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기이한 일을 잊을 때 1
“에브라임 자손은 무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율법 준행을 거절하며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과 그들에게 보이신 그의 기이한 일을 잊었도다”(시78:9-11)
녹취자: 전병선
오늘 읽은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당부하신 말씀 즉,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하는 계명을 어겼을 때에 어떻게 되는지를 역사적인 실례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나오는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가운데 한사람이고 여기에서 유력한 이스라엘이 지도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에브라임이라고 하는 말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북왕국 이스라엘 전체를 애칭처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야곱이라는 말이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유다사람 전체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 에브라임은 남왕국과 북왕국이 갈라졌을 때 북왕국에 속했던 가정 대표적인 지파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제유법적으로 이 에브라임을 북왕국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합니다. 갈라졌을 때 사실 남왕국은 두 지파 밖에 안됐고 북왕국은 열 지파나 되었기 때문에 꾀 강성한 나라를 이루었고 여로보암이라는 유능한 왕이 나라를 다스려서 이 나아가 상당히 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무기도 갖추고 활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무역도 잘해서 부강한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이들이 물러간 전쟁의 날이 어느 시기였는지 이 짧은 구절을 통해 다 예측할 수는 없지만 아마 두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강한 나라였던 북왕국 이스라엘은 무기도 갖추고 나름대로 외국과의 전쟁에 대비했지만 막상 전쟁에 나간 날에는 패배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레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율법을 준행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놀라운 증거입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훌륭한 표였고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그들이 국가적인 어려움을 만나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붙들고 계심을 보여줬고 때로는 왕에 대한 하나님이 호불호를 전쟁에서 이기고 패배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 자손들이 이 세상에서 모든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국력을 갖췄다 할지라도 결국 전쟁의 날에는 패배하고 말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단지 이 세상의 나라의 경영의 원리와 똑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나라가 세 가지를 잘하면 강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백성들을 잘 먹여 살리고 둘째는 백성들을 잘 먹여 살리는 강한 경제력 그리고 어떤 외적의 침입을 막을 있는 강한 군사력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른 나라들과 원만한 관계를 갖는 외교력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있으면 강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의 국가에 와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이 세 가지를 기본적으로 훌륭하게 하면 나라는 강성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은 그것만 가지고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나라를 통해서 당신이 이 나라를 통치하는 실질적인 왕이시라는 것과 이 백성들이 당신을 전심으로 의지하며 살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는 것들에 대해 보여주고 싶어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하나님은 이스라엘 같이 불순종하는 나라가 강한 군사력과 강한 경제력을 갖고 있을 때 오히려 패배하게 하심으로 지각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가시면 결국 우리의 모든 힘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심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에브라임이 전쟁에 진 것에 대해서 다양한 평가를 내릴 것입니다. 세속의 정치가들이나 전쟁전문가들이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전쟁에서의 패배의 원인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율법을 준행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시인을 통해 바라보시는 역사에 대한 판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을 바라보는 견해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견해는 이 세상 속에 있는 것과 다릅니다. 나라를 개인으로 축소해서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행복하고 안전하여 다른 사람에 의해 자신의 행복을 침해당하지 않고 산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자기를 지킬 만한 어느 정도의 권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권력이라는 것이 사회에서 높은 지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서 자기를 존엄한 인간으로 인정해주는 법적인 보호라던가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르네상스시대에 이탈리아의 사상가였던 피코 미란돌라(Giovanni Pico della Mirandol) 같은 사람은 자기의 책속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예전에는 중세시대에는 가난하고 후진하게 사는 것을 교회에서 최고의 덕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르네상스가 되면서 미란돌라를 기억한 많은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형질적인 육적인 차원에서의 존엄성이 심한 경제적 궁핍 속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노예와 같은 삶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농장 같은 것을 중심으로 하는 농노비의 경우, 소유가 없음으로 말미암아 토지를 중심으로 예속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생각들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근대사상이 출발하는 증거입니다. 우리에게는 경제적인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권력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지내는 많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 사는 것, 물론 여기에는 학식이나 많은 것들이 포함되겠지만 어느 정도 인간적인 삶이 보장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세 가지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애를 씁니다. 