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사를 전함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시71:17)
녹취자:장형주
과거를 회상하고 또 현재의 자기가 당하고 있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고려하면서 위로가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자기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은 자기를 교훈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교훈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시인에게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떠한 삶을 살아라’ 하고 가르쳐주시는 주님의 가르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미 이 당시에는 모세의 율법이 아주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구약의 다른 책들도 형성되어 가고 있는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확실한 것은 분명히 구약의 모세오경이 있었고 그리고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근간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이 시인에게 교훈하셨을까요? ‘너는 이런 사람이 되고 그리고 이러한 삶을 살아라’ 그런 가르침들을 하나님이 주셨을까요?
물론 하나님께서 이 시인이 성경의 저자이니까-아마도 다윗의 시라고 여겨지는데-하나님이 새로운 계시를 주셔서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고 어떤 사람이 되라고 일러주셨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율법과 관련하여 직접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이 율법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율법을 통해서 교훈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지은 여러 시편들 가운데 흩어져 나오고 특별히 119편에 보면은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장면에서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종 이 시인에게 이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묵상할 때에 그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시인에게 교훈해 주셔서 무엇을 믿고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떻게 살라고 가르쳐주시고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교훈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태어난 행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이렇게 살아야 할 뿐 아니라 언약의 자녀들이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끊임없이 교훈을 배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가 그렇게 자녀들의 신앙을 지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아이들의 일생을 모두 지켜볼 수도 없고 또 지켜본다고 한들 그 아이들이 살아가는 모든 삶의 현장에 우리가 함께 있을 수도 없습니다. 가장 확실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견고한 관계를 가지고 어느 곳에서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이 또 한가지를 고백하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또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다양한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를 교훈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기가 이제까지 주님의 기사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런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이 시인이 때로는 시련과 고난을 당하고 원수들에게 에워싸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이렇게 해서 끔찍한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끔찍한 고통과 많은 괴로움 속에서도 거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사용하셔서 이 시인을 교훈하셨던 것입니다.
(예화)우리들이 이런 생각을 해봅시다. 불은 언제나 붉은 빛이지만 그 불길이 어떤 가연제에 닿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색깔을 냅니다. 예를 들자면 그 불이 불이지만 나무를 태울 때에 나는 빛깔과 화학제품을 태울 때의 나는 빛깔과 유류재품을 태울 때에 나는 빛깔과 심지어 금속과 맞부딪쳐서 금속을 녹일 때에 그 불의 불꽃의 색깔이 다릅니다. 어떤 때는 더 시뻘겋게 어떤 때는 파랗게 어떤 때는 초록빛으로 어떤 때는 아주 새파란 불꽃으로 나타납니다. 같은 불인데도 그 불이 어떤 가연제와 접촉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빛깔들을 나타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한분이시지만 당신의 사랑과 그리고 은혜를 이 시인에게 비춰주실 때 그가 처해있는 다양한 상황과 만나면서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빛깔로 당신의 성품과 속성들을 계시해 주십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시인은 하나님의 교훈을 받으며 그것 때문에 이 시인은 인생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새로운 성품을, 새로운 속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어떤 일은 반드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려주는 빛을 가지고 우리에게 들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앞에 아주 커다란 은혜의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여기 보면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라고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나팔’이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가 어디에 나오냐 하면 시편 119편에 보면 ‘내가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기이함을 보게 해 주시옵소서’ 하고 시인이 기도하는 장면에서도 이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 기묘한 것, 놀라운 것 그런 것을 총칭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행하셨던 크고 놀라운 기적이나 이적의 사건들 이것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인간이 알 때에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하는 지식을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통해서 알게 될 때에 그때에 이 시인들이 경험했던 인식론적인 충격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홍해를 하나님이 가르셨는데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으로 들어섰습니다. 양쪽에는 물로 벽이 서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기적을 사실은 들은 적도 없고 본적도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는데 그 놀라운 기적의 현장을 경험하면서 홍해를 건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다 건넌 다음에 찬송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두 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행하심입니다. 존재는 뭐냐면 ‘여호와 같은 신이 누가 있느냐’ 라고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그 탁월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구원을 행하셨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찬송의 제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봅시다 기적이 일어나서 그 갈라진 바다 사이를 건너가는 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어마어마한 충격이었지만 그것은 홍해를 건넌 다음에 잠시 후 애굽의 병거들이 뒤 따라 왔을 때 수장됨으로서 끝났고 같은 사건은 두 번 다시 되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사건을 통해서 더 놀랐던 것은 두 가지 ‘아! 이세상의 신들이 존재하지만 여호와와 같으신 이는 없다. 그리고 그 여호와가 우리를 위하시는 분이시구나’ 라는 두 가지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잊혀지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적이라고 하는 것, 놀라운 일이라고 하는 것, 기사라고 하는 이 ‘나팔‘은 두 가지 ’하나님이 정말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구나‘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위대한 기적이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의 구원과 관련이 있구나‘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언약한 바를 지키시고 자기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자기 이름을 위해 뽑아 내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입니다. 그것이 여기에 이야기 하는 ’기사‘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기사’라는 말은 ‘외적인 기적과 내적인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을 가로질러 있는 개념이다’ 이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인이 그렇게 하나님이 언제나 당신의 말씀을 깨닫게 하셨으므로 그 깨달은 말씀을 가지고 바깥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그것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존재와 성품의 의미를 연결하면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이 시인의 기쁨이고 행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의 참된 행복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먹고 마시고 예쁜 옷을 입고 큰 집에서 살고 하는 그것을 인생의 기쁨으로 삼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적절히 우리들이 그런 재화의 소비를 필요로 하지만 그러나 언약 백성들의 참된 기쁨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그 무한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한편으로는 받은 바 그 가르침을 사랑하는 많은 백성들에게 가르쳐줌으로 그들을 그 어둠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행하신 그 위대한 일들에 대해서 눈을 뜨고 하나님 말씀 의지하면서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언약 백성들의 행복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나 주위에서 보면 영혼의 부담감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치고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변화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복되고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보면서 감격하고 그리고 그것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지만 언약백성들은 그렇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매일 매일 알아가는 진정한 행복 속에서 그들이 주님을 기뻐하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