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하시는 하나님
회오리바람 중에 주의 우레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취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첩경이 큰물에 있었으나 주의 종적을 알 수 없었나이다. 주의 백성을 무리양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시77:18-20)
녹취자 : 이경순
계속해서 시인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안에 나타난 그분의 위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위엄을 노래하는 이유는 바로 은총과 자비가 사라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전에 행하셨던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이 자연의 모든 세계를 다스리는 그 큰 능력과 권세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고 이 세계를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위로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회오리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고 번개가 세상을 비추고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습니다 라고 노래합니다. 이것들 중 어느 것도 인간이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욱이 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자연속에서 이런 이상 현상들이 나타날 때에 거기에서 그들은 그 하나님의 이 세계에 대한 간섭 그리고 그분의 마음에 있는 감정들을 읽는데 있어서 훨씬 더 직접적이었습니다.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큰 바람이 일어나서 온 땅이 그 폭풍 속에 휩싸이고 그리고 하늘을 울리며 커다란 천둥소리가 들려요. 그러고 나면 얼마만큼 시간이 흐른 다음에 땅이 흔들리고 움직입니다. 그리고 번개가 세상을 비춰요 이런 모든 것들을 보면서 당시에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해서 무엇인가 당신의 분노와 위엄과 권능을 나타내 보이신다고 믿었습니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고 곧은길이 큰물위에 있으나 발자취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예요. 배가 지나가는 연상을 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위대한 경륜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죠. 바다 위나 혹은 하늘위에는 표지판도 세울 수 없고 줄도 그을 수 없는데 아주 또렷하게 길이 있습니다. 밤에 학의 천에 산책하러 나가보면 장관입니다. 한 20키로나 30키로 사이를 두고 비행기들이 일렬을 지어서 똑같은 항로로 이동을 해요. 사실은 미국의 시카고같이 비행기가 엄청나게 많이 뜨는 데서는 줄지어서 정말 내려오는데 비행기를 보는데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요. 우리나라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인천공항이 7년 동안 세계1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일본으로 가는 사람조차도 대부분 한국을 경유해서 사실상 인천공항이 아시아의 허브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수많은 비행기들이 오는데 같은 항로를 따라서 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때는 눈여겨보았어요. 제가 4대까지 보았어요. 저 끝에 한 대가 지나가고 그 다음 그 다음 그 다음 4대가 쭉 지나가면 뒤에서 계속 줄지어서 수많은 비행기들이 따라와요. 신기한 게 뭐냐면 비행기하고 부딪힐 듯이 가로질러서 가는 비행기들이 있어요. 그것은 고도가 틀려요 정확하게 오는 비행기는 고도 몇에 날아오고 그담에 가로질러 가는 비행기는 고도 몇으로 가라고 항로가 다 되어 있는거예요. 바다에도 마찬가지에요 해도가 있어서 정확하게 가는 길이 있습니다. 잘못된 항로로 들어서게 되면 암초를 만난다든지 여러 가지 많은 위험이 있기 때문에 최적의 항로를 그어 놓은거지요. 그러나 우리 일반적인 사람들은 알 수가 없죠. 허공에 아무데나 가면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항로를 따라서 움직이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주의 길이 바다에 있는데 큰 길이 물 위에 있는데 문제는 주님이 어느 길로 걸어가시는지 사람들이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이때 사람들도 일정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뜻은 이 세계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반드시 하나님의 길이 있고 하나님은 반드시 그 길을 따라서 당신의 일을 행하신다고 굳게 믿었는데 문제는 그 발자취를 알 수가 없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지만 그 경륜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이 감추어져 있는가 아직 지나가지 않은 길은 가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가 없고 지나가신 길은 지나갔으나 마치 그것은 바다위에 배가 지나가고 나면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또 다른 해석을 요구하지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계시는 드러난 하나님의 뜻이고 경륜은 섭리는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이에요. 그것들을 시간이 지나고 믿음이 생기면서 하나씩 하나씩 마치 두루마리가 펼쳐지면서 그 그림이 전체가 드러나게 되듯이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인도하시는 것이에요. 시인이 바로 그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이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19절에서 주의길이 바다에 있고 곧은길이 물위에 있으나 발자취는 알 수 없었습니다. 비록 이렇게 알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어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때로는 원수들에게 핍박도 당하고 고난도 겪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계획은 반드시 선하신 하나님의 계획이시라는 것 그래서 이해할 수 있을 때뿐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상황에서도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따를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을 향해 보이는 그 의존과 그리고 하나님을 따르는 그 복종에 배반하는 일을 하나님은 행하실수 없어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이예요. 때로는 자기의 삶속에서 떼어버리고 싶은 그런 고난의 때가 있고 또 잘라내 버리고 싶은 그런 시련의 때가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어려운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당신의 놀라운 뜻들을 이루시는 것이죠. 우리는 고난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당할 때 ‘아 하나님의 은총을 다하였는가 ,하나님은 이제 나를 버리셨는가 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때에라도 당신의 탁월한 경륜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인도하시면서 당신의 길을 따라서 걸어가게 하시는 거죠. 만약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면 믿음이 무슨 필요가 있을 것이고 만약에 믿지 않는다면 이렇게 죄 많고 연약하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교만한 인간들의 세상에 살면서 주님을 의지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영화 이후에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한이고 인간은 유한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어요. 그러면 그 하늘나라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의존하게 되는 것은 틀림이 없어요.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그 하나님을 의존해야 될 필요성들이 훨씬 더 많아지는 것이죠. 왜냐하면 죄가 결국은 무엇입니까 인간을 교만하게 하는 게 아닙니까. 죄가 들어오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최고의 존재이신대도 하나님보다는 내가 더 높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이라고 말해도 나는 하나님의 생각과는 다르다고 판단해요.