오늘날 나오는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세 가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돈을 이렇게 벌어라, 너 자신을 지켜라, 어느 정도 지위를 상승하고 육체의 질병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방법들을 터득하고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것에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인간의 관심사라고 하는 것이 자신의 편함과 행복 이것이 퇴고의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인가 우리의 삶에 있어서 패배했을 때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하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라고 생가각하는 것은 에브라임이 가지고 있었던 인생과 국가의 관한 개념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는 때가 있는가하면 질 수없는 전쟁인데 지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정복 초기에 보여주십니다. 대표적인 게 여리고 함락입니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인데 창 한번 쓰지 않고 하나님이 이기게 하십니다. 그런가하면 그보다 아주 조그만 성 아이성의 전투에서는 오히려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을 패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언약을 지키지 않고 율법을 준행하기를 거절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백성이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고 율법을 준행하며 살아야 하는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지키지 않고 율법을 준행하지 않았을까?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을 11절에서 보이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것과 그들에게 보이신 기이한 일을 잊었더라” 여기서 ‘기이하다’고 하는 것은 기적적인 일입니다. 이것들은 신약성경에 ‘싸우마시온’이라고 나오는데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표적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적이 일어나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베푸신 목적이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게 하기 위해서 베푸시는 기이한 것들입니다. 시편 119편에 ‘나의 눈을 열어 주의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 말씀 안에 있는 기이한 것을 보게 되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갖게 만들어주는 그런 종류의 기이한 것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하고 간직하며 살아야 되는데 잊은 것입니다. 그래서 잊어버린다는 것은 히브리말로 ‘샤카흐’라는 것인데 ‘자카르’라는 단어는 ‘기억하다’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샤카흐는 불신앙하고 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잊었다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기념한다는 뜻이 되는데 기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예를 들면 내가 이런 것을 선물 받았다면 이것을 보면서 ‘아무개가 이 좋은 찬송가를 선물했구나.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을 까? 정말 나를 향한 마음이 따뜻하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보고 싶다. 그를 만나면 정말 잘해줘서 내게 행한 덕을 갚고 싶은데.’ 이런 것이 바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념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런 것이 신앙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기억한다는 단어가 그렇게 간단한 단어가 아닙니다. 깊은 히브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똑같은 것이 ‘너희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던 예스그리스도의 성찬의 말씀도 똑같이 구약과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잊었다는 것을 우리가 살아가면서 단순히 잠깐잠깐 잊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잊었다는 히브리단어는 마음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가 너를 잊었다.’는 것은 굉장히 커다란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내가 어찌 너를 잊겠느냐.’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의 커다란 자비와 은총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호세아서에 보면 나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잊어버렸다는 말씀은 철저하게 하나님이 행하신 이로가 위대한 일들에 대한 믿음을 철저하게 저버리고 불순종의 길을 걸어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잊어버린 그것이 바로 언약을 지키지 않고 율법을 지키지 않도록 만들었고 그것은 결국 전쟁에서의 패배를 가져오게 만든 것입니다ㅣ.
삶속에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북돋는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모든 힘의 근원입니다. 마치 우리들이 새벽마다 제가 하는 일이 있는데 새벽기도 종이 울리고 나면 나올 때 핸드폰의 뚜껑을 열어서 밧데리를 갈고 나옵니다. 그렇게 해야 하루를 쓸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모르고 나오면 오후 쯤 되면 삐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과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당연히 전원이 없으니까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 하나님으로부터의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이 채워지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하는 것, 실제로 그렇게 실천적으로 살아가는 것, 이게 사실은 무신론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고백하지만 그렇게 실제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당신을 기억하시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다 아는 이야기인데 하나님이 그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건지셨습니다. 하나님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광야를 지나 우리를 먹이고 마시게 하셨습니다. 바산의 왕 시혼과 옥을 깨트리고 가나안의 족속들을 멸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다 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서 매우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서 언약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기념하는 가운데 생명의 놀라운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이진 않습니다. 그냥 그 세 가지가 있으면 행복한 줄알고 하나님 덜 의지하고 세 가지가 떨어지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여유가 없어서 하나님을 안 찾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러면서 풍부하면 풍부한대로 하나님을 떠나고 결핍하면 결핍한대로 하나님을 떠나면서 그렇게 인생을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내일매일 하나님이 우리의 어두운 눈을 씻어주셔서 그것을 밝히 보고 그래서 이러한 생각에 흔들이지 않는 정신의 명료함을 유지하는 일이 너무 필요합니다. 이러한 판단력의 명료함은 마음의 은혜의 상태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하나님을 잔정으로 사랑하고 은혜로운 정신 속에 있으면 판단이 비교적 명료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 판단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모든 작용들이 어지러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이지만 매일매일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그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것을 항상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