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7.19. 새벽예배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많고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
(시 71:20)
녹취자: 박은희B
그 시인이 바로 그 앞에서 “주께서 대사를 행했으니 누가 주와 같겠습니까” 라고한 이 찬송에 대한 상세한 이유를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많고 심한 고난을 보이셨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이 고난을 보여 주셨다는 것이 아니라 언약백성들인 이스라엘에게 일어난 시인 자신을 포함한 이들이 겪은 많은 고난과 그리고 극심한 큰 고통, 이런 모든 것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커다란 섭리 속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칼빈 선생은 자신의 글 속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사의 원인이 되신다고 할 때, 우리는 먼 원인에서 혹은 가까운 원인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깝게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이 원인이 되지만 멀리 보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인이 됩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틀림없이 이 시인이 이스라엘 공동체와 함께 큰 시련과 환난을 당하고 그리고 고통을 많이 당하게 되었을 때에 그때에 그것은 이 세상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이나 혹은 환난, 시련 이런 것들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이 하나님의 품에서 모든 이 만물이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 아래 있다고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그 주님을 깊이 의지하는 마음으로 돌아보니, 이 시인의 마음속에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일어나는 그런 많고 심한 고난을 오늘 이 시인은 주님이 보여 주신 것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것들은 모두 주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그리고 나쁜 것들은 모두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겠지만, 우리는 좋은 것을 통해서만 좋은 것을 기대하지만 하나님은 나쁜 것을 통해서도 좋은 것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기에 주님을 깊이 의존하고 나면, 이 세상의 모든 하나님의 섭리가 하나님의 장중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일들이,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괴로운 일들이 이 세상에 일어날 때에도, 우리는 주님을 깊이 신뢰하고 그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이해할 수 있을 때만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이해 할 수 없는 환경이 펼쳐지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것이라는 신뢰 속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의지하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바로 신앙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인은 하나님이 영영히 그 많고 심한 고난 속에 시인과 언약백성들을 내버려두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런 많고 심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살리시고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덕을 입었다고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심한 고난을 보이셨지만, 거기에는 하나님 홀로 이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기는 하지만, 그 안에는 무대에 배우들처럼 많은 악역들이 등장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언약백성과 함께 고통을 받고 얼마나 많이 괴로웠는지 많고 심한 고난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시인을 포함한 언약백성을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두 가지로 살아나게 하셨는데, 한편으로는 죽음과 같은 그런 상황 속에서 그들을 섭리로서 건져주심으로 그들을 살려 내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영혼이 곤고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은혜를 부어 주심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살려내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매 순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속에서 이들을 끌어올리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섭리 속에서 이끌어 하나님이 이들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신다고 했는데, 이것은 음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스올이라고 히브리 성경에 나오는 이곳은, 샤알 청구하다라는 곳에서 나온 것인데, 아직 지옥이라는 개념들이 구약백성들에게 분명하지 않아서 이 스올은 인간이 죽은 다음에 가는 곳으로서 생기와 기쁨을 모두 박탈당한 음침하고 괴로운 곳, 그래서 아무 희망이 없는 절망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이 되었고, 그 장소는 땅 아래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음부로 번역된 이 말은, 언제나 올라간다는 동사가 아니라 내려간다는 동사가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땅 깊은 곳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그렇게 희망이 없는 절망의 상태, 아무 기쁨과 낙이 없는 좌절과 괴로움의 상태, 그 속에서 하나님이 다시 이끌어 올리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거기서 우리를 다시 이끌어 올리실 것입니다. 이렇게 시인이 하나님 앞에 찬송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언약백성의 희망이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섭리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이 떨어지고 나면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이 섭리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혼동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고 변함없이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시지만, 섭리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은 영원하지도 않고, 신실하지도 않고, 그리고 불변하지도 않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 자신의 섭리 속에서 떠나가기도 하고, 섭리 속에서 부여 받았지만 부여된 것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정성 때문에, 스스로 우리 곁으로부터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고, 섭리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입으며, 아버지께 부르심을 받았을지라도 때로는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랑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자신을 잊어버리고 주님의 섭리 속에 주신 것들을 더 많이 의지하고 붙들다가 신앙의 커다란 손해를 입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섭리 속에서 움직이는 모든 질서들은 주님을 의존해 있습니다.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만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 능히 할 수 있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떠났을 때에도, 내가 믿고 신뢰하던 사람들이 나를 배반할 때에도, 내게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것 같은 명예나 권력이 내게서 떠날 때에도, 오랫동안 내가 붙잡고 있을 것 같은 물질들이 내 손에서 흩어질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그 안에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에게 너무나 간절히 원하시는 것은, 그 하나님을 향한 의존의 마음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의존의 마음을 빼앗는 것은 그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사람을 너무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주님을 덜 의지했다면, 사람으로부터 실망하고 그리고 배신을 당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만약에 물질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덜 의지했다면 그 물질이 설령 주님이 주신 것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이 직접 거두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 큰 시련과 많은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그 깊은 어두움 속에서 건져내 다시 살리시는 것과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다시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경험했고 또 경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존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없는 것 같고, 이런 애매한 고난을 당할 이유가 없는 것 같고, 내가 선대한 사람들이 나를 배신하고 내가 공들여 행했던 일들이 수포가 되어서 내게 돌아올 때, 우리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거나 사람들을 미워하는 대신 자신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우리자신을 깊이 돌아보며 주님 앞에 회개하고 뉘우치고 그리고 내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그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릴 수 있는 슬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찬양)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나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쓰라리게 하심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 떠났을 때마다 당신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적절히 이세상과 사람에 대해서 실망하고 낙심하게 하심으로서 주님이 우리에게 많은 복을 섭리 속에서 내려주셔도, 우리로 하여금 조용히 하나님을 앙망하고 의지하며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살도록 매순간 우리를 이끄시고 도우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들이 비록 연약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가진 것 없고, 그리고 재능이 없어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순수한 언약백성의 마음속에서, 주님은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의 손으로 지은 커다란 건물과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이 쌓아올린 공적에 그 허다한 것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대신, 하나님은 오늘 참회하고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의지하는 한 사람의 마음 안에서 받으실 영광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당신도 우리에게 행복을 원하시지마는 우리의 육신과 이 세상의 모든 삶보다 더 뛰어난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 많이 사랑하는 아버지 앞에 살도록 날마다 우리를 부르시고 이끄시고 도우시는 것입니다. 이로써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