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를 복종시켜 나를 경배하라고 말해도 우리가 죄에 붙잡히면 하나님을 굴복시켜서라도 우리를 위해 봉사하게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 것이 이세상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일부러 모든 것을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시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야지만 그래야지만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갈 그런 마음과 의존의 심정을 품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생활이라는 사실을 이 시인이 이 커다란 시련과 원수들로부터의 고난 거기로부터 마치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신 것 같은 반기감 속에서 거기에서 이 신앙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사람은 고난과 그리고 큰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새롭게 배워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사 누리게 하셔도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발견해 나가는 일에 실패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 인간은 좋은 것을 통해서만 좋은 것을 받으려고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나쁜 것을 통해서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셔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나쁜 일이란 일어날 수 없는 것이죠. 그러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 이것을 그 큰 위엄과 능력을 원수들에 대해서는 진노로 자기의 사랑은 백성들에 대해서는 당신의 선하심을 이루는 방법으로 사용하시는 것을 이제 깊이 경험하면서 그러면서 이 시인이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었던 것이지요.
사실은 이 시의 결론은 20절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백성을 양떼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렇게 노래하는 겁니다. 처음에 고민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죠. 위기를 만난 거예요. 역경을 만났어요.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큰 괴로움을 느끼면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는가. 의심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을 지켜 오신 역사를 회상하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고 위기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지시기 위해서 당신의 큰 위엄과 능력을 행하신 위대한 증거들을 보았어요. 그것을 모두 경험하면서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다시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선하시고 위대하신분이시라는 사실을 아주 절절하게 느끼면서 그러면서 이 시인이 다시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된 거예요. 마지막 자기의 백성들을 버리지 않고 지키신다는 아주 놀라운 증거를 마지막으로 노래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양떼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양떼는 음료를 공급해주고 의복를 공급해주고 육류를 공급하여 식생활을 해결하게 해 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죠. 그리고 이 양의 특징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부터 인간을 의지하면 살도록 창조하신 짐승 이예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는 나의 양떼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너희는 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창조된 존재들이다 그 뜻이에요. 인간 모두가 그러해요. 그런데 언약백성은 그 사실을 안 사람이에요 계시를 통해서,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또 몰라도 뭔가 절대자를 의존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되신 신의 시기거든요 그런데 이것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서 사라질 수 없어요. 그런데 그 의존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주셨어도 참된 언약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그렇게 의지해야할분이 바로 이스라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머지들은 몰라요. 그래서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고 교만하게 살거나 혹은 어떤 사람들은 잘못된 것들을 의지하는 것이죠. 최근에 있었던 무슨 기계교 사건 같은 것도 그런 거잖아요. 한아이가 공부를 아주 뛰어나게 잘하고 자기아이가 계속밀리니까 그 어머니를 움직여서 자기 명령에 복종하게 하는 거예요. 아이들도 죽이고 그래서 문자가 오면 그것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큰일날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예요. 그러면서 인간들이 다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교만하려고 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누구든지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면 거기에 복종하고 노예처럼 살고 싶은 본성이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올바로 찾지를 못하는 거예요. 오늘날에 젊은이들이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나 이런 사람들에게 보이는 열광이라든지 미숙한 사람둘이 정치인들에게 보이는 열광과 복종의 감정같은 것들이 이런 것들의 표현 이예요. 그 결과는 아름다울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복종하고 굴복해야 할 하나님께 복종하는 대신 그것을 다른데 굴복하고 복종하면서 살아가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주님 의지하며 살아가야할 양 때 같은 절대적 의존의 존재로 만드신 것에 대한 배신이라 이거죠. 그러면서 이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공동체 속에서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속에서 그래서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을 주셔서 그 지도자들로 당신의 양 때들을 인도하시고 그들의 손으로 양떼를 인도하여 당신의 뜻을 따라가며 살게 하셨아오니 나는 그 공동체속에 한지체로서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은총이 다하였는가. 이제는 하나님이 나에게 자비 베푸시기를 잊어버리셨는가? 이제 나는 끝났는가 라고 하던 나의 모든 고백이 사실은 불신앙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백성을 향한 주님의 자비와 사랑은 끝나지 않습니다.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은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라는 노래를 부르며 이 깊은 갈등과 고통을 마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큰 영광과 은혜를 따라서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이렇게 범사에 주님을 의지하며 살 때 고난과 시련을 당하거나 박해를 당해도 우리는 오히려 그 속에서 자기의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를 의지하게 되는 것이죠. 특별히 교회 속에서 이것들을 깊이 깨달으면서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에 부어주시는 은혜는 아들에게 부어주시는 은혜고 아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에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고 거기에 속한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 무한한 은총과 자비를 덧입는다 하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