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궁핍한 자의 기도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시70:5)
녹취자:박정윤
이 시인은 하나님의 광대하시고 위대하심을 찬송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무엇때문이죠. 하나님이 만약 시련과 고난속에서 자기를 건져주시면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신지를 제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겠습니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보면 시련과 환란이라는것은 좋게 생각하면 예전에는 몰랐던 하나님의 성품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어진 상황과 현실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반응하는가 거기에 굉장히 많이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근데 오늘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은 전혀 위대하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 아니신데 그런 하나님을 자기가 고난속에서 경험하게된다는 뜻이 아니라 원래 위대하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신데 고난과 시련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서 그 하나님을 자기가 새삼스럽게 깨닫게된다는 뜻입니다. 시인이 고난과 시련속에서 자꾸 하나님을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자기를 이 시련과 고난속에서 건져낼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묵상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것은 자신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그것은 자기가 굉장히 가난하고 궁핍한 처지에 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다윗의 시에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라고 하는것이 자주 반복되서 나옵니다. 가난하단 단어가 히브리어로 에비욘인데 거지를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빌어먹고 사는 거지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비를 베풀어서 빵 한덩어리 포도주 한모금이라도 주지않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게되어있는 막막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라고 얘기하는것이 수사적인 어구가 아닌 오히려 하나님앞에서 신약에 보면 마태복음5장에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그러는데 파산선고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여기의 에비온을 히랍어로 옮긴것이 푸토코스란 단어입니다. 이건 무엇을 보여주나하면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의존의 상태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는것 이외에는 어떤 대안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인간의 모든 죄악 부패함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안의지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모든 부패함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하면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에게 굴복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돈이나 권력으로 굴복시킵니다. 또자녀들도 어렸을땐 폭력으로 굴복시킵니다. 아내도 남편도 사람도 굴복시키기 어려운 상대라도 더러운 성질을 부려서라도 굴복시키는데 이는 굴복이 아니라 무서워서 드러워서 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해서라도 자기가 원하는대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살아봐야 주위에 친구가 없어서 자신은 외로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굴복을 안하십니다. 그렇게되면 하나님이라도 복종을 시켜야합니다. 복종시킬 방법이 없죠. 그래서 하나님과 겨루게 됩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과 겨루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는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라는 고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고백이 마음 중심 깊은 곳에서 토해져 나올때 통회하는 심정, 하나님앞에 상하고 찢어진 마음이 아니면 이 고백이 나올수 없습니다. 근데 사실 다윗이 궁핍한 사람이었습니까. 가난한 사람이었습니까. 온갖 보물을 손에 넣은 사람이었고 한나라의 제왕이었고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부강한 시대를 구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그사람이 나는 가난하고 궁핍합니다라고 고백한것은 무엇일까요. 그런것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힘이 될것이라 생각한 자체가 하나님을 찾지않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깊이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을 이렇게 불러서 아버지한테 살도록 만들어 주셨고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려하십니다. 하나님이 모든것을 형통하게 해주실때는 하나님때문에 이모든것이 형통케 되었다 하면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잘 안되고 고통받고 어려울때는 내가 나를 더 많이 의지하였구나 그랬더니 내 인생의 결과가 이렇게 되었구나 하면서 오히려 자신에 대한 신뢰를 버릴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자신을 의지한 결과가 이렇게 나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자신을 반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소망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한시 삼십분에 깨서 한참 잠이 안와서 마음속으로 묵상하고 기도하다 다시 잠이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세월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흐른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저께도 어느 교수한분이 정년퇴임한다는 소식을 받았는데 학교 다닐때 막 들어온지 얼마안된 젊은 교수님이셨는데 벌써 정년퇴임을 하신답니다. 그러면서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하찮은것인가 눈물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오죽했으면 시인이 하나님이여 주께서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그래서 있는거 같은 존재지만 사실 없는거 같은 존재다라는 것을 깨닫는것입니다. 여러분 소식들었겠지만 이동수 장로님이 지금 제주도에 입원해 계십니다. 체육대회하면서 몸이 안좋아서 감기기운이 오고 그랬대요. 당신이 거기 섬기러 따라 가시겠다고 오시지 말라 했는데 괜찮다고 그래서 내려가셨는데 감기인줄 알았는데 균이 몸에 확 퍼지면서 몸에 염증이 생긴겁니다. 새벽에 아무리 이상해서 응급실로 갔더니 응급실에서 잠깐 치료한후 더 큰 병원으로 가라해서 더 큰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는데 며칠사이에 온몸에 균이 번지고 그 속에 고름들이 생겨나고 뇌,척추에 전이되서 깜짝 놀랬습니다. 김진우장로님 얘기들으니까 50%이상은 죽는거라 합니다. 제가 두번 내려갔다 왔는데 그래도 안정이 되고 치료가 되었습니다. 의사얘기로는 이렇게 급속하게 번진적도 없고 이렇게 빨리 치료된적도 없다합니다. 눈에까지 균이 들어가서 눈이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라 그래서 눈이 침침해서 안보일까봐 신경을 곤두세워서 치료하고 기도하고 있는데 여러분들도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저께 아침에 마지막으로 연락이 왔는데 마지막 척추까지 검사했는데 균이 거의 죽었다 합니다. 성도들이 열심히 기도한게 당신에게 느껴졌다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보면서 우리의 몸이라는것이 얼마나 하찮은것인가 우리가 과연 있다고 그럴수 있는 존재인가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눈에 보이는 모든것은 단지 있다는 이유가 아니라 또다른 이유에서 사실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사지백체라는 것이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균 몇마리의 침투에 의해 순식간 번지면서 피까지 전부 피가 균에 감염되서 썩어가는 패혈증이 와서 순식간에 우리몸 전체가 썩은 고목나무가 우르르 무너지듯이 무너지는 존재라는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우리가 모든것이 건강하고 자원이 있고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는것 같을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각이 안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신,육체적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 우리 스스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지탱해주는 존재일뿐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어제 아침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도를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시인이 다시한번 생애적으로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십니다. 여기서 도움이라는 것은 예전에 응원군을 이야기하는데 전쟁에서 싸우다 전쟁이 기울고 있을때 저 지평선에서 먼지를 휘날리며 어마어마한 군대가 몰려옵니다. 그 함성소리는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아군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어 용기를 내게 만들어주는 함성소리입니다. 결국은 우리 혼자힘으로는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전쟁을 이기게끔 만들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큰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영혼이 가장 아름다울때가 둘이 있는데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할때와 하나님앞에 진실하게 회개할때 그 두경우는 모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때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고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당신의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의지하며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시간에도 이렇게 자신은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낮추면서 겸손하게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