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궁정에 거함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9-10)
녹취자: 김명진
이어서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고백과 탄원을 함께 올리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라고 말합니다. 히브리말로 ‘마겐’이라고 하는 방패에 대한 이야기가 성경에 특히 시편에 많이 나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방패는 원거리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거나 혹은 가까운 거리에서 후려치는 칼을 막는데 사용하는 방어용 무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방패이시다’라는 것은 모든 환란과 시련, 악한 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우리의 방패이신 하나님이여”하는 것은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언약백성들은 이 세상의 많은 환란과 시련으로부터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시인은 이 사실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것을 막아주시고 지켜주신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고 이것이 고백 속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때로는 이 세상의 불완정성 때문에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시련을 만납니다. 또 부분적으로는 우리 자신이 항상 올바르지는 않아서 우리 자신의 잘못 때문에 시련과 고난을 당합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방패가 되어서 지켜주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시인들은 곳곳에서 자기의 방패가 되어 주신 하나님을 찬송했고, 노래했고, 하나님의 보호해주시는 은총을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최고의 표현 중 하나로 이해를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우리의 방패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어서 시인은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하고 말합니다. 당시에 기름 부은 사람들은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 이렇게 세 종류의 사람들이었고 여기서는 특별히 아마도 압살롬의 반역을 받아서 망명길에 오르고 있는 다윗 왕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왕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셔서 세우신 왕이 반역을 당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의 얼굴을 살펴봐 주옵소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얼굴을 직접 바라보신다는 표현이 성경에 여러 번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의 은유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실 때 두 가지 목적입니다. 악인에게는 최고의 무서운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당신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친밀함과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하고 시인이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시련을 당하고 있는 왕을 친근히 여기셔서 이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달라는 간절한 호소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이 얼마나 왕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 앞에서 은총을 힘입어 살기를 바랐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어서 10절에서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 집 성전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이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서 사는 행복의 정체에 대해 말합니다. 주님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궁정은 당시로 말하면 성막입니다. 아직 솔로몬 성전이 지어지기 전이었습니다. 속은 화려하지만 겉은 물돼지 가죽으로 덮어놓은 텐트에 불과합니다. “그 하나님의 성막에서 하루를 지내는 것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을 지내는 것보다 낫습니다.”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는 행복한 생활의 비결이 무엇인지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이 시인이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 이유는 주님의 궁정이 화려하다든지 훌륭한 음식을 먹는다든지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성소에는 주님의 임재,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기 때문이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행복한 삶은 단 하루가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큰 영광을 누리며 3년을 사는 것보다 훨씬 더 복되고 즐겁다는 사실을 이 시인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사는 성도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이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집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 쉽게 말하면 악인의 장막에서, 다시 말해서 크고 화려하고 영광이 넘치는 큰 집에서 호강을 하면서 사는데 그것이 “악인에게 덕을 입어서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 것 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의 집 성전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고라의 자손들은 성전에서 수종을 들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면서 일생을 지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시인이 “악인의 장막에서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거기서 하나님과 맺는 관계, 거기에서 하나님과 맺으면서 살아가는 하나님과의 관계, 그것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만 사랑 할뿐만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 마음의 질서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질서를 따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만물들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하나님을 즐거워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그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사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본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