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자의 낙담1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시73:12)
녹취자: 정은숙B
히브리 성경에서나 히랍어 성경에서나 '볼지어다' 라는 간투사라고 하는데 이것이 도입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히브리말로는 '힌네'라고 하는데 이것은 무엇인가 괄목할만한 어떤 사건이나 사실을 도입할 때 사용하는 특별한 간투사입니다. 여기서 시인이 볼지어다, 힌네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뒤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 매우 중대한 어떤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자주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볼지어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으리니' 하는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탄생에 관한 이런 예언들, 이런 것들에 나오지요.
그러면 그 괄목할 만한 사실이 무엇일까요?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히브리어 성경에 복수로 나옵니다. 이들은 악인들이다.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사실이 뒤에 나옵니다. '저희는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항상 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영원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평안함이 얼마나 장구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마 시인도 잠깐 동안만 행복하고 평안하고 그 다음에 치열한 고통이 이어졌다면 이렇게 경건한 자로서 낙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볼 때 악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사람들을 마음대로 압제하고 학대하는 포악한 사람들이고 그 모든 잘못된 악행의 뿌리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고 알고 있는 하나님도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경건하게 살려고 애를 쓰다가 한순간 약하여 범죄 하거나 악에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뿌리까지 본래부터 악인이었던 사람들입니다. 악이 뼛속까지 깊이 배었고 가책도 없이 그 마음속에서 흥왕하여 마치 배설을 하듯이 마음속에 있는 그 악을 마음껏 삶으로 쏟아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놀랍게 마음으로는, 내적으로는 놀라운 평안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밖으로는 형통해서 재물이 점점 늘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경건한 시인은 깊이 낙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교회 안에 갇혀있는, 여기 이 표현대로라면 성전 안에 갇혀있는 경건이라는 것이 얼마나 약한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아마도 이 시인은 처음부터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의지하고 매일매일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사는 것은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믿었고 하나님이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을 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징벌 하신다 라고 하는 아주 간단한 신앙의 공식만을 붙들고 살아온 것입니다. 바깥 세상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이지요.
여러분들이 포로기 시대의 지도자였던 에스라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에스라서를 한 번 보십시오, 거기에 보면 9장에서 이 에스라에게 누군가가 전해줍니다.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 그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하게 되는데 악이 만연해 있다는 소식을 이 학사 에스라에게 전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힌 지 70년이 되어서야 포로 귀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포로 귀환이 이루어졌을 때 거기는 법적으로 강제적으로 차출된 사람들이 아니라 자원하는 사람들이 올라왔습니다. 70년 동안 살아왔던 삶의 본거지를 두고 상당수는 가보지도 못했던 예루살렘으로 왔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미주거 상태의 넓은 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민족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올라가면 많은 박해가 예상되는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곳에 가서 어떻게 땅을 찾을 것이며 또 무슨 일을 해서 밥을 벌어먹고 살 것인지 하는 많은 현실적인 난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올라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서에 보면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랬습니다.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에스라에게 들려온 소문은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는 악이 창궐하게 되었는데 율법을 어기고 이방여자와 혼인하여 첩을 얻고 하는 이런 일들이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 지도자가 되는 방백들 가운데 만연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에스라는 처음 듣는 소식이었어요.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그리고 성전에 올라가서 그 문에 엎드려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에스라의 각성이 일어나는 순간이에요. 자 우리는 지도자 에스라가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헌신했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몰랐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도자로서 매우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이 바로 이 세상 사람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성전과 접촉되어있고 한편으로는 당시 만연한 세속의 정신에 물들게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그 현실을 이해했어야 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감화를 입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는 이것들은 너무 훌륭한 것이고 그리고 이것들이 없이는 우리가 세상을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 많이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것이 소위 경건이라고 하는 것이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려고 했던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이 아닙니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특별히 지도자는 한편으로는 교회를 잘 알고 그리고 인간을 잘 알아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교리를 가르치고 성경의 진리를 가르쳐서 올바른 삶을 살도록 내면적으로 외적인 삶에 있어서 그들을 격려해야 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과 지도자는 비둘기처럼 순결해질 뿐 아니라 뱀같이 지혜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악들 그리고 이 세상이 어떻게 사상적으로 교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많은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악한 길로 데려가고 있는지에 대한 시대의 정신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교회와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성도의 내면의 세계 정확하게 말하면 용서받은 죄인들의 내면의 세계를 이해하고 한편으로는 이 세상의 정신을 아주 분명하게 이해해서 그래서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여 살도록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위해서는 무비판적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일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정신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어떻게 사람들이 악에 빠지게 되는가 하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일주일 동안 그런 세상에서 살다 오기 때문이지요.
