때....저녁을 먹이고 잠깐 같이 교제를 하고 내 얘기도 들려주고 그랬는데 그들의 한결같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게 뭐냐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를 배우게 됩니다.....그거죠.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는 것과 그 다음에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하는 것을 배웁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한 거예요. 특히 사람들에게 이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나누어 주려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공부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 우리가 운동 같은 걸 하다가 보면 그런 게 있잖아요? 제자 가운데 탁구를 하는 선수가 있었는데 하루에 20킬로 미터씩 뛴대요. 20킬로 미터...탁구공 무게는 5그람이에요. 5그람....투포환 선수가 20키로씩 뛴다면 이해가 가는데 20킬로씩 뛰는 거예요. 그래서 연습이 힘든 게 아니라 달리기가 힘들대요. 그까짓것 5그람밖에 안 되는데 왜 그렇게 뛰냐 그랬더니, 모든 세밀한 기술은 체력에서 나온다....그래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을 알기 위한, 잘 들으세요. 주님을 알기 위한 두 가지 훈련이 있어요. 그건 뭐냐면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라고 선생님이 혹은 성경을 통해서 혹은 책을 통해서 배우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은 마치 이렇게 손을 벌리고 있으면 이 위에다 이렇게 바구니를 들고 있으면 거기에다 과일을 담아 주는 것처럼 이렇게 지식을 담아 주는 거예요. 근데, 그것만 가지면 안 되고 그 다음에 뭐냐면 손을 뻗어서 그것을 가질 수 있도록 이렇게 운동을 해야 되는 거예요. 운동을 해야 되는 거예요. 이번에도 누가 인터넷에 글을 올렸길래 제가 한 14페이지를 간곡히 써서 올렸는데 가서 한 번 들여다 보세요. 몰라서 그러는 거지...그게 뭐냐면 자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아이들 공룡 좋아하는데 공룡 그림 보면, 여러분도 보셨을 거예요. 뒷다리는 되게 발달했는데 앞다리는 요렇게 개구리처럼 된 공룡 보셨죠? 일설에 의하면 앞다리 때문에 죽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럼 보세요. 사과가 나무에 사과가 달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손을 쭉 뻗어서 그것을 딸 수 있어야 되잖아요? 근데 이렇게 오그라드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받아 들이는 것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믿음이고 하나는 이성인데, 믿음은 우리들이 받아들인다고 쳐요. 근데 이성도 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들을 받아들이는 도구거든? 근데 이성과 한쪽은 믿음이에요. 믿음과 이성의 손이 이렇게 오그라들었을 때는 자기가 아무리 가슴으로 많은 걸 느끼고자 해도 그걸 받아들일 수 없는 거예요. 손이 오그라 들어서 이렇게 있는데 핸드볼이나 아니면 과일이나 이렇게 던져 주면 받을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냐면 이렇게 훈련을 계속 해서 그래서 이것들을 이렇게 근력운동을 해서 이것들을 능력을 발달시키는, 믿음도 큰 믿음이 있고 작은 믿음이 있고 그러고, 이성도 큰 이성이 있고 작은 이성이 있는 거죠. 그래서 믿음이 믿음 그 자체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믿음은 믿으려는 성향이에요 .그래서 믿음이 좋은 사람은 성경 어디든지 믿어요. 네? 시편 67편 3절만 믿는게 아니라 믿고자 하는 성향이 강화되면 다 믿어지는 거야. 아멘 아멘 아멘 하는 거야. 그 시편 67편입니까? 아 그럼 68편은 믿을 수 없어...이러지 않고 아멘 아멘 해요. 그래서 그 때를 발달시켜 나가는 거예요. 최근에 제가 논문을 하는 보니까 너무 재밌는 이야기가 나와요. 근데 이제 깊이 공감가는 얘기...아마 기독교 역사상 쓰여진 책 가운데 가장 어려운 책 한 5권 안에 들어가는 책이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삼위일체라는 책이에요. 아마 우리 도서관에도 있을 거야 아마. 한 번 보십시오. 책장이 넘어가질 않아요. 심지어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잘 못 읽는 책이에요. 아주 난해한 책입니다. 그것을 여태까지는 그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것은 일화도 있잖아요. 그게 뭐냐면 그것을 쓰다가 하도 어려우니까 이제 바닷가에 가서 산책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했는데 쬐그만 아이가 바닷가에 앉아서 웅덩이를 파 놓고 물을 이렇게 붓더래요. 야...너 거기서 뭐 하냐? 그랬더니, 아저씨....내가 저 바다의 물을 이 웅덩이에다가 다 담으려고 그래요. 참....어리석은 애도 다 있구나...그리고 바다를 한참 걸어가다가 아차...하고 돌이켜 보니까 아이가 없더라....야사 비슷하게 내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아이가 아마 천사일 거다...그 후로 자기의 겸손함을 깊이 인정하게 되었다고 그런 얘기가 있어요. 굉장히 어려운 책이죠. 그래서 그것을 예전에는 자기의 교인들에게 그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쳐 주려고 그 책을 썼다...이게 정설이었어요. 근데 지금으로부터 몇 십년 전부터 65년도 이후로부터는 새로운 학설이 나왔어요. 근데 그 학설이 훨씬 더 타당해요. 그게 뭐냐면 아우구스티누는 처음부터 믿음이 아니고는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보았다.....그런 걸 왜 썼느냐....그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관한 논리들을 전개하면서 안으로 안으로 오그라 들어 있는 성도의 믿음과 이성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그 책을 쓴 것이다. 근데, 아주 깊이 동의가 돼요.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돌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이 돌을 알고 싶어하는 것처럼, 흙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이 흙을 알고 싶어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그랬더니 자기는 국밥 하나에다 인생을 걸었다고...그래서 30년 가까이 국밥 하나를 연구하는 일에 매진했대. 우리 하나님이 국밥만도 못 해요? 그것은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중요한 의무예요. 그 분을 알고 그 분을 사랑하고 그 분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을 통해서 모든 지식이 열방 가운데 전해지고 그들도 주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하는 겁니다. 근데 그런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거예요. 그럼 사람들에게 맞서지 않고 온유함으로 때로는 꾸짖고 때로는 바르게 하고 타이르고 위해서 기도하고 무지 그 자체를 비난하지 말고 불쌍하게 생각을 하고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야 되는 거예요. 한 사람의 가치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선한 의지의 크기인데 그 선한 의지의 크기도 주님의 어떤 분이심을 잘 아는 만큼 선한 의지의 크기가 생겨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을 만방에 전파해서 그래서 그들도 주님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그렇게 섬기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