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앙의 원인
그들이 그의 권능의 손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날도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 (시78:42)
녹취자: 김복녀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이 나오는데 42절은 불신앙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규명합니다. 그것은 기억과 관련이 있습니다. 히브리사람들에게 '자카르'(기억하다)는 단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히브리인들에게 기억은 단순한 상념이 아니라 마음을 장악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행하게 하는 힘 있는 정신의 작용입니다. 성경에 보면 '기억하다'라는 단어가 단순히 머릿속에서 기억하다는 뜻이 아니라 더 많은 경우에 '기념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인정하다, 찬송하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히브리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하다라'는 뜻이 단순한 사유가 아니라 매우 강력한 정신작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들이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신앙에 떨어진 것이 크게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 권능의 손을 기억하지 않은 것입니다. 둘째,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날을 기억하지 않은 것입니다. 같은 말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야드'인데 '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능력을 의미하는 은유로 자주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손이 누구 위에 있었다."하면 "하나님의 능력에 함께 했다."는 뜻과 같습니다. 히브리인의 사고에는 인간의 능력을 손을 사용해서 발휘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권능'이라는 말을 존재하지 않고 '손'이라는 말만 있는데, 손 자체가 힘입니다. 팔이란 단어도 똑같은 용법으로 사용됩니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냐?" '제로아'라는 단어인데, '팔, 손' 이런 것은 하나님과 능력과 권세를 나타냅니다.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는 구절은 선택과 능력이 함께 내포된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 능력의 손을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구원의 날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43절부터 길게 반복되는 내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킬 때 행한 큰 능력이 무엇인지 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십대 재앙을 골자로 해서 서술하기 시작해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신하는 삶을 살았던 가장 큰 원인은 그들이 잊었기 때문입니다. 잊어버린 것이 불신앙의 원인입니다.
신앙과 불신앙 사이를 생각해봅시다. 신앙이 없어지는 것은 특별히 어떤 일을 하거나, 적극적으로 노력해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내버려두어 경건한 자극이 없이 살면 저절로 믿음이 없어집니다. 구원받은 자의 경우 완전히 믿음이 없어지는 않지만, 현저히 믿음이 약해져서 그 사람의 인생을 규율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사랑입니다. 믿고자 하는 성향은 사랑하고자 하는 성향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저러한 일을 우리에게 행하실 때,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면 그분이 하시는 일을 다 몰라도 반드시 하나님이 선하게 내 인생을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게 되면 -믿음이 사라지고 나면-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고백할 수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고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사랑은 기독교 경건의 진수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보다는 신앙으로 이해됩니다. 내게 가장 나쁜 것처럼 보이는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분이 주권적으로 자기를 인도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신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산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중요한 표지입니다.
그러면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광야에서 하나님을 끊임없이 대적하고 원망하고 언약에 불성실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이었습니까? 이들이 하나님의 큰 능력, 그들을 구원하신 위대하신 능력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커다란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이 광야생활 내내,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재료였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건지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가나안에서도 하나님을 배반한 백성들을 징계하시고 붙드시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을 때는, 아직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이니까, 가나안 정복의 역사까지 기억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순종하고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던 역사의 한 토막을 기록해서, 후대의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들이 무엇을 찬송하고 기억하고 살면서 선조들이 빠졌던 불신앙에 범죄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교훈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해봅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당신의 구원의 능력을 출애굽에서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큰 구원의 능력을 출애굽에서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어느 나라에 대해서 징계를 보이신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애굽나라가 흔들려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구원받도록 놓아준 사건은 어마어마한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전대미문의 대재앙을 열 번씩이나 행하시어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능을 믿게 만들어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것을 계속 기억함으로써, 자기들이 하나님에 어떤 큰 은혜를 받은 자들이고 자기들이 주라고 부르는 분이 어떤 능력을 가지신 분인지 알고 신뢰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가운데 거하시는 분입니다. 이 찬양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이유는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을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이스라엘의 찬송의 내용 중에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은 단 하나도 업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바로의 손에서 건지셨나이다. "애굽의 나일 강을 피로 만드시고, 마지막에 애굽의 모든 것들 중 처음 난 것들을 모두 치시므로 바로의 마음을 녹이시고 우리를 해방시키셨나이다. 홍해에 직면했을 때, 그 물을 가르사 우리를 마른 땅같이 걷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 모두 아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모두 아시는 내용을 마음을 다해 찬송함으로써 주님께서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찬송하는 자들의 마음속에 구속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나타나고 그 속에 사실에 의해 장악되어, 그 은혜를 입은 자의 합당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심히 기뻐하시는 찬양입니다. 그 찬양이 하나님께 무슨 영향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찬양을 통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권능의 손과 구원의 날을 잊지 않고,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주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렇게 찬양과 말씀에 대한 깨달음, 무엇인가를 새롭게 기억하는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이러한 기억들이 우리 안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신앙을 유지하게 하기 위한 음미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찬송입니다. 찬송은 소리 내서 노래를 부른다고 찬송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만한 어떤 사실들을 묵상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훌륭한 찬송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억하다'라는 단어를 부정명령어의 형태로 많이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잊는다'에 부정어가 붙어서 '잊지 말아라'라고 쓰입니다. '기억하라'와 '잊지 말아라'가 함께 나옵니다. 잊는 것은 죄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것이고,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경건한 행위입니다. 기념하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모든 후손들이 기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면 절대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그 마음을 붙잡아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행동에 붙들어 매는 일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말이나 소가 얼마나 힘이 셉니까? 그런데 콧 둘레에 매달린 줄, 재갈에 매달린 줄을 낚아채면 커다란 몸을 일으켜 새우기까지 하면서 속도를 줄입니다. 작은 손 하나가 짐승을 그리하듯, 우리가 마음을 붙잡을 수 있도록 - 우리가 불경건으로 나아가고 불신앙으로 나아갈 때마다 -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을 공동체적으로, 개인적으로 기억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단속해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고통스런 나 자신의 상황을 생각할 때는 기도가 잘 안되어도 주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며 찬양하면 마음이 열리며 불신앙을 버리고 신앙을 주님을 붙들 마음이 떠오릅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경건에 이르는 기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