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회중을 기억하소서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시74:2)
녹취자: 임종찬
원수들에게 짓밟히고 있는 상황에서 시인이 하나님께 탄원을 올리는 기도의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가 언제 쓰여 졌는지 그리고 여기에서 ‘주의 대적이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습니다’ 라고 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바벨론에 의한 멸망을 의미하는 것인지 또 다른 영적이고 도덕적인 의미에서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결론을 내리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 하나는 이 시인은 나라의 커다란 환란과 시련이 성소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들을 오늘 파악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은총을 거두신 것과 성소가 더럽혀 진 것을 밀접하게 연결시키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우리를 향한 진노를 거두어 달라고 탄원하는 장면들이 종종 성경에 등장합니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범죄 하였기 때문에 강력하게 그들을 징계하실 때에도 이런 기도를 올렸지만, 많은 경건한 성경의 인물들에게는 하나님이 은총을 예전과 같이 베푸시지 않는 것 자체가 진노의 표식이 되었기 때문에 오늘 이 시인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소가 더럽혀지고 나라가 침략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커다란 진노라고 믿었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1절에서 간절히 주님의 진노의 연기를 바라시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탄원을 올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언약백성으로 삼으시고 지금까지 지켜오셨는데 이런 시련과 환란을 당하고 나라는 위기에 처하고 성소는 더럽혀지게 되었을 때에 이 시인은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누구인가 하는 것을 상기시켜드리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탄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옛적부터 하나님이 얻으신 백성입니다. 여기에서 ‘얻었다’라고 하는 의미는 ‘낳았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와 유사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낳으셔서, 낳았다고 하는 것은 ‘언약관계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었던 백성들인데 언약관계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으신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고 또 구속하셨다고 했습니다. 구약에서 구속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많은 의미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신 출애굽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에 있는 일차적인 그림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건져내시고 그 일을 위하여 어린 양을 희생의 대가로 치르시고 그리고 모든 환란과 위협으로부터 하나님이 건져내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정성과 공력이 들어간 민족입니까’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구속의 개념과 ‘하나님 앞에 보배로운 민족이다’라고 하는 이 개념은 동전의 양면처럼 등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건져내어 구속하신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매우 소중한 백성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셨습니다. 기업이라고 하는 것은 예전에 유산입니다. 대부분이 땅입니다. 땅에서 많은 소득이 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구속하셔서 기업으로 삼으시니까 거기에서 많은 열매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장에서는 그것을 의와 공평의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의와 공평의 열매가 맺힘으로써 마치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 것처럼 의와 공평의 열매를 통해서 온 나라들이 다른 모든 열방들이 의와 공평의 신학적인 의미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불의하게 살고 그리고 공평한 삶을 살지 않고 자기 이익에 치우친 삶을 살면 형통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데 왜 이 사람들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의롭고 공평한 삶을 살까하는 의문이 드는데 그것을 깊이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은 당신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입니다’라고 주님 앞에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내용 중 주님이 모르시는 내용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시인이 이렇게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희미한 기억들이 새로워진다면 하나님이실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이 이미 알고 있으신 성경적인 내용들을 하나님께 상기시켜드리는 것을 매우 기뻐하시고 이것은 일종의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주님을 상기시켜드리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이유는 마음을 쏟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상기시켜드리는 이 기도는 사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라기보다는 늘 이런 사실을 잊고 사는 이스라엘 백성 자신, 기도자 자신의 마음을 일깨우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당신을 상기시켜드리는 작업들을 매우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감사 속에 과거를 향한 회고와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주의 거하신 시온산도 생각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나오는 주의 거하신 시온산, 혹은 주가 거하시는 예루살렘, 주는 이 성막에 계십니다. 혹은 여호와는 성전에 계시니 천하는 그 앞에 잠잠할지어다 등등의 성경구절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이 거기에 본질로서 거하신다 라기 보다는 하나님이 매우 특별한 관계를 맺으시고 그들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갖고 계신다 그래서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교통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주기도문을 시작하면서 설교하였듯이 하나님은 이 세계에 계시지만, ‘계시다’는 의미가 물질이나 영혼이 이 세계 안에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계신 것은 아닙니다.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 세계 안에 계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물질과 영혼을 보는 관점을 가지고 ‘하나님이 계시냐’라고 말할 때에는 차라리 없다고 하는 편이 훨씬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물질의 길이를 시간의 길이에 아무리 대입을 시켜도 연상이 안 되듯 물질과 만물이 세계 안에 있다는 개념과 하나님이 계시다는 개념은 아무리 대입을 시켜도 연상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계에 비교할 수 있는 사물이 없기 때문에 이런 말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들보다 우리와 가까이 계시며, 또 하나님은 모든 만물이 있는 것처럼 이 세계에 계신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 모든 사물보다 어쩌면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 영혼에 가까이 계신 분이시며 동시에 이 세계의 아무데도 계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시온에 거하셨다’라고 하는 것은 시온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맺으시고 그 시온에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교통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디든지 안 계신 곳이 없으신 하니님이시기 때문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의 성막 위에 혹은 지성소 안에 계시다 할지라도 거기 계시기 때문에 다른 곳에 안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고 보면 ‘주님이 성막에 계시다’라고 할 때 그것은 그 성막 안에서 자기의 백성들과 특별히 교제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스라엘 백성답게 만드는 정수에 속하는 종교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외곽으로부터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는 데, 마지막으로 나온 그 기적이 바로 시온이고, 시온산보다 더 들어가는 것이 성소입니다. ‘그 시온산도 생각하소서, 기억하소서’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생각한다’라는 단어는 ‘사랑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시편 8편에서 인자가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십니까 하면서 감격할 때, ‘생각하다’는 ‘사랑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깊이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 자체가 커다란 감격이 되어서 밀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주의 거하시는 시온산을 생각하시옵소서’.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시온산에서 당신의 자락을 펼치시고 이 나라를 통치하시기로 하신 것을 기억하시옵소서’ 하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멜리리즈 크라잉이라고 하는 학자는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세 가지 큰 사명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사명은 하나님을 향한 경배자의 사명입니다. 이것은 예배와 성결로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제위적인 사명입니다. 즉, 인간의 가장 중요한 소명은 하나님을 향한 경배자가 되는 것이고, 이것을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정말 진실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드리기에 합당하도록 자기를 성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명은 성소를 지키는 사명입니다. 이것은 교회적인 사명인데, 한편으로는 교회를 순전하고 순결하게 지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를 번영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편으로는 자신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진리적으로 순전한 사람이 되어서 교회를 깨끗하게 보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교회가 번영하도록 이바지 하는 것, 즉 영적인 번영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이 영적으로 번영하는 교회를 통하여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십니다.
세 번째 사명은 문화적인 사명입니다. 이것은 노동과 선교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선교되어서 주님께 왕으로서의 주권을 인정하며 무릎을 꿇기 전에는 절대로 이 세계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자신들이 모든 노동과 봉사를 통해 이 세계를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을 알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참된 경배자가 되고 성소를 지키는 자가 되고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살아가는 이것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심축이 되어야 하고, 이 시인은 바로 이런 중심선상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시온산과 그리고 황폐하게 된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탄원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