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품고 찬송하리이다
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로 수치와 멸망을 당케 아시며 나를 모해하려 하는 자에게는 욕과 수욕이 덮이게 하소서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찬송하리이다 (시 71:13-14)
녹취자: 이한슬
여기서 내 영혼을 대적한다라는 표현은 그 앞에 나오는 영혼을 엿본다는 말하고 유사한 표현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영혼이라는 말이 목숨이라는 말로도 번역이 될 수 있는데, 어쨌든 내 영혼을 대적한다라는 말은 내가 살아있는 것을 싫어한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싫어서 나를 파멸하기 위해서 애쓰는 그런 사람을 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 바로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움과 관계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미움과 관계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사람을 극단적으로 미워하게 되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미움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사랑이 되듯이 미워하게 되면 존재 그 자체가 미움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커다란 희망은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잔인할 정도로 그 영혼을 엿보고 영혼을 대적하면서 그 수치와 그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오히려 수치와 멸망을 당하게 하옵소서 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악인들에게 이 시인은 그들에 대한 처분을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대할 때에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속에도 악한 방법으로 처단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지만 그것은 또 다른 악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백성들의 믿음은 자기를 대적하는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며 아버지 앞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영혼을 대적하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큰 섭리 속에서 수치와 멸망을 당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악인의 처분을 맡기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언약백성들의 태도입니다.
악인은 강한 것처럼 보이고 또 악인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경건한 백성은 좌절합니다. 낙심합니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하나님이 없고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악인들에게 잠시 지는 것 같이 괴로움과 고난을 당하지만 하나님은 위로를 주십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의 지혜 속에서 고난을 당할 때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사람과 은혜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형통하고 좋을 때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말할 수 없이 큰 섭리 속에서 그 은혜의 깊이와 사랑의 넓이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약백성이라도 이 세상을 지날 때 이렇게 악한 사람들에게 괴로움과 고난을 당하는 일이 없을 수 없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믿음을 따라 살기 때문에 시련과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자기를 대적하는 자들에 대해서 자신도 똑같이 악을 행하려고 하면 그러면 자신도 똑같이 악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맨 처음에 문제가 악인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악인을 부적절하게 대적하는 가운데 그 역시 악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섭리와 하나님의 커다란 계획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대적하는 그 악한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수치와 멸망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72편도 다윗의 시편이라고 여겨지지만 다윗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그렇게 고생을 하며 도망을 다녀야 했던 이유는 사울의 악행 때문이었습니다. 도망을 다니다가 절호의 기회를 만납니다. 고을에서 병들고 있는 사울을 만납니다. 충분히 죽일 수 있었는데 죽이지 않습니다. 그의 옷자락을 베어가지고 나오고 물병을 훔쳐 나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자를 그렇게 했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시고 대신 자기를 택하셨는데 말입니다. 그것이 다윗의 신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하나님이 버리시고 그를 버리고 자기를 택하셨어도 그것이 곧 그를 함부로 대해도 좋고 악한 방법으로 그에게 보복해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에 그런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면 다윗은 그렇게 오랫동안 도망다니지 않고도 문제를 테러나 암살 등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래서 약한 자 같으나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강한 자가 되고 버림받은 자 같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자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모해하려는 자에게는 욕과 수욕이 덮이게 하옵소서 이는 멸망을 통해서 죽거나 아니면 살아있으면 끔찍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수를 향한 일방적인 복수의 감정이 아니라 모든 일들을 선하시기 때문에 선으로 종결 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요 신앙입니다. 그런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이냐,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할 것입니다. 어떻게냐면, 잠시 악인의 모사가 이기는 것 같고 자기의 영혼을 대적하는 자가 승리하는 것처럼 그렇게 해도 나는 시인을 항상 소망을 품겠습니다. 무슨 뜻 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루어진 그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나에게 반드시 선과 기쁨이 될 것이다 하는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일에 나도 기쁨이 있고 하나님이 가슴아파하시는 그 일에 나도 함께 가슴아파합니다 라는 고백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주님의 주권이 이기리라는 신앙을 가지고 항상 소망을 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더욱더욱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쁘고 좋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만 찬송의 제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영혼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애워쌓이고 수치와 괴로움을 당할 때에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그 비상한 성품에 대해 기뻐하고 찬송하고 그 때문에 하나님 앞에 소망을 품고 아버지를 의지하고 이럴 수 있는 신앙의 힘과 지혜와 은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생사간에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분께 소망을 품으며 기도할 그런 의무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길을 지나면서 어딘들 우리의 대적이 없겠고 어딘들 우리에게 시련과 고난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시련과 고난, 모든 괴로움을 통해서 소망을 품고 그래서 더더욱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큰 소망을 품고 주님을 의지하려고 살아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