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3 팀실장 수련회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까지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시 71:18)
녹취자 : 유병화
몇 세쯤 되었을 때에 시인이 이 시를 지었는지 우리들이 판단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인은 자신의 장래에 대해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자기가 늙어서 백수가 되었을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말라는 기도였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역사에 친숙했던 이 시인은 젊은 날에는 하나님과 동행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 하나님과의 아름다웠던 동행에서 멀어졌던 구약의 많은 인물들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이 인생을 살면서 주위에서 성경의 역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주변에서 젊어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런 성령에 속한 생활을 하다가 나이가 든 후에는 육체에 속한 삶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중의 한사람이 자신의 전임자였던 사울이 아니었을까요? 젊어서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부르셨을 때에는 지극히 겸손하고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면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져 여호와의 신은 떠나고 그가 부르시는 악신이 그에게 임하여 비참한 인생을 마치는 것을 이 시인은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왕국을 강건하게 해 주십시오, 나라가 부강하고 번영한 나라가 되게 해 주십시오, 백성들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지도록 도와 주십시오 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인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그랬습니다.
늙어서 머리가 하얗게 되면 사람들이 버립니다. 그래서 자신이 잘 준비되지 않으면 그 때 찾아오는 정신적인 공황과 어려움들이 굉장히 커지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에, 현직에 있었을 때에는 사람들이 만나고자 하는 사람도 많고, 부탁하는 사람들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만, 머리가 하얗게 되고 현직에서 물러나게 되면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자기를 떠나는 것 같고 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 때에 파고들어오는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자신이 버려진 것 같은 그런 마음들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준비된다면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나를 버리지 마시며’, 히브리말로는 ‘나를 떠나지 마시며’ 그랬습니다.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시인은 알았던 것입니다.
존 오웬 목사님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하는 의미는 두 가지를 내포하는데, 첫째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찬양) 주 내안에 늘 계시고 나는 주님 안에 있어 저 포도 비유 같으니 참 좋은 나의 친구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는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요? 노력은 합니다. 그러나 항상 평화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왜 이 세상과 항상 평화를 누릴 수 없을까요? 설명을 하면 굉장히 길 것 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과는 항상 평화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노력은 합니다.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권면한 것처럼 ‘너희는 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과 화평하라’ 노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덕스러운 삶의 태도도 익혀야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도저히 평화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때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누리려고 애를 쓰면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지기 때문입니다.
(예화) 월요일 날 관상기도 발표를 하는데 한 2주 동안 죽다 살았습니다. 논문을 썼는데 50페이지 정도 썼습니다. 논문 쓰려고 복사해 놓은 것만 해도 천오백 페이지 정도 되었고, 어쨌든 최선을 다해서 썼습니다. 그랬더니 그 글들을 목사님들이 읽으셨습니다. 그러더니 몇 사람이 나한테 와서 이야기 합니다. 뭐냐면 ‘목사님은 전사이십니다.’ 그럽니다. 그게 무슨 뜻 입니까? 우리가 옳지 않은 것이 있으면 싸워야 합니다. 물론 그것이 혈과 육에 속한 싸움처럼 우리가 머리로 치고받고, 발로 배를 차고 이런 식으로 싸우지는 않습니다. 진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논쟁하지 않는 것은 진리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런 점에서는 우리가 항상 평화를 누리며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 세상과 항상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과 어떤 경우에도 항상 평화를 누리려고 하면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과 영원한 평화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노력을 합니다. 애를 쓰고, 평화가 우리의 부덕한 생활이나 우리의 이기심이나 이런 것들 때문에 깨지지는 않기를 우리는 바라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이교도들과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지만 완벽하게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과의 평화는 우리에게 더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분의 편에 서 있다는 확신, 그분과 나 사이에 거리낌이 없다는 확신. 내가 믿고 살고 섬기는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마음에 충분히 만족을 드릴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 분과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삶, 이것이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는 삶의 핵심입니다.
또 하나가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하는 것은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종교적인 만족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서 당신 자신의 존재의 영광에 합당한 것을 인간들에게 인정받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은 하나님께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인간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자기를 물질적으로 복 주시고, 하나님이 자기를 섬기시는 것 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되 백수가 되어서 나이가 많아 늙을 때까지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겠다고 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믿음생활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바라시고 원하시는 신앙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이 시인을 통해서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늘그막이 소원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보여 주는 것입니다. 노역이 아니라 경건한 욕망, 젊어서 함께 하시던 그 하나님이 나이가 많아 내가 늙어 백발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제 나를 더 이상 이용할 필요가 없어 버리고 떠나는 그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때에도 하나님이 나와 동행해 주시고, 더 큰 평화를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누리며, 그러면서 내가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을 이 시인이 꿈꾸며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이 많아 늙을 때에도 자기가 포기할 수 없는 일 한 가지를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아는 지식을 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백수가 되어 나이가 많으면 나라도 다스릴 수 없고, 예전같이 사람들에게 젊음의 기운, 패기, 젊음의 힘과 영광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이 든 후에도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자기를 위해 행하신 위대한 능력,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큰 권능을 회고하면서 하나님 앞에 이 놀라운 하나님의 힘과 은혜를 백성들에게 후대의 자손들에게 전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힘과 권능을 아는 지식이 어떻게 생겨납니까? 시인이 앞에서 고백한 대로 원수에게 에워싸여 고난 받을 때, 거기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큰 사랑 때문에 거기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사랑들이 생겨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때로는 원수들에게 에워싸이고 고난과 시련을 당하고 하는 이런 것들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소화하며 사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인이 있고 그 악인이 나와 관계를 맺고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나에게 커다란 고통이지만, 그러나 내가 그런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면서 괴롭힘을 당하면서 오히려 평화로웠더라면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깨달을 수 없었을 하나님의 큰 사랑, 그리고 악인을 징벌하고 당신께 피하는 의로운 사람들을 보호하고 갈 길을 보이시는 언약에 충실한 하나님의 성품들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깨달은 것들이 나에게 하나님의 힘에 대한 지식, 하나님의 능에 대한 지식이 되어서 끊임없이 역사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시련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육체의 질병이 생겨 사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힘들어 질 때, 그것이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나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본질이고, 나그네 된 나의 삶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가 이런 세상의 결함 때문이구나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깊이 의지하면서 아버지 앞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매 순간 이세상이 불완전함을 깨닫고, 그리고 그 모든 시련과 인생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찬란한 빛처럼 뿜어 알게 하시는 주님의 성품과 속성을 주목하면서 그러면서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 우리가 위로를 받고 그렇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힘과 능력이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주어서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그 주님의 지식 안에서 젊은 날에 누렸던 하나님과의 교제와는 비교될 수 그런 은혜 안에서 그분과 동행하면서 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행복이고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평생 내가 백수가 되어서 더 이상 나에게 배우러 오는 사람이 없어도 나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주님이 누구신지를 배워가고 알아가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행복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