아마도 제가 생각하기엔 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전 세계 최대 마약 소비국이 미국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미 족에서 생산된 그 어마어마한 양의 마약이 미국으로 들어와 유통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약물을 복용합니다. 미국뿐이 아닙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약물에 오염되어있고 호주도 예외가 아닙니다. 여러 해 전 호주의 집회에 갔을 때 공원을 산책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쇠로 만든 박스가 있고 그 위에 안내문이 붙어있는데 '주사기를 사용한 후에는 아무데다 버리지 마시고 이 통에 넣어주십시오'. 쇠통에 넣어서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재사용해서 혈액으로 인한 여러 가지 감염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굉장하구요. 우리나라도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엄청난 마약소비국입니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미국에 마약이 급속하게 퍼지기 시작한 시점이 있었습니다. 그게 언제인가 하면 90년대 중반에 헉슬리라는 나타나게 됩니다. 사상가입니다. 이 사람이 약물을 복용해서 행복과 희열을 느끼는 것이 사상적으로 정당하다 라고 하는 이론을 만들어서 이데올로기로 많은 젊은이들에게 전파합니다. 여기에서 힘을 얻은 젊은이들이 사상적으로 동의를 하면서 마약을 맞기 시작한 것이 미국에 약물이 확산된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그 사람 말에 의하면 이런 것입니다. 뭐가 나쁘냐 이미 선과 악에 대한 가치의 기준이 다 사라졌고 남은 것은 인간뿐인데 인간이 그것을 맞고 행복하고 어떤 환희를 느낄 수 있다면 무슨 근거로 그것이 나쁘다고 막을 수 있는가 하면서 이제 개인적인 환상주의 개인적인 쾌락주의 이런 것들을 부르짖게 되는 것이지요. 실제로 그 사람 자신은 약물중독의 삶을 살았고 유언도 자기가 죽을 때는 죽음의 괴로움을 맛보지 않기 위해 죽기 직전에 약물을 투여해달라고 유언까지 남기게 됩니다.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매우 중요한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비둘기 같은 순결함과 함께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에스라는 성경을 부지런히 탐구하고 백성들에게 가르쳤지만 자기의 시대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자기의 시대를 정확히 알았더라면 말씀의 지식이 풍부한 이 에스라는 그 백성들의 부도덕과 타락이 만연하기 전에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는 방책을 내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는 것과 함께 이 세상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항상 생각 없이 세상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세상을 생각할 수 있어야합니다. 정확하게 세상의 현실을 보고 현실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사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고 그 사상이 성경적으로 어떻게 되어있는지 비판하고 그 사상을 따라 사는 삶 보다는 이 성경의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자신의 실존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인은 아주 매우 낮은 수준의 경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도덕적인 부패 때문에 낮은 수준의 경건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이 세상 사람들의 번영과 형통 하나님 없는 평안이 경건과 경건한 사람들이 얻는 평안과 행복과 비교할 때 어떻게 다른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현저히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시인은 한 번 크게 넘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저는 이런 사람들을 교회에 신앙적인 분위기에서 길들여진 사람이라고 봅니다. 이런 사람들의 한계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은 종종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정말 경건한 사람인데 사업을 하거나 세상을 살아가거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아주 세속적인 사람들을 봅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비둘기처럼 순결한 신앙을 찾기는 하는데 뱀 같은 지혜가 없어서 개념이 없는 것입니다. 엊그제도 옆에서 전화가 왔는데 교인들이 아파트를 전도하다가 차를 뒤로 빼다가 부딪힌 모양이었습니다. 기스가 났는데 살짝 났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냐 하는데 가격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못 봤거든요. 그냥 가면되지만 뒤에다 내가 잘못했다고 써놓고 와야 되는데 이 사람이 연락이 오면 돈이 얼마나 들까 돈도 없는데 걱정이 된 모양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이 진리입니다."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그 진리를 따라 행동하겠다는 희생의 소명이 포함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낙태하지 맙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생명을 살해하는 것입니다." 이 명제를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고백하는 사람들은 낙태하지 않기 위해서 교회가 취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 기꺼이 헌신하겠다는 소명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 하고 정죄하듯이 "너 그렇게 하지 말아라."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경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어두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안주는 많은 것들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