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행하신 일 3
그의 맹렬한 노여움과 진노와 분노와 고난 곧 재앙의 천사들을 그들에게 내려보내셨으며 그는 진로 길을 닦으사 그들의 목숨이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생명을 전염병에 붙이셨으며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들의 기력의 처음 것을 치셨으나 (시78:49-51)
녹취자: 김유진
애굽에서 일어났던 심판적인 재앙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이 재앙의 천사들을 통하여 이 일을 하셨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돌보고 수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를 전달하기 위해 당신의 천사를 사용하셨습니다. 히브리서에 1장에서 보면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신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주석가들은 천사들을 통해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구절이라고 해석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49절의 천사들에 대한 심판적 기능을 행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보면 히브리서의 언급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맹렬한 노여움과 진노, 당신이 이 세상을 향하여 진노를 천사들을 통해 실행함으로써 형벌을 내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의 신앙에만 관심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전혀 모른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과 신학을 기준으로- 도 어느 정도가 지나쳐서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면 하나님이 역사에 간섭하셔서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개념 자체를 무시하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 보면 하나님께서 로마를 축복하신 이유 가운데 하나를 오현재의 시대로 제시합니다. 네 명의 지혜로운 왕들이 로마를 워낙 훌륭하게 다스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셨다는 말입니다. 그 나라에 신앙심을 보고 축복하셨다기보다는 비록 일반은총의 빛 아래서라도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 살아가는 나라들은 하나님이 어느 정도 복을 주셔서 이 세상에서 번영하게 하시는 반면, 악을 행하는 나라들은 하나님이 참으시지만 어느 시점에 가서는 망하게 하십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길 정도로 충분히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본성의 빛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비교적 가까이 다가가서 그 질서들을 적게 훼손하는 사람들이 있고 전면적으로 크게 훼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을 하나님이 각기 다르게 대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전에 애굽에 큰 패역과 악함을 하나님이 징벌하는 수단으로 열 개 재앙을 사용하시어 애굽사람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토속신앙을 무너뜨렸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강화시켰습니다. 다음 절에서 그들의 목숨이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하시고 생명을 전염병에 붙이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전염병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유적지가 발굴되는데, 그 왕국이 왜 멸망되었는지 설명이 안 되는 불가사의가 있습니다. 페루의 마추피츠의 유적지를 보면, 산 위에 어마어마한 유적지가 남겨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훼손이 안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나라가 어떻게 멸망했을까 생각합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유적지보다 정글 숲이 높아서 가려져서 잘 안보입니다. 중국에도 그런 유적지가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유적지의 멸망의 원인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전염병이라는 추정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갈 때, 약 86명 정도 갔는데 전염병으로 죽습니다. 지금은 백신들을 많이 발견해서 인간의 생명이 많이 증진되었는데, 당시에는 전염병이 병균과 미생물에 의한 것이라는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은 엄청난 재앙이라고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본문에서 전염병으로 사람들을 죽이시고 "진노의 길"을 내셨다고 적혀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살아남은 사람은 전염병에 걸리게끔 만드셨는데, 진노로 길을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길을 내어놓으면 유통이 활발해집니다. 진노의 길을 내셨다는 것은 물길을 내면 한쪽으로 쓸려 내려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애굽 나라에 진노의 길을 내셔서 당신의 분노를 집중하셨다는 것입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애굽의 모든 장자 함의 장막에 있는 그들의 기력의 처음 것을 치셨습니다. 노아의 자손 중의 하나인, 함은 애굽을 비롯한 아프리카에 있는 선조들이 되었습니다. 바로의 장자로부터 많은 짐승의 처음 난 것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강력하게 치셔서 저들을 사망으로 데려갑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처음'과 'the best'라는 말이 같은 말입니다. '빼냈다'라는 뜻입니다. 처음 난 것이 부모의 기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해서 처음 것을 중요시여깁니다. 처음 것들은 구별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처음 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장자의 축복은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이 있습니다. 애굽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처음 것은 죽어야했는데, 하나님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설주에 바르면 죽음의 사자가 와서 그 피를 보고 그 집을 넘어갑니다. '넘어간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어 유월절이라고 부릅니다. 원래는 모두 죽게 되어있는데 어린양이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처음 난 것들이 안 죽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지식이 있었고 그 지식은 은총에 기반을 두고 그 은총에 대해 믿음으로 순종한, 이 삼박자가 피를 바를 수 있었고 믿음을 보면서 죽음의 사자가 건너뜁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료하게 심어준 마음이 있는데, 너희의 처음 난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것들이니 처음 것들은 하나님께 바쳐져야한다는 신학적인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하실 것을 명백하게 예표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것을 치셨습니다. 처음 것을 쳐서 죽이셨다는 것은 나머지 모든 것에 대한 생사여탈권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큰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그 위대한 능력을 행사하실 것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백성뿐 아니라 경외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역사까지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 믿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할 이유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이 패역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구해야합니다. 하나님을 믿은 자녀들이 자녀답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이 땅이 패역합니다. 교회와 세상은 어떤 면에서는 각각 다른 나라에 속해서 대척점(對蹠點)이 서 있는데, 그것은 영적으로 본질적인 면에서는 세상이 섬기는 주인과 교회가 섬기는 주인이 다르고, 세상이 지향하는 바와 교회가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이 세상을 교회와 같이 만드시길 원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대척점에 서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총이 흘러가야할 곳이 이 세상이라고 생각하면 그 대척점만 강조해서 이 세상이 원수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정당한 뜻들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빛과 어둠에 대한 가르침이 절묘한 것입니다. 빛과 어둠은 대척점에 있지만, 두 개는 서로 상반하고 하나가 있는 곳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둠은 빛을 필요로 하고 빛은 어두움이 있을 때 빛임이 드러납니다. 그런 점에서 세상과 교회는 분명히 대척점에 서 있으면서 그 세상도 교회 만들기 위해 교회를 부르셨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세상을 선교적으로 끌어안으면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심하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포기하실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안 우리는 포기하면 안 됩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놓고 아브라함이 의인 오십, 사십, 삼심, 이십, 십, 오명만 있어도 살려달라고 간구했던 것처럼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에 있어서, 한쪽에서는 루터 전통으로 두 왕국을 가르치면서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대척점을 강조하고, 다른 한쪽은 극단적인 카이퍼리안 전통으로 마치 이세상과 교회 사이에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것 이외에 아무 구별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 둘 다 성경적으로 모두 치우친 견해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교회와 세상의 구별성을 뚜렷하게 생각하고 원리적으로는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미음의 대척이 아니라 - 다만 구분하고 그러면서도 결국 교회를 이 세상을 위한 하나의 밀알로 세우셨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세상을 위해 썩어질 때 이 세상이 선교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