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방패이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은 태양이며 방패이시다.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 84:11-12)
녹취자: 김명진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향한 또 다른 찬양으로 이 시를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태양이며 방패이시다”라고 노래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방패는 보호라고 어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많은 시련과 어려움, 환란 이런 것들로부터 보호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 주시는데, 그렇게 보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태양이요. 해요”라고 노래합니다. 성경에서 해는 하나님의 은총을 나타내는 은유로 많이 사용됩니다. 하나님이 영광가운데 계신 것이 마치 태양이 빛을 발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비취는 찬란한 영광이 마치 햇빛이 비쳐서 모든 식물들을 자라게 하고 모든 이 세상의 양식들을 생산해내는 에너지원이 되듯이, 그래서 결국은 햇빛이 없으면 모든 생물들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은 그 햇빛을 비취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물들을 살아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해는 은총에 대한 비유이고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의 근원이시고 은총의 근원이시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자세히 서술하는데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은혜라고 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들을 하나님이 너그럽게 대하시고 혜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들을 존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강력한 나라들에 에워싸여 있을 때에도 그들에게 적절한 영화를 주셔서 영광스럽게 하시고 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그들이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스럽게 살아갈 때는 하나님이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주셔서 용기를 얻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끔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태양으로써 방패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할 것이니이다.” “정직이라기보다는 올곧게 행하는 자에게”, 성경에서 말하는 올곧음의 기준은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올바르고 곧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은혜와 영화를 주시고 또 한편으로는 좋은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판단하시기에 좋은 것, 그래서 그것들을 많이 받으면 그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그 무엇을 하나님이 아낌없이 주셔서 그래서 그 인간으로 하여금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끔 만들어 주시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영광입니다. 그러면서 이 찬양을 마지막으로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는 성경구절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만약 우리의 추측이 옳다면 이 시편 84편의 시를 고라의 자손 중 한 사람이 지었을 때 그는 다윗과 함께 요단강 건너편으로 망명의 길을 떠났고 그 속에서 심령이 가난 할대로 가난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당신의 기름 부으신 다윗을 다시 왕위로 복귀시켜주시도록, 악한 자들에 의하여 빼앗긴 왕국을 다시금 돌려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때였습니다.
다윗 왕국이 이 세상 나라의 기준에서 보면 대단할 것이 없지만, 압박받고 노예로 생활하던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다윗의 왕국은 정말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요단강 이쪽으로 위로, 아래로, 그리고 요단강 건너편으로 해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대의 판도를 영토로 삼았고, 작은 나라들에서 조공을 바쳐왔고 다윗의 이스라엘 왕권에 복종하였던 통일 왕국 시대였습니다. 그러다가 나라가 망하고 반역하는 무리들에 의해서 나라를 빼앗기고 자신들은 요단강 건너편으로 쫓겨 왔을 때 그때의 심령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 속에서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새로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그렇고 다윗을 따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 42편 같은 경우도 보면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 같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 나옵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해야할 자신들의 처지를 절실하게 자각하게 하심으로서 오히려 이 어려운 국가적인 위기를 통해서 다윗과 경건한 신하들에게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될 언약백성들의 의무를 일깨우셨다는 면에서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함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전심의 의지,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의존, 이런 것들을 발견하면서 이 시인은 정말 진정한 복이 어디에 있는가, 그게 이 세상에 영광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진정한 영적인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을 하고 그런 여호와 하나님을 의존하는 절대적인 신앙이 표현되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집과 관련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집에서 누리는 그 모든 기쁨과 영광이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이고 영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거룩한 힘과 용기, 영광, 이런 것들이 어디에서 나오냐 하면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은혜를 받고 그 영광을 누림으로써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하나님의 자녀들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끊임없는 시련과 고통을 당합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 울음 골짜기를 지나는 때에도 그곳에서 많은 샘이 나와서 위로를 받고 또 비가 내려서 결심을 얻음으로써 다시 힘을 얻는 이 모든 일들을 가장 고통스러운 때에 고라의 자손은 이 시련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항상 곤고하고 어려운 때를 기억하면서 주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주님께로부터 생명과 사랑을 힘입어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여기에서 종교의 위대한 힘이 나오는 것이고 여기에서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도 이 세상을 사는 다른 사람들과는 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거룩한 힘들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