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과 성소를 택하심
또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며
그의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도다 (시78:67-69)
녹취자: 김유진
여기에서는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왕국이 분열된 가운데 어떻게 그 왕국을 보존하시고 보호하시고 당신의 언약을 어떻게 이어갔는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절에 보면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라고 되어 있는데, 이 두 지파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가장 강력한 지파였습니다. 열지파와 두 지파로 나뉘었으니까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이 영토로 보나 규모로 보나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찢어서 왕국을 가른 것은 정치적으로 보면 충분히 그럴만한 사유가 되었습니다. 솔로몬 때에 사치한 생활과 수많은 토목공사들로 민심이 많이 위반되고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그것을 왕이 치유하고 돌보하고 위로해야 했습니다. 이것을 품고 위로하고 다독여야했는데 르호보암은 신앙이 없는 왕이라서 그렇지 못했습니다. 신앙이 없어도 북왕국 지도자 여로보암은 세속적으로는 영명한 지혜가 있는 군주였습니다. 르호보암은 신앙도 지혜도 둘 다 없어서 바보처럼 더 강력한 철강통치를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아무리 많은 참모들이 있어도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왕 자신이었기 때문에 왕 자신이 없으면 안 됩니다.
지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부적인 지혜와 상부적인 지혜가 있습니다. 어떤 것들을 실행하는 구체적인 지혜가 있는데 이런 것은 빌려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상위로 올라가서 궁극적으로 그것을 해야 할지 말지를 판단하는 지혜는 빌려 쓸 수 없습니다. 자기가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것이지 그것을 받아쓸 정도가 되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전쟁이 났는데, 연평도 폭격 사건과 같은 사건 때에 대통령이 무마를 할 것인가, 방어를 할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무마를 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 무마해서 외교적으로 정치적으로 파장이 없게 할 수 있을지 지혜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하부에 있어서 물어보면 됩니다. 전쟁을 하려면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군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해야 할지, 말지 자체의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올 수 있습니다. 어떤 지혜를 빌려 쓴다고 할 때, 하부적인 지혜는 빌려 쓸 수 있지만 상부적인 지혜는 빌려 쓸 수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음을 일평생 운명처럼 짊어지고 삽니다. 성경은 이런 지혜를 운명처럼 우리에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도 지혜가 없는 사람이 지혜로워지는 것이 어렵다고 거듭거듭 말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워지는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지혜는 결국 가치판단 사물들의 존재의 질서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한 가치판단이나 사물의 존재의 질서에 관한 것들은 결국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하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의해 결정됩니다. 모든 사물들의 궁극적인 질서의 맨 끝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최고의 가치라는 명석판명(明晳判明) 판단에 의해 나머지 모든 것들이 자리를 잡고 위치가 정해집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의 유용성입니다. 비록 하나님과 똑같이 판단할 수는 없지만, 사물들의 질서를 나름대로 이해하고 국가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것 등 어떻게 이런 것들을 어떻게 적용하며 사는 가에 따라 가치가 결정됩니다.
몽테스키외(Baron de La Brde et de Montesqu 1689년-1755년)『법의 정신』(De L'Esprit des Lois préentéet annotépar Roger Gaillois, Gallimard Pléade)에서 국가에 법이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크게 4가지로 설명합니다. 전통적으로는 자연법사상(흔히, 국가의 법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면서 자연 속에 닮긴 법칙들을 이뤄가는 것이냐)이나, 공동체가 협정을 해서 맺는 것인가 하는 2가지 견해로 나누었습니다. 이 사람은 4가지로 나눕니다. 자연법 사랑, 실법 사상, 국가가 지향하는 공동체의 가치, 국가를 에워싸고 있는 상황 등 몇 가지의 조건에 의해 국가의 법이 결정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설명입니다. 그렇게 영명해서 국가 자체가 어떻게 존재해야하고 법을 어떻게 만들어야하는 판단은, 하나님의 경외하는 것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사물이 어떤 질서 속에서 위치해야 세상 왕국이 건전하게 성립되는가 하는 지혜가 없습니다.
분열되고 나서 여로보암 왕국은 강력한 국가를 이룹니다. 이러면서 종교적인 배교도 일어납니다. 세속적으로는 왕국이 갈리어질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보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만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정치와 더불어) 신앙을 생각해야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신앙이 없었기 때문에 막된 길로 갔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출범할 때 강력한 나라를 이루는 것 같았습니다. 귀족들이 여름별정과 겨울별장을 가지고 호강을 하고 수입품들을 가지고 물질생활을 하는 것들이 선지서에 나옵니다. 그렇게 부강했으나 이는 세속적인 시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유다지파와 시온 산에 있었습니다.
사실은 이스라엘이 교회의 모형이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이 영적인 집단은 세속적인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고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들이 강아지 모양으로 생긴 장난감과 진짜 개가 있다고 칩시다. 적절이 로봇기능이 있어 장난감이 짖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고 합시다. 진짜와 가짜와 모두가 문제가 생겨 정상적이지 않을 때, 둘을 고치는 방법이 다릅니다. 로봇은 장난감입니다. 수리하다 안 되면 버리면 되지만, 개는 살아있는 생명체니까 수술 후 어떻게 살릴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제 동생 친구가 동물을 좋아합니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도둑고양이를 살짝 쳐서 불쌍해서 동물병원에 데려갔습니다. 수의사가 수술비가 150만원이니 안락사 시키라고 했는데, 그 많은 돈을 지불하고 치료해서 집에서 키운답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이 세상에 있는 집단들에게 통용되는 그런 이론을 가지고 교회를 찢고 상처를 내고 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성경구절을 보면서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제가 언젠가 이런 구별을 설명했습니다. 기초가 다른 것은 이교(異敎)입니다. 기초는 같으나 다른 끝으로 잘못된 기초로 나아간 것 이단(異端)입니다. 기초는 큰 문제가 없으나 자기의 사사로운 견해 때문에 교회를 찢어간 것은 열교(裂敎)입니다. 열교의 죄는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이렇게 나라를 찢어 둘로 나누어버렸습니다.
세상적으로는 충분히 이유가 있었고 세상적으로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번성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지파, 시온 산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벌하셨을지라도 이스라엘을 찢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성소를 남왕국에 굳게 하시고 당신이 영원히 두신 땅처럼 성소를 두시고 그 한 성소가 이스라엘 전체의 신앙의 고향이 되게 하셨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성소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아무 곳에서나 경배 받지 않고 당신이 정한 곳에서 경배를 받으신다는 예루살렘 성소 중앙사상에 대한 콤플렉스를 못 버립니다. 히스기야 왕 같은 경우는 아주 신앙이 뛰어난 영명한 군주였습니다. 세속적인 면에서는 탁월한 군주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적인 지혜와 세속적인 통치의 지혜가 함께 겸비한 왕이 있을 때 왕국이 번영했습니다. 여로보암 같은 사람은 신앙은 없고 세속적인 통치만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와 정반대로 신앙적인 지혜만 있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이런 놀라운 역사 속에서 당신의 큰 역사를 이루어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성소를 향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여러보암은 단을 만들고 여기도 하나님이 세우신 성소다 하면서 토착화 신앙을 추진해서 결국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데려갑니다. 이런 역사를 보면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은 변함없었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불신앙으로 살고 악을 행한 것에 대해 적절이 징계하시면 그 그루터기를 가지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마지막에는 밀알 같은 이스라엘을 썩게 해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